이틀 전 모친이 밥을 사주겠다고 전화를 걸어왔다. 딱히 하는 일도 없고 할 일도 없지만 하루가 바쁜 아들의 역설에 모친은 단박에 거절 당했다. 사실 거절하면서도 마음이 썩 편하진 않았으나 다음을 기약했다.

그 다음 날까지도 거절한 것이 마음에 걸려 모친에게 전화를 했더니, 냉면이 먹고 싶다고 했다. 그랬다. 우리는 폭염의 도시 대구에 살고 있는 사이좋은 모자였다. 폭염경보 문자 따위는 그대로 씹어버리는 도시, 게임 속 디아블로가 불을 뿜으며 맞짱을 뜨자고 덤벼도 눈 하나 깜짝 하지 않는 도시에 살고 있는 우리였다. 전기세가 많이 나온다며 인테리어 가구만 활용하고 있는 10년도 넘은 엄마집 에어컨은 그 날도 여전히 작동을 하지 않았다.

더위를 이기기엔, 냉면이 제격이다. 사죄의 마음으로 냉면을 먹으러 갔다. 우리가 간 곳은 진주냉면 집이었는데, 나름 미식가인 모친이 가장 좋아하는 냉면이다. 다른 냉면은 거들떠 보지도 않는데 진주냉면은 곧잘 드신다. 가족의 애잔함이 냉면 한 사발에 고스란히 느껴졌다. 차디찬 냉면 그릇을 계속 손으로 만지면서 시원하다고 웃으시며 에어컨 바람의 시원함을 느끼고 계셨다. 그리고는 다시 폭염의 대구, 화마에 휩싸인 당신의 집으로 데려다 드렸다. 냉면 한 그릇에 저토록 행복해하시다니, 내용은 다르지만 구리 료헤이의 ‘우동 한 그릇’ 이 떠올랐다.

진주냉면은 진주와 사천 부근에서 탄생한 요리다. 사실 우리가 먹고 있는 진주냉면은 원형의 진주냉면과는 조금 다르다. 원형의 진주냉면은 역사를 추적하기가 어렵고, 현재 남아 있는 형태는 사천식 냉면을 변형시켜 만든 것이다.

모친이 진주냉면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있다. 진주냉면은 고기육수만을 베이스로 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모친은 미식가임에도 불구하고 고기를 잘 드시지 못한다. 돼지고기는 고사하고 대한민국 국민의 소울푸드 닭고기나 치킨도 입에 못대신다. 그렇다고 채식주의자까지는 아니지만 아주 잘 구워져 역한 냄새가 나지 않는 최상급의 고기만을 드시는데, 여간 까다로운게 아니다.

그래서 소고기 양지살 등을 베이스로 육수를 내는 다른 냉면들은 냄새도 맡지 않으신다. 더군다나 요즘 대다수의 냉면가게들이 한우보다 수입산 쇠고기를 쓰기 때문에 일반인이라면 못 느낄 그 미묘한 냄새까지도 다 잡아낸다.

그러다보니 모친은 진주냉면을 자주 드시는데, 진주냉면에는 육수로 건새우, 디포리, 멸치, 홍합 등의 해산물을 베이스로 한 육수가 쓰이기 때문이다. 쇠고기 육수를 내긴 하지만 해산물의 진한 풍미가 그 향을 가리기 때문에 어머니의 썸머소울푸드는 진주냉면이 됐다. 그리고 원래 사천식에서 변형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육전고명이 올라가는데 이 육전은 또 잘 드신다. 밀가루 반죽과 후추향으로 교묘하게 육향을 가리기 때문이었을지 모르겠으나 모친의 입맛에는 딱 맞춤형 육식이다.

입맛 까다로운 사람들이 먹기엔 딱 좋은 계절음식이다. 유별나기로 소문난 모친이 인증하는 맛이니 믿어도 된다. 다만 요즘은 우후죽순으로 진주냉면 프랜차이즈가 생기고 있으니 주의하길 바란다. 맛의 표준화가 이루어지긴 했지만 프랜차이즈 식품의 소울리스함은 여전히 당신의 취향에 맞지 않을 수 있다.

참고로, 모친이 자주 가는 진주냉면집은 프랜차이즈가 아닌 소울있는 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