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중 최고의 달을 꼽아보자

오늘 날씨가 참 추워요.

겨울 직전 가을의 모습이다. 이맘때면, 김장이 이어진다. 초겨울에서 봄까지 먹을 양식을 더 추워지기 전에 담가두는 것이다. 예전처럼 집 앞마당에 장독대를 묻어두지 않아도 되고, 산더미같이 쌓인 배추를 온 가족이 모두 모여 다듬고 절이는 과정도 찾아보기 힘들다. 미리 절인 배추를 박스째 사서 양념만 발라 김치냉장고에 넣어두면 되니까. 기술의 발달이 생활을 편리하게 한 것이다. 하지만 이 간편하고 손쉬운 과정이 누구에게나 해당하지는 않는다.

바야흐로 방송에서 활약하는 요리사의 셰프테이너 (cheftainer), 요섹남의 신조어가 등장할 정도로 음식 자체가 각광받고 있다. 빠른 모바일을 통해 ‘맛집’을 검색하고, 맛있는 음식과 마주하는 장면을 인증샷으로 공유하는 문화는 이제 특별하지 않을 정도다. 요리의 요리에 의한 요리로서 어필하는 시대에 돌입한 것이다.

의식주의 사람의 기본적인 욕구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먹고 자고 입는 것을 떠올린다. 이 중에서도 먹는 것이 단연 우선순위이다. 배고픔에 직면한 사람은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생명 유지와 관계된 활동임에도 당연한 것이 되어왔다. 마땅히 누군가가 대신해줘야 하는 활동영역이 되고 만 것이다. 최근 각광받고 있는 것은 당연히 고마워야 할 그 노력의 가치가 이제야 인정받고 있는 방증일 뿐이다.

가족들이 맛있게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 는 흔한 어머니의 말씀 뒤엔, 어쩌면 당연하게만 바라보는 야속함에 대한 위안이 아닐까? 김장을 하는 동안은 잠시도 허리 펼 새 없이 움직인다. 찬 기운에 방안에서 따뜻하게 몸 녹일 새 없이 당연하게 여겨진 과업을 행하신다. 끝내고 나면, 몸살 기운에 몸져누우신다. 날 대신할 손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사다 먹으면 편할 것이지만, 뭇 주머니사정이 녹록지 않다. 이왕 당연하게 대신하는 거 넉넉하게 담가 두는 건 마지막 남은 인심의 자존심이다.

흔히 가을을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 천고마비에 비유한다. 그만큼 혹독한 겨울을 맞이하기 전의 풍성함을 상징한다. 그런데 이 말은 원래 당나라의 시인 두심언의 시의 추고새마비(秋高塞馬肥)에서 유래한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쓰는 천고마비는 약 2천 년간 중국 왕조와 백성을 약탈하던 유목민족 흉노족의 살찐 말을 일컫던 문구에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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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은 깨끗한데 요사스런 별이 떨어지고[雲淨妖星落]

가을 하늘이 높으니 변방의 말이 살찌는구나[秋高塞馬肥]

말 안장에 의지하여 영웅의 칼을 움직이고[馬鞍雄劍動]

붓을 휘두르니 격문이 날아온다[搖筆羽書飛]

무자비하게 약탈하는 흉노족에 대비하는 방책을 세워두는 것이 ‘외치’의 시작이었다. 진시황이 만리장성을 축조한 것도 이 이유였다. 의미를 알고 나니, 오히려 일반적으로 잘못 사용되던 그 사자성어가 공감이 된다. 추위에 앞서 미리 준비를 하는 김장철의 가을은 감사함을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고대의 백성들이 끊임없는 침략에 맞서 온전히 지켜낸 곡식에 얼마나 감사하게 생각했을까?

날 대신해 헌신적인 수고를 아낌없이 해주는 어머니께 감사하자! 날 대신해 정글 같은 사회생활을 견디는 아버지께 감사하자! 맛있는 음식의 결과엔 얼마나 살벌한 고통이 뒤따를지를 떠올리자. 그러면 한없이 미안하고 감사할 수 있다. 군말 없이 조금은 짜더라도 싱겁더라도 그릇을 비워내는 이유이다. 그 어느 때보다 외강내유의 지혜가 필요한 시점, 누군가는 가을마다 전해오는 이 진리를 가슴속에 되새겼으면 모두가 행복할 텐데……

음식을 비워내는 자세를 보면, 그 사람의 마음속을 들여다볼 수 있다. 내 배만 채우면 그뿐인 밥상에선 느낄 수 없던 배려를 느낄 수 없다. 너저분하게 늘어진 음식 파편들을 치워내기에 바쁘다. 이러라고 맛있게 한 상 가득 차려낸 게 아닐 텐데……반면 밥알 한 톨 없이 깨끗하게 비워진 그릇은 감사함으로 화답한다.

한해의 마무리를 하는 시점, 감사함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이 순간이 행복하다. 감사할 줄 안다는 건 어쩌면 어른이 되어가는 당연한 숙명이 아닐까?

필자. 프리터 하준서

큐레이팅. 칸투칸 HRMP 김종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