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격지심의 민낯

그랬던 적이 있었다. 고등학생 때, 다른 학교 학생들과 경기를 할 때 실력도 없으면서 선수용 축구화를 신은 어떤 친구를 비웃은 적. 헬스장에 가면 뱃살은 두둑한데 런닝 머신이나 조금 뛰다가 스마트 폰만 만지작거리는 어떤 사람의 때깔 나는 운동복이나 좋은 운동화를 한심하게 여겨본 적. 소위 ‘장비빨’만 세우는 사람들은 싸잡아 비하한 적.

사실 그런 방식의 냉소나 조소는 다른 한편으론 내 장비빨이 부족한 것에 대한 자격지심이기도 했다. 내가 내 장비에 만족하고, 내 실력에 만족한다면 남이 어떤 장비를 갖추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예 관심을 갖지 않아도 될 일이었는데, 굳이 그들의 좋은 옷, 좋은 신발 같은 장비가 눈에 들어왔던 것은 사실 ‘나도 저런 장비가 있으면 좋겠다’라는 바람때문이었으리라. 게다가, 그런 장비를 보고 그냥 멋지다고만 생각하면 될 일을, 굳이 그들을 비웃고 한심하다 여겼던 생각 이면에는 ‘그래, 나한테는 없는 그런 좋은 장비를 갖추고서 얼마나 잘하나 한번 두고 보자’ 하는 고약한 심보가 있었으리라.

사실 그들은 장비탓을 하며 좋은 장비를 구했던 것이 아니라, 단지 그런 신발이나 옷이 좋아서, 혹은 여유가 되니까, 자기 스타일이라서 구입한 것뿐이었을 텐데. 지금 생각해보면 부끄러운 내 자격지심의 민낯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프로는 좋은 장비 쓴다.

흔히. ‘진정한 프로는 장비를 탓하지 않는다.’ 라는 말을 한다. 맞는 말이다. 브라질 빈민가에서 맨발로 바람 빠진 공을 차던 아이들이 호나우지뉴 같은 선수가 되곤 하니까. 초고가의 드럼이 아니라 그저 플라스틱 쓰레기통 엎어둔 것만으로도 멋진 연주를 해내는 거리의 악사들이 있는 법이니까. 이미 진정한 프로인 그들에게, 장비란 그저 거들 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실 진정한 프로는, 좋은 장비가 아니면 쓰지 않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그들은 말 그대로 프로이니까. 굳이 열악한 환경이나 허술한 장비를 자처해서 모험을 하고, 자신의 실력을 검증해야할 의무가 없다. 할 수 있는 한 최고의 상태에서, 최선의 상황에서, 좋은 장비로 작업하는 것이 프로다. 그러니, ‘진정한 프로는 장비를 탓하지 않는다.’ 라는 말은, 프로는 악조건 속에서도 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뜻이지, 장비를 따진다고 해서 프로가 아니라는 뜻은 아니다.

더욱이, 프로가 아니면 좋은 장비를 쓰지 말라는 법은 없다. 오히려 프로가 아니기 때문에 좋은 장비를 써야 한다. 프로는 악조건 속에서도 제 능력을 발휘하고, 자신을 컨트롤할 수 있지만 아마추어는 그러기 힘드니까. 오히려 아마추어가 부상이나, 좌절을 겪을 확률이 높으니까.

아마추어건, 프로건 당신은 소중하니까

그러니, 이제 옷이나 신발, 장비를 구입할 때 이런 생각은 하지 말자. ‘에이, 내가 무슨 프로 선수도 아니고, 대충 아무거나 사야지.’ 우리는 프로가 아니기 때문에 좋은 장비가 필요하다. 프로는 프로이기 때문에 좋은 장비가 필요하고. 어떤 이유에서든 일부러 좋지 않은 선택을 할 이유는 없다.

만약 러닝을 할 거라면, 러닝에 맞는 기능성 티셔츠와 가볍고 시원한 운동화, 푹신한 양말과 눈으로 들어오는 땀을 막아줄 헤어밴드 같은 것들이 필요할 것이다. 대충 아무 신발이나 신고, 대충 아무 옷이나 입고 뛰면 오히려 무릎이나 발목을 다칠 확률이 높아진다. 오히려 운동할 맛도 떨어진다. 결국 모든 행동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행위인데, ‘프로도 아닌데 나 같은 아마추어가 무슨..’ 하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초라하게 만들지 말자. 축구, 농구, 헬스, 등산, 어떤 운동이든 마찬가지다. 더 이상 좋은 장비를 프로들의 자격쯤으로 여기지 말자. 프로건 아마추어건, 당신은 소중하니까. 그것만으로도 좋은 장비를 쓸 자격이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