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산악인 조지 리 맬러리는 에베레스트에 왜 오르냐는 질문에 “산이 거기 있으니까”라고 답했다. 애석하게도 맬러리는 3차 등반에 나선 이후 돌아오지 못했지만 그의 말은 영원히 남아 산악인들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명언이 되었다.

인간이 자연을 정복한다는 발상은 건방지다. 자연을 망칠 수는 있겠지만, 그건 승리가 아니다. 그래도 자연에 도전할 수는 있겠다. 산이 거기 있으니까 오른다는 맬러리 말처럼, 도전에 이유가 필요한 건 아니다. 한계와 싸워 이겼을 때 느껴지는 성취감은 무엇과도 비교 할 수 없을 만큼 짜릿하니까. 그것만으로도 목숨을 걸 가치가 있다.

절벽을 오르는 행위는 어떠한가? 한 발 잘못 딛어 떨어지면 그대로 추락하사는 절벽을 맨손으로 오른다는 것.

안전확보를 위해 로프를 쓰기는 하지만 프리클라이밍의 경우 기본적으로 등반자체는 도구에 의존하지 않는다. 추락시 암벽에 부딪히며 뼈가 부러질 수도 있고, 로프에 이상이 생겨 그대로 떨어지는 경우마저 간과할 수 없다. 이처럼 위험한 클라이밍을 굳이 왜 하냐 묻는다면, 산행으로 충분하지 않느냐 묻는다면, 그저 이렇게 답할 수 밖에 없으리. 벽이 거기 있으니까.

일반인들이 접근 가능한 범위 내 등산에서는, 한계에 부딛히는 경험을 하기 쉽지 않다. 어느정도 체력만 기르고 산행 경험만 쌓아도 설악산 정도는 오를 수 있으니까. 또 산행은 시간과 장비가 들기 때문에 일상속에서 선뜻 시도하기 쉬운 일도 아니다. 동네 뒷 산정도야 몰라도.

클라이밍은 일상에서 극한을 느껴보기에 적합한 종목이다. 인공 암벽 조성이 가능하고 실내 클라이밍장도 많아졌다. 손잡이를 잡고 설계된 루트를 공략하는 볼더링의 대중접근성이 좋기 때문이다. 물론, 이 역시 자연 암벽 등반에 비할 바 아니지만, 클라이밍 자체가 엄청난 근력과 인내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초보자는 실내 클라이밍장 훈련만으로도 대번에 눈 앞이 노랗게 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어느정도 실력이 붙으면 더 높은 단계가 이어지고, 굳이 목숨 걸고 자연의 높은 벽에 도전하지 않더라도 스포츠클라이밍 상급자가 되는 것 만으로도 높은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 이 과정까지만해도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일상이 무료하다거나, 새로운 도전에 목말랐거나, 자신의 한계를 시험해보고 싶은 보통사람이라면 클라이밍에 도전해보자. 거창하고 복잡할 것도 없다. 건강한 몸과 의지만 있으면 된다. 거기, 클라이밍센터가 있으니까, 거기 인공 암벽이 있으니까. 자연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은 아니래도, 자연이 만든 구조물을 재현한 인공암벽이지 않은가? 근육과 세포 하나하나를 깨우는 경험. 살아있음을 생생히 느낄 수 있는 자극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