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 비 온다, 주륵주륵

장마전선이 북상 중이다.

불볕더위에 가뭄까지 겹쳐 전국의 농가가 말라 죽기 직전이었는데, 그나마 다행이다 싶다. 사실, 무슨 의무처럼 “에휴, 비가 좀 내려야 할 텐데. 농사짓는 분들 어떡하노..” 얘길 할 때마다 다른 한 편으론, ‘내가 지금 내 앞가림도 못하면서, 누굴 걱정을 하고 있노..’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니다, 그래도 일말의 공동체 의식이라도 남아있어서 다행인 건가?

어린 시절엔 주륵주륵 내리는 비가 싫지 않았다. 비를 맞으면서 친구들과 뛰어 노는 것도 좋았고, 빗물이 고인 웅덩이를 속 시원히 밟는 쾌감도 좋았다. 물론 엄마는 지독히도 싫어하셨지만, 철없게도 그 시절엔 감기 걸린 아들을 간호하거나 흙탕물로 엉망진창이 된 옷을 세탁하는 엄마의 노고를 알지 못했다. 그저 비를 맞으며 뛰어 놀다보면, 막 기분이 좋아졌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건 일종의 해방감 같은 것이었는데, 사실 그 어린 나이에 구속된 것도 없이 해방감을 느낀다는 게 우습긴 하지. 그 시절, 그 빗속엔 신난 동네 강아지도 몇 마리 섞여 있었다.

아이와 강아지. 천진난만한 것들은 내리는 비를 좋아하는가 보다. 비에 젖은 자기의 꼴이 부끄럽지 않을 만큼 천진난만한 거지. 비에 젖은 채로 운전을 해야 할 걱정을 할 필요도 없고, 비에 젖은 채로 업무를 봐야할 일도 없는 거지. 아이와 강아지는, 비에 젖고도 아무 책임도 지지 않아도 되는 때였던 거지. 그래서 그렇게나 많은 우산을 여기저기 놔두고 다녔던 걸까. 아니, 지금도 우산은 잘 잃어버리긴 하는데.

비에 젖지 말아야 할, 어른의 책임

다 큰 어른이라고 비오는 게 마냥 싫기만 할까. 쾌적한 실내에서 듣는 빗소리도 좋고, 카페 전면 유리에 맺힌 빗방울들도 좋은데. 수풀이 더 선명한 초록으로 얼굴을 씻는 비오는 거리를 걸으며 사색에 잠겨보고도 싶은데. 우리는 벌써 어른이라, 비에 젖지 말아야 할 무수한 이유들이 생겨버렸다. 비에 젖지 말아야 할, 어른의 책임들이.

우산을 쓰고 다니는 것도 여간 거추장스러운 게 아닐 수 없다. 간편하게 휴대할 수 있는 우산은 너무 작아서 양쪽 어깨, 등 뒤가 다 젖고, 신사의 품격을 지닌 장우산은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실내에 들어갈 때마다 어찌나 빗물을 뚝뚝 흘리는지. 장맛비에 바람이라도 같이 불면, 우산이 다 무슨 소용이랴. 그럴 때 우산은 비를 막아주는 도구라기 보단 그냥 ‘저 완전히 포기하진 않았습니다.’ 하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소도구로 전락하고 만다.

장마 시작, 레인코트를 입자

그래서, 장마철엔 방수되는 자켓, 레인코트가 필요하다. 가볍고, 쾌적하다. 그 이름처럼 그래도 명색이 ‘코트’인데, 때깔도 좋고 멋스럽다. 우산을 써도 다 젖곤 했던 어깨, 등 뒤, 허벅지까지 넉넉하게 막아준다. 요즘 레인코트는 신축성이 좋아서, 불편하지도 않다. 이 정도 레인코트 하나쯤 있으면 가벼운 비는 우산 없이 즐기는 여유도 생긴다. 장맛비에 바람이 합세해도 우산과의 협력수비로 커버 가능하다. 비를 즐겨선 안 되는 어른의 책임. 이제 레인코트로 덜어내자.

장마전선이 북상 중이다.
레인코트를 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