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처럼 통섭과 융합이라는 것이 사랑 받는 곳이 있을까? 통섭의 어원인 ‘컨슬리언스 (consilience)’가 미국에서 왔지만 한국에서 유독히 광풍(?)에 가까운 이유는 아마도 따로 있는 듯 싶다. 한민족이 지나칠 정도로 통섭을 좋아하는 이유의 예를 찾아보면 의외로 쉽다. 바로 비빔밥이다. 나물과 고명, 소고기와 생채가 섞이고, 고추장과 참기름이 들어간다. 그리고 지방마다 추가되는 부가재료가 또 있다. 탄수화물과 지방, 단백질, 섬유질과 비타민이 모두 들어 있는 종합 밥상이다. 그래서 영양학자들은 비빔밥을 완전식품이라고 까지 부르지만 외국의 셰프들은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든다. 왜 그 좋은 재료를 다 비벼서 독한 고추장까지 뿌리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오묘한 맛을 감지한다. 비벼진 맛은 개별의 맛 이상이다.하나하나가 섞여 그 합 이상이 나오는 것. 완전히 실패일 수도 있지만 의외의 성공 가능성을 담은 도박성 음식. 통섭은 쉽게 말하면 우리 민족이 너무 사랑하는 이 비빔밥의 속성과 같기에 우리는 이 개념을 좋아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비빔밥의 인기가 요즘 상당하다. 영양 밸런스가 최고인 비빕밤이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왠지 외국인들에게 권하기 꺼려했던 매운맛 고추장 또한 원래의 한국맛 그대로 사랑받는다. 이런 날이 올지는 정말 몰랐다. 한국 식문화 전체가 세계와 통섭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또한 통섭은 우리 한민족이 살아온 역사와도 연관이 있다.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은 한국의 굿에서 감탄했던 사실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칠성신에게 치성을 드리던 무당이 신패를 없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주위를 두리번 거리더니 칠성 사이다 병을 가져다가 신패로 놓고 천연덕스럽게 굿을 하는 것이 바로 그 장면이다. 칠성사이다병을 칠성신으로 만드는 한민족처럼 융통성 있는 민족이 있을까? 융통성이란 바로 이런 엉뚱한 곳에서 무언가를 가져오는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없는 것을 탓하기 보다 없이 살았기에 엉뚱한 것을 가져와서 대체하는 것에 능하고, 가진 것이 몇개 없으니 이것 저것 합쳐서 비비는 것에 능한 장점으로 만들었다. 이 융통성이 바로 통섭의 원시 개념이다.

자. 이제 준비되었는가. 주변을 둘러보고 과감하게 섞을 준비가 말이다. 용기 있게 비벼보자. 또다른 답이 보일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