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혹은 끝

이번이 네 번째다. 2007년 멜버른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지 꼭 10년째 되는 해다. 심지어 이번 대회에서 유력한 금메달 후보들 가운데 유일한 80년대 생이다. 바로 1989년 생 박태환이 주인공이다.

그가 처음 이름을 알린 건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때다. 400m 남자 자유형 예선에 최연소 국가대표로 참가한 박태환은, 첫 올림픽에서 당한 실격 때문이었다. 긴장한 나머지 준비 구령에 물에 뛰어들었다. 그에겐 잊지 못할 창피한 기억일 것이다.

2년 뒤 도하에서 개최된 아시안 게임에서, 실격이 아닌 실력으로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200m, 400m, 1500m 자유형에서 모조리 금메달을 따내며 3관왕에 올랐고, 계영 등 다른 종목에서도 동메달 등을 획득했다. 언론에서는 새로운 아시아의 물개가 나타났다고 난리가 났다. 아시아 무대라 그렇다 여기는 사람도 많았다. 그러나 2007년 출전한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상이었던 호주의 그랜트 해켓을 꺾고 자유형 400m에서 아시아 신기록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세간의 관심은 이듬 해 열릴 올림픽 금메달로 쏠렸다.

온 국민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박태환은 생애 두 번째로 출전한 베이징 올림픽에서 출전한 자유형 400m에서 금메달을 차지하며 일약 김연아와 함께 일약 국민 스타로 떠올랐다. 당시 출연한 CF만 해도 수십 개다. 다음 해 펼쳐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예선 탈락하며 비난에 휩싸였지만, 2010년 펼쳐진 팬퍼시픽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다시 금메달을 목에 걸며 부활했다. 게다가 같은 해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도 대회 3관왕에 오르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2011년 상하이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라이벌인 중국의 쑨양을 제치고 자유형 400m에서 금메달을 차지했다. 다음 해 런던 올림픽에서도 국민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출전했으나, 실격 논란 끝에 출전한 400m 결승에서 심적인 부담이 컸던 탓인지 2위를 기록했다. 배팅 업체에서 박태환이 5위를 기록할 것이라는 예상보다 훨씬 좋은 성적을 거뒀지만, 예선에서 벌어진 실격 논란이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지 알 수 없었기에 모두가 아쉬워했다.

그러나 2015년 1월, 도핑 테스트에서 양성 반응이 나오며 국민 스타에서 소위 ‘국민 약물’로 그간 쌓은 명예를 모조리 실추했다. 주사한 의사가 멋대로 주사했다는 주장으로 고의성은 없었다는 판결을 받기는 했으나, 이런 파문의 당사자가 됐다는 것 자체가 문제였다. 때문에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얻은 메달들은 모두 박탈 됐으며, 함께 혼계영에 출전한 선수들의 메달도 함께 박탈되며 희대의 민폐꾼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2016년 리우 올림픽에도 도핑 파문 때문에 출전이 좌절되는가 했으나, 눈물로 호소해 출전하는 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처참한 성적으로 예선에서 모조리 탈락하고, 심지어 자유형 1500m에서는 출전을 포기하며 최악의 대회로 기록됐다. 심지어 자유형 400m에서 우승한 호주의 맥 호튼은 인터뷰에서 ‘속임수를 쓰는 선수에게는 할 말 없다’며 도핑에 적발된 선수들을 비난했고, 수영 황제 마이클 펠프스도 그 주장에 지지를 보냈다. 그야말로 추락이었다.

그해 말,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며 김종 전 문체부 장관이 박태환에게 협박에 가까운 올림픽 출전 반대 녹취록이 공개되며 조금씩 재평가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도핑 파문과 리우 올림픽 이후 출전한 전국 체전이나 아시아선수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다시 기량을 끌어올렸다. 그에게는 이번 부다페스트 세계선수권대회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번 대회에서의 모습이 박태환의 남은 수영 경력을 좌우할 수도 있다. 2020년 도쿄 올림픽도 사실상 이 대회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여곡절 끝에 조금씩 기량을 회복하는 중인 박태환이 유종의 미를 장식할 수 있을까. 일단 지켜보자. 그래도 한 때는 국민의 영웅이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