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로고 티셔츠, 그 단순한 자신감

‘기본’ 로고 티셔츠?

각 브랜드마다 반드시 출시하는 기본 아이템들이 있다. 특히 스포츠 브랜드라면 전면부에 브랜드 로고만 떡 하니 박아놓은 기본 로고 티셔츠를 꼭 제작한다. 주로 티셔츠 전면 정중앙이나 왼쪽 가슴 부위에 브랜드 로고가 드러나 있다. 90년대까지만 해도 이런 브랜드 로고는 촘촘한 자수로 박혀 있어야 고퀄리티라는 인식이 있었지만, 요즘은 제작 공정의 효율성을 높이고, 살에 닿는 불편한 느낌을 없애기 위해 실리콘 같은 소재로 프린팅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그런 기본 로고 티셔츠를 말 그대로 ‘기본’ 아이템으로 생각해서 편하게 구입하고, 편하게 입곤 한다. 물론 여타의 디자인 요소 없이, 무지 티셔츠에다 로고만 추가된 것이니 코디하기 편한 것이 사실이긴 하다. 하지만 결코 그 이유가 그런 디자인적 ‘단순함’ 에서만 비롯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우리는 브랜드 따진다, 아직도.

남들 시선 의식하기 좋아하던 사춘기 시절을 떠올려보자. 특별히 집이 부유해서 나이*, 아이** 같은 걸 지겹도록 입었던 사람이 아니라면, 기왕 브랜드에서 옷을 살 거 브랜드 로고가 보이는 걸로 고르고 싶어 했던 적이 있을 것이다. 나 또한 한 때 그런 마음으로 세뱃돈을 들고 나이* 에 가서 티셔츠를 샀던 기억이 있다. 사실 그 시절엔 지금처럼 의류 원단의 개발이 덜 된 상황이라, 일반 면 소재 티셔츠는 정말 10,000원짜리나 30,000원짜리나 별 차이가 없었는데, 고작 브랜드 로고 하나 들어갔다고 3배, 4배 가격이 뛴 셈이었다. 그렇지만, 그 시절의 나는 구태여 3배, 4배의 돈을 주고 기본 로고 티셔츠를 입고 싶었다.

철없던 어린 시절에 그랬다손 치더라도, 이제 다 큰 어른이 뭐 그런 걸 따지겠냐 싶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브랜드의 가치를 서로 비교하고 따진다. ‘같은 값이면 OO보다 **이지!’ 라는 생각, 누구나 해본 적 있으니까. 어린 시절과 차이가 있다면, 그 시절엔 그저 ‘브랜드 네임’ 만 따졌지만 지금은 ‘브랜드 네임’ 이면에 있는 더 많은 것들을 따진다는 점이다. 소재는 어떤지, 가격은 어떤지, 유행에 맞는 브랜드인지, 얼마나 전통 있는 브랜드인지, 등등.

기본 ‘로고’ 티셔츠!

그러니까 소비자 입장에서, 다 거기서 거기인 브랜드 기본 로고 티셔츠 중에서 굳이 하나의 제품을 고르는 기준과 과정을 면밀히 살펴보면, 뒤집어 말해 그 브랜드가 얼마나 단순하고도 대단한 자신감을 지니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사실 우리는 코디하기 좋은 ‘기본’ 로고 티셔츠를 고른 것이라기보다는, 기본 ‘로고’ 티셔츠를 통해 브랜드를 사 입는 셈이다. 그러니 기본 로고 티셔츠를 제작하고, 출시하는 건 브랜드 입장에선 당연히 거쳐야 할 통과의례이자 로고 티셔츠라는 바로미터를 통해 시장에서 스스로의 입지를 확인하는 혹독한 절차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사정은 어디까지나 치열한 시장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할 브랜드들의 몫이다. 돈 내고 옷 사 입는 우리가 뭐 측은지심으로 한물 간 브랜드의 로고 티셔츠를 2002년 be the reds 티셔츠처럼 입을 필요는 없으니까. 다만, 로고 티셔츠를 통해 소비자로서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는 있다. 이미 알고 있는 브랜드를 차치해두고, 전혀 모르던 브랜드를 알게 되었을 때. 그 브랜드의 기본 로고 티셔츠가 얼마나 인기 있는지, 얼마나 잘 팔리는지를 확인하면 대충 브랜드의 입지를 확인해볼 수 있다. 사족을 달자면, 판지오의 기본 로고 티셔츠인 시그니처 티셔츠는 반팔 티셔츠 중 압도적인 차이로 가장 높은 판매율을 기록했다. 그리고 나도 판지오 시그니처 티셔츠를 구입했다. 어린 시절 나이* 티셔츠를 샀을 때보다 오히려 더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판지오라는 브랜드를 사 입는다. 그 단순하고도 확실한 자신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