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운맛에 대한 한가지 논란은 이것을 미각의 범주에 포함시켜야 할 지에 대한 것이다. 우리가 ‘맛’을 설명할 때는 일반적으로 ‘향’을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맛과 혀의 돌기수용체에서 느끼는 미각에서만 감지하는, 즉 ‘향’을 포함하지 않는 좁은 의미의 맛, 이 두 개념이 있다.

좁은 의미에서 본다면 매운맛은 사실상 맛이 아니라 일종의 통각이다. 혓바닥에 붙은 미각세포에서 느끼는 맛이 아니라 혓바닥의 통각을 자극해서 혈류량이 늘어나며 화끈거리는 것, 즉 고통에 따른 혀의 느낌인 것이다. 자극된 입안에 뜨거운 물을 머금어보면 더 달아 오르는 시너지 효과가 발생하는데 이는 입안의 혈류량과 통각을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따라서 매운맛을 미각의 범주에 넣지 않는 ‘식객’ 들은 이런 좁은 의미에 따른 ‘맛’ 에 따른 설명이다.

넓은 의미에서 본다면 매운맛은 통각이라기 보다 ‘맛’ 그 자체이다. 향과 풍미를 모두 ‘맛’의 범주에 집어 넣고 매운맛에도 그 종류나 성질, 질감이 다 다르다고 주장한다. 태양초와 청량고추는 느낌과 질감이 다르고, 그 향이 다르다. 할라피뇨(멕시코 고추)와 청량고추는 또 다르고, 페페론치노(이탈리아 고추)와 프락끼누(태국 고추)는 그 향과 풍미가 다르다.

그래서 매운맛에 대한 이 두 가지 시선은 요즘 한식에 있어 확실히 큰 이슈다. 왜냐하면 한국음식에는 고추가 빠질 수 없기 때문이다. 엄밀히 따지자면 고추가루인데, 사실은 매운맛을 내기 위해 사용한다기 보다 얼큰한 느낌 내지는 고추가 가진 미묘한 풍미를 위해 사용된다. 그냥 끓인 된장찌개와 고춧가루를 한 숟가락 품은 된장찌개는 그 맛이 다르다. 날 것의 짜장면과 고춧가루를 털어 넣은 짜장면의 맛도 다르다. 매운맛 그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식재료에 매운향을 더해 줌으로써 풍미를 더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어떤 미식가들 눈에는 한식이 어찌된 영문인지, 그저 맵기만 한 음식으로 인식된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아무리 넓은 의미에서 한식을 해석해보려 해도 매운맛을 즐기려고 먹기보다 그저 통각의, 통각을 위한, 통각에 의한 맛을 내기 위한 요리들이 지천이다. 글쓴이 또한 마찬가지 입장인데, 사실은 매운맛에 대해 단순한 미식적 불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매운맛에 대한 열광은 사실 좀 불쌍한 사회적 현상이다. 크게 세 가지 정도인데, 하나는 현대인의 스트레스와 관련있고 두번째로는 현대인의 단순한 식습관에 있으며, 마지막으로는 현대인의 체중과 관련있다.

우선, 매운맛을 즐긴다는 것과 스트레스의 반비례 효과는 다들 잘 아시리라. 이는 과학적으로도 어느 정도 입증되었다. 고추의 캡사이신 성분이 혀에 닿게 되면 통증 신호가 척수와 연수를 따라 대뇌 시상핵에 도달한다. 시상핵에 다다른 신호는 지각중추를 건드려 통증물질을 분비하고 우리는 통증을 느끼게 된다. 그러면 우리 몸에서는 또 자연스럽게 이 통증을 줄이고자 진통효과가 있는 엔돌핀과 아드레날린 등의 물질을 분비해주게 되는데 아드레날린 등은 땀을 나게 하고 노폐물을 밖으로 배출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이렇게 됨으로써 몸이 개운해지고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느낌을 갖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대낮에는 고카페인 커피로 버티고 이런 매운 음식을 통해 하루의 스트레스를 날린다. 커피가 산업화 시대의 기계노동의 상징이라면 매운맛 또한 일종의 기계노동으로 피로해진 신체의 필터역할을 하는 것이다. 커피로 인해 망가지고, 매운맛으로 망가진다.

두번째, 단순한 식습관의 현상은 스트레스와 같은 맥락이다. 인기리에 방송되는 ‘삼시세끼’라는 프로그램의 기획의도를 보면 알다시피 현대인이 삼시세끼의 여유를 즐기기엔 우리 사회는 너무나 복잡한 구조를 갖고 있다. 아침을 챙겨 먹을 수 있으면 거의 조선시대 왕과 다름없다. 제 시간에 점심을 먹거나, 술이나 회식이 아닌 저녁을 먹는다면 아주 웰빙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습관을 가진 현대인은 주변에 찾아보기 힘들다. 허기지고 허전한 배를 자극할 수 있는 것은 역시 매운 음식 밖에 없다. 스트레스도 스트레스지만, 허한 배를 채우기 위해 우리는 무언가 자극적인 것을 찾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맛’ 이라는 것으로 포장한다.

세번째, 외모에 대한 관심이 날로 증가하고 다이어트 열풍이 쏟아짐에 따라 매운맛이 다이어트를 위해 활용되는 경우가 상당하다. 물론 캡사이신이 지방연소에 효과적이고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해주는 과학적 근거가 있긴 하다. 하지만 이는 너무나 뻔하게 과대포장되어있다. 필요조건은 될 수 있어도 충분조건은 될 수 없다는 이야기다. TV 방송이나 음식프로그램에서 너무나 쉽게 이야기한다. 매운음식 소개를 하면서 빼놓지 않고 덧붙이는 멘트는 다이어트 식품이라는 것이다. 사실 운동역학적으로나 영양학적으로 터무니 없는 말이다. 하지만, 일종의 위약효과로서 캡사이신을 무슨 약품 먹듯이 음식에 넣어 먹는다. 그리고 그것을 미식의 범주에 끼워넣기 하는 것이다.

통각으로 뒤덮은 음식은 ‘미식’ 이 아니다. 통증으로 먹는 음식을 맛이라고 할 수 없다. 사실 매운맛을 내는 식재료나 식물들은 원래 자신의 종자가 다른 동물에게 먹히지 않게끔 하려고 진화해 온것이다. 즉, 독버섯과 같은 강력한 살상물질을 가진 체계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위협적인 요소로 작용하게 진화한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그것을 뜯어먹고 그 맛에 눈을 떠버렸다. 적당한 통증이 인간에게 주는 식문화적 가치를 발견한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적당한 통증 수준을 넘어서서 아픔과 눈물만 남아있다. 매운맛에 대한 열풍은 도전의식이나 모험으로 포장되었고 사람의 영양을 책임지는 가장 근본적인 식문화에 미세한 상처를 주고 있다.

물론, 매운맛을 통한 식문화의 다양화 측면은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일이다. 또한 이런 비판이 문화상대주의에 어긋나거나 논란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언젠가 어느 한 미식가가 매운 떡볶이를 먹고 그 맛을 ‘그로테스크한 맛이다’ 고 평가한 점을 우리는 유념할 필요가 있다. 음식은 인류문화의 가장 근본적이면서도 보편적 가치이다. 어떤 불쌍한 사회문화적 현상으로 인해 인류의 근본성과 보편성을 훨씬 뛰어넘는 기괴한 음식물들을 최소한 ‘맛’ 이라는 범주에서 평가하기엔 무리가 있다. 그것이 재미있는 음식 혹은 도전할만한 음식이라는 측면에서는 긍정적 가치는 지닐지언정 ‘맛’ 의 범주에 포함시키는 것은 조금 과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