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골프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

골프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

얼마전 칼럼에서 미국과 유럽에 이어 일본 프로골프투어에서 반바지가 허용되었는데 한국은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고 있어 너무 늦었다는 칼럼을 썼다. 그런데 이런 한국 프로 골프 협회의 대응이 오히려 멍때리다 선견지명이 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미국 프로 골프 협회는 PGA 투어와 LPGA 투어 모두 예전보다 강력한 의상규제를 실시했다.

이 의상 규제에 따르면 나시를 입어 어깨 죽지 속살을 훤히 드러내보이는 의상, 그리고 미니스커트 역시 입지 못한다. LPGA는 복장규정을 위반할 경우 1000달러의 벌금을, 이후로는 두배씩 벌금을 물리기로 꽤 큰 규제를 내세우고 있다. 잉글랜드 디 오픈 1라운드에서는 이 한여름에 카디건에 넥타이까지 맨 저스틴 토마스가 눈길을 끌기도 했다. 잉글랜드의 날씨가 한국과는 다르겠지만 최근 논란이 되는 복장 규제 속에서 토마스의 의상과 플레이는 확실히 눈길을 끌었다.

개인적인 생각은 이렇다.

의상 규제는 구시대적이다.

영국의 계급 사회와 그들의 갈등, 그리고 젠틀맨과 매너라는 것에 대한 풍자적 액션 영화인 <킹스 맨>을 보면 콜린 퍼스가 명대사를 날린다. “수트 입는다고 젠틀맨이 되는 것이 아니다.”

미국 프로 골프 협회의 관계자들은 복장 규제를 두며 자신들을 언제까지나 영원한 젠틀맨으로서, 비 젠틀맨들과 구분하고 싶어하는 욕망을 보였다. 나는 이것이 일종의 새로운 형태의 계급 투쟁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젠틀맨이고, 이것은 젠틀맨들이 하는 스포츠라는 일종의 선민의식. 그러나 여기에 모순과 괴리감이 있다는 것에 문제점이 있다.

스포츠라면 플레이를 도와주는 모든 종류의 기술에 쿨할 정도로 적극적이어야 한다. 골프가 아무리 운동량이 적다지만 필드를 온종일 걸어서 돌아다니는데 통풍이 잘되는 기능성 의류와 짧은 미니스커트, 어깨죽지를 드러내는 노출이 오히려 경기력 향상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인정하면 끝나는 일이다. 그리고 골프에서 그렇게 강조하는 진정한 스포츠맨쉽과 매너는 미니스커트와 어깨죽지 노출 같이 입는 옷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수트만 차려입고 골프치면 캐디한테 삿대질을 해도 되고 공 놓는 포인트를 바꿔치기해도 되는 것인가? 이런 복장규제는 오히려 골프가 ‘기능성 옷을 입을 필요도 없는 스포츠도 아닌데 스포츠 행세하는 있는 집 놈들의 놀음’ 처럼 보이는 시선을 더 노골적으로 진하게 만든다.

그렇게 뭔가 젠틀해보이는 규정을 원한다면 이건 어떤가. 골프 전용 슈즈도 금지하고 이제는 모든 골퍼는 맞춤 수제화를 신어야 한다. 여성은 반드시 힐을 신는 것이 좋겠다. 여름이나 겨울이나 모두 수트를 착용하고, 스포츠 기업들이 개발한 반동을 높인 기술이 집약된 골프 클럽들은 전부 퇴출시키고 런던 새빌 로우 거리의 클럽 깎는 노인들이 만든 나무 클럽으로 회귀한다. 이 정도면 꽤 젠틀맨 스포츠 같아 보이지 않는가? 아예 여성들은 골프를 금지시키고 캐디만 시키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미니 스커트와 어깨죽지 노출의 여부로 젠틀맨의 여부를 결정짓는 스포츠. 이 촌극이 21세기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데 길거리에서 히잡 쓴다고 중동 몇 나라를 욕하는 것도 그야말로 블랙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이번 결정은 골프가 스스로를 스포츠의 지위에서 떨어 뜨려놓으려는 시도로 보인다. 그 시도가 애처로워보이기까지 한다. 스포츠에서는 거리를 두면서까지 상류층으로 유지하고 싶어하는. 마치 일본에 나라를 통째로 바쳐가면서까지 왕족의 신분을 그대로 유지하려고 했던 조선왕조의 왕족들을 보는 듯하다.

실제로 조선의 왕족들은 2차대전이 끝날때까지 일본 황실의 부마이자 귀족 계급으로서 그 부와 명예와 특권을 유지했다. 핍박받은 건 조선왕조가 아니라 조선민중들이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나자 한국은 공화국이 되어 모든 종류의 특권 계층은 용납되지 않음을 헌법에 명시했다. 어떻게 해서라도 특별해지고 싶은 골프계 관계자들에게 말해주고픈 구절이다. 공화국에는 어떤 종류의 특권 계층도 존재하지 않는다. 골프장 필드에서도 마찬가지다. 옷 좀 차려입는다고 당신들이 특권 계층이 되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