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생전 유독 날 예뻐하시던 할아버지는 제사가 끝나고 나면 내 손에 꼭 곶감부터 쥐어 주셨다. 할아버지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주전부리인 곶감이었기에 귀한 손자 입에 먼저 넣어주고 싶었던게다.

단 것 잘 안 먹는 양반이었는데도 허옇게 당분이 올라온 곶감은 앉은자리에서 대여섯 개 꼴깍 잡수시곤 했다. 돌아가시기 전 중풍을 앓던 마지막 7년 동안에도, 입맛이 없으시다면서 그렇게 곶감을 찾으셨다. 이가 다 낡아 거의 빨아먹다시피 하는 모습이 애처로웠지만, 좋아하는 음식 하나라도 여전한 게 그나마 감사했다.

할아버지 투병 시절, 울 집 냉동실엔 늘 곶감이 상비되어 있었다. 대놓고 먹기에는 적잖이 부담되는 가격인지라 엄마는 내 맘대로 곶감에 손대지 못하도록 엄중히 단속했다. 나도 곶감을 참 좋아했는데 어찌나 서러웠는지 모른다. 그래도 할아버지께 대접하는 매일 한 개 중 반개는 내 몫이었다. 할아버지는 꼭 반을 잘라 나지막이 나를 불러 입에 넣어주셨다. 아가, 아 해보라. 하시면서 꼭 입에 직접 넣어주셨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이듬해 첫제사 곶감을 바라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 아무리 곶감을 좋아하더라도 그렇게 매일 자셨어야 할 만큼이었을까? 실은 곶감을 정말 좋아하는 건 나였는데. 만날 만날 먹어도 맛나서 만날 제사였음 좋겠다고, 제사 지낼 때마다 떠들던 손주 새끼. 중풍 걸려 하반신 마비된 노인네가 손주에게 줄 수 있던 것이 곶감밖에 없던 건 아녔을는지. 그 냥반 제사상 곶감은 하나도 안 달더라. 할아버지가 입에 안 넣어주니까 곶감이 되게 쓰더라.

또, 아빠가 되고 나니 왜 할아버지가 내게 꼭 반개씩만 줬는지도 어렴풋이 짐작되는거라. 왜 양껏 먹으라고 다 퍼주고 싶지 않았으랴. 다만, 손주 아비가 먼저 자식인지라 힘들게 벌어오는 것 아니 귀한 곶감 함부로 동 낼 수도 없었겠지. 할아버지 마지막 뻔뻔함이 하루 한 개 곶감이었던 것 같다. 당신이 좋아한다는 명분 삼아 손주에게 매일 무언가를 줄 수 있게 만들어 준 곶감.

아직도 난 제사를 지내고 나면 곶감부터 집어 먹는다. 맘 같아선 할아버지 있는 곳에 나도 곧 감, 이러고 싶지만 보고픈 맘에 이딴 우스개 소리 하는 것도 울 할아버지에겐 노발대발할 잘못일 테니까. 지난 제사 땐 이제 갓 이유식 뗀 내 새끼 입에 곶감 작게 찢어 넣어주다가, 오물오물하는 고 놈 입이 너무 귀여워 내가 받았던 사랑이 얼마나 크고 귀한 것이었는지 그제야 살에 닿더라. 그렇게 받았던 걸 고스란히 내 새끼에게 돌려주고 있는 내 모습이 내 보기에 참 좋았다. 알고 보면 그것도 할아버지 게 받은 것이라, 할아버지가 증손주까지도 보듬고 계신 거나 마찬가지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