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10년 전쯤 겨울, 북한산 인근 한 부대에서 일반병사로 짬을 먹던 시절이었다. 부대가 국립공원 부근에 있다보니 부대 밖을 나가면 제법 맛집이라고 알려진 대형가든과 보양식집, 고깃집들이 꽤 많았다. 물론 그림의 떡이었지만 가끔 장교들을 따라 외출을 할 때면 내심 그런 곳에서 점심 식사를 먹기도 했다. (장교들과 외출이라니, 맞다. 나름 서울에서 군생활 편하게 했다) 지금은 은평뉴타운이다 뭐다 해서 재개발된 풍경이 영 낯설지만 당시엔 옹기종기 모여든 전원적인 풍경이 꽤나 고즈넉하던 동네였다.

혹한기 훈련을 며칠 앞둔 주말, 갑자기 내무실에 면회가 왔다는 통보가 왔다. 너무 예상치도 못해 선임들 누구에게도 언지도 주지 않았던 면회에 나도 선임들도 적잖이 당황했다. 그땐 어느 정도 짬도 차있을 때인데도 희안하게 눈치가 보였다. 그래서 내려가보니, 부모님과 동생이 앉아있었다. 반갑기도 했지만 내심 좀 놀라기도 했고 굉장히 복잡한 마음이었다. 당시 우리 부대에는 면회나 외출, 외박도 미리 보고를 해야하는 불문율이 있었는데 그런 과정을 모두 생략했던 것이었다. 더군다나 부모님께선 나를 당일 면회외출을 신청해 놓으신 상태. 중대장과 분대장에게 미리 얘기나 어떤 언지도 주지 않았던 것을 덜컥 신청하셨던 것이다.

다시 생활관으로 올라가 분대장에게 보고했다. 분대장은 당연히 한마디 쏘아붙이려고 했지만 내심 참는 모습이 역력했다. 친구들도 아니고 부모님의 방문을 몰랐을리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내가 의도적으로 얘기하지 않았거나 엿 맥이려는 수작이었다고 믿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당직사관에게까지 보고를 마치고, 부모님과 외출을 했다. 당시 청계천이 만들어진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이라 청계천에도 가보고 나름 부모님과의 서울탐방을 했다.

그리고 복귀시간이 다다랐을 때, 군부대 앞에서 저녁을 먹기 위해 어느 허름한 추어탕 집을 지나가고 있었다. 식당 앞에는 식당주인의 양심을 고백이라도 하듯, 붉고 커다란 플라스틱 대야에 미꾸라지 무리들이 서로의 몸을 비비며 가득차 있었다. 우리 가족이 다소 주춤주춤하자 식당주인이 왼손에 들고 있던 커다란 냄비에 미꾸라지를 소쿠리로 퍼 담더니 소금을 팍 하고 치며 우리에게 말했다.

“얼른 들어와요!”

미꾸라지들이 고통에 겨워 대야 물속에서보다 더 파닥파닥 날뛰었다. 순간 인상이 찌푸러졌다. 미꾸라지에게 인간의 감정이 어디있겠냐마는 어쨌든 나는 그 감정을 한번 대입해보았다. 어디인지도 모른채 끌려와서 소금에 절여 나가는 꼴이라니. 그것도 서로 온 몸을 비비며 고통스럽게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 아주머니와 미꾸라지들의 살신성인으로 추어탕을 먹고, 나는 부대로 가족은 고향으로 돌아갔다. 나는 아주 무사하게 혹한기 훈련을 마쳤고, 그 추어탕 한 그릇의 추억을 안고 건강하게 전역했다. 그리고 그 추어탕을 같이 먹었던 내 동생은 지금 셰프로 행복하게 일하고 있고, 어머니는 은퇴하셔서 행복한 노년을 보내고 계시며, 아버지께서도 별 탈 없이 자신의 커리어를 마무리하고 계신다.

그 추어탕은 우리 가족 역사에 있어서 하나의 시간의 기준이 되었다. 그 무렵에 일어났던 집안의 대소사나 개인적인 일을 이야기 할때면, 언제나 ‘그 때 내가 군대 있을때, 그래서 추어탕 먹고 했던 때’ 라며 기준이 되었다. 부모님이 차를 바꾼지 몇년 된지 가물가물하실 때도 ‘그 차 몰고 와서 추어탕 먹었잖아요’ 라고 얘기했고, 외국에서 유학까지 하고 내 동생놈이 영어시험을 78점 밖에 못 맞은 걸 얘기할 때도 언제나 그 추어탕 먹은 시점이 기준이었다.

시간에도 맛이 있다면 그 맛은 아마 제각각일 것이다. 시간의 맛은 기억의 맛과 동일할 것이고, 감정의 맛과 동일할 것이다. 음식과 맛이 시간과 기억을 불러내기도 하지만 시간과 기억이 음식과 맛을 떠올리기도 한다. 사실 그날의 추어탕은 내 인상의 찡그린 얼굴로 시작했을지언정, 나에게는 가족의 오붓함과 그리움이 베어있던 음식이기도 했다. 그래서 아버지의 새 차를 이야기할 때도, 내 동생의 말도 안되는 영어점수를 이야기할 때도 나는 그 추어탕부터 떠오른다. 기억과 시간을 불러내는 음식이 비단 추어탕 뿐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시간을 점유하고 있던 누군가를 잃거나 무엇인가와 하나씩 이별할 때마다, 음식이 기억을 불러낼 것이다.

기억이 음식을 불러내는 일은 즐거움과 행복이 더 크다. 허나 음식이 기억을 불러내는 것은 가슴 아프고 참 애잔한 일이다. 그래서 기억이 음식을 불러내는 일, 지금 우리가 꼭 지켜야할 가장 흔한 행복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