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 같은 신발

최근에 여름을 맞아 새 운동화를 샀다. 폭신폭신한 중창과 캐주얼한 복장에도 잘 어울릴 법한 디자인, 바람 송송 통하는 시원함, 그리고 무엇보다도 오리발처럼 발볼이 넓은 내게 꼭 맞는 라스트의 모양까지. 굉장히 만족하면서 뜨거운 여름 아스팔트 위를 활보하고 있다. 하루는 그 신발을 신고 3년 만에 고등학교 동창 친구를 만나 커피 한 잔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나를 보자마자 대뜸 한다는 얘기가 “야, 니는 예전부터 꼭 니 같은 신발을 신고 다니네.” 였다.

‘니 같은 신발’? 이거 욕인가? 싶어 열심히 항변했다. 무슨 소리냐, 이 신발 올해 신제품인데. 그리고 따지고 보면 나는 단 한 번도 똑같은 종류의 신발을 또 산 적이 없는데. 그러자 그 친구는 “아니, 똑같은 신발이라는 게 아니라 그냥 신발이 니 같다고. 왠지 모르게.”

우리는 왠지 모르게 본인과 닮은 것들을 고르는 걸까. 아님 내가 고르는 것들이 반복되어서 그게 나를 드러내는 특성이 되어버린 걸까. 어느 쪽이든 그 과정은 서로 다를 수 있겠지만 결과를 확실하다. 내 선택이 나를 만든다. 심지어 2년 만에 만난 친구의 시선, 그 가장 아래쪽에 있는 신발조차도.

마크 주커버그의 회색 티셔츠

마크 주커버그는 회색 티셔츠만 입는다. 그냥 그를 떠올리면 회색 티셔츠가 떠오른다. 스티브잡스의 블랙 폴라티와 물 빠진 청바지, 회색 운동화처럼 마크 주커버그에게는 회색 티셔츠가 있다. 그는 늘 같은 티셔츠를 입는 이유에 대해 우선 옷장에 같은 티셔츠가 20장 이상 있고, 어떤 옷을 입을 것인지 고민하는 데 에너지를 쏟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가히, 그의 열정을 가늠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그의 사례를 통해 ‘같은 옷 입기’ 가 열정의 척도가 된다고 단정 짓는 것은 큰 그림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마크 주커버그와 스티브 잡스, 그들의 열정이 옷이 아니었던 것뿐이다. 그들이 만약 패션 디자이너였다면, 아마 매일 3끼 식사를 똑같은 걸로 먹었거나, 매일 똑같은 루틴의 운동만 했을 것이다. 요지는, 선택과 집중에 있다. 내가 선택한 것에 집중하고, 선택하지 않은 것은 최대한 단순화한다.

그런 측면에서 안타깝게도 나는(아마 대부분의 사람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조차도) 제대로 된 선택과 집중을 하지 못했다. 내 생활의 선택 중에서 의도적으로 늘 똑같게 만든 것은 없다. 나는 늘 더 좋은 것, 더 값싸거나, 더 내구성이 좋은 것, 또는 더 내게 잘 어울리는 것들을 고르려 고심한다. 입어보고, 신어본다. 때문에 내 옷장과 신발장에 서로 똑같은 아이템은 단 하나도 없다. 뭐, 군대 보급품도 아니고 뭐 하러 똑같은 걸 몇 개씩 산단 말인가.

‘나’로 열심히 살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다 다른 것들을 고심해서 샀는데도 3년 만에 만난 내 친구는 내 신발을 ‘니 같은 신발’이라고 부른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무리 오래 고민해도, 아무리 서로 다른 듯해도, 결국 그걸 선택한 건 바로 ‘나’ 이기 때문에. 마크 주커버그 같은 엄청난 업적을 이루지 못했으면서도, 그와 같은 방식으로 ‘나의 나됨’이 드러난다는 것은 우습고도 민망한 일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열심히 ‘나’ 로 살아왔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기도 한다.

요즘은 밥 먹을 시간, 잠 잘 시간 쪼개서, 그야말로 죽을 동, 살 동 일에 매달리고 있다. 그래도 오늘은 이 글을 다 적고 나면 1시간 쯤 여유가 난다. 벼르고 벼르던 판지오 시그니처 티셔츠를 사러 거제 매장으로 달려갈 예정이다. 아마 그건 꼭, 나 같이 생겨먹은 티셔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