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옷장을 정리했다.
작은 내 방을 차지하고 있는 거의 대부분의 짐은 옷이었다. 옷을 사는 건 좋아하지만 정리하고 버리는 일엔 서툴러서 쌓이기만 했었다. 정신을 차리니 옷장은 어느새 새 옷이 들어올 틈도 없는 좁은 공간이 되어 있었다. 항상 버리려고 마음을 먹어도 막상 하나하나 보면 ‘이건 이럴 때 입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이건 얼마 주고 사서 아직 몇번 입지도 못했는데.’하고 늘 제자리걸음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언제까지나 가져갈 순 없을 터였다. 오래된 기억들을 정리하는 김에 이번에야말로 아주 크고 튼튼한 대형 비닐백을 준비해 옷장의 옷을 모두 꺼내었다.
‘남길 것’과 ‘버릴 것’으로 구분한 다음 꺼낸 옷을 분류했는데, 처음엔 ‘버릴 것’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옷이 거의 없었다. 하나하나 꺼내고 보면 전부 그 나름의 이유와 추억이 묻어있는 옷이라 버리기가 아까웠다. 상경해서 처음으로 내 손으로 산 옷이라든지, 너무 마음에 드는데 비싸서 2주동안 왔다갔다 고민하다가 겨우 샀던 옷이라든지, 첫데이트때 입은 옷이라든지. 살에 맞대어 순간순간의 삶을 함께 하는 것이 옷이다보니 추억을 더 선명하게 공유하게 되는 모양이다. 헌 옷을 버리는 일이 마치 그 추억들을 ‘버릴 것’의 영역으로 옮기는 일은 것처럼 쉽지 않게 여겨졌다.
대청소의 의미도 없이 자꾸만 늘어나는 ‘남길 것’ 쪽의 옷더미를 바라보다가 큰맘 먹고 다시 정리를 하기로 했다. 내 삶도 이 옷더미처럼 항상 놓아야할 것들을 놓지 못하고 켜켜이 쌓아두기만 한 무거운 창고처럼 흘러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비어있는 공간이 없으면 새로운 것은 들어오지 않는다. 꽉 움켜쥔 손으로 모든 걸 붙잡으려고 애쓰던 욕심을 이제 내려놓자고 생각했다. 그러자 조금은 ‘버릴 것’으로 옮기는 옷이 가볍게 느껴졌다.
재분류가 시작되고 정리가 끝나자 버릴 옷이 대형비닐을 채우고도 약간 넘칠만큼 늘어났다. 거의 몇년간 입지 않았던 옷도 많았다. 미련하게 이것들을 그동안 다 가지고 있었나 싶을 정도로. 여전히 생생한 시간들을 기억하고 있는 옷들이었지만 이제 보내도 될 것 같았다. 비닐 가방을 두 팔로 끙끙 안고 수거함에 넣고 돌아오자 방안이 훨씬 넓어져 있었다. 힘을 주고 있던 주먹을 손바닥을 펼쳐 내려놓은 것처럼 휑하고, 또 편안했다.
비어있는 자리를 보면서 남은 옷을 정리하고 있으니 진짜 내게 필요했던 옷이 새삼스레 보이기 시작한다. 그 전엔 내게 없는 것이 뭔지 잘 알지도 못하고 비슷한 옷, 이미 있는 옷만 자꾸 사모았는데 이제는 딱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겠다. 그건 새롭고 신기한 기분이다. 한동안은 이 허전함을 즐기다가 기쁜 마음으로 진짜 ‘새 옷’을 사러갈 생각이다. 그 옷과도 다시, 내려놓기 싫을 새로운 추억들이 쌓여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