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해 여름은 정말 ‘숨이 막힌다.’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의 무지막지한 뜨거움이다. 그 동안 에어컨 없이 몇 십년을 지내온 강원도를 비롯한 많은 지역에서 이제는 에어컨 없이 버티기 힘든 그런 환경이 되었다고 한다. 열대 과일이 자라고 바닷물의 어종이 바뀔 정도의 무서운 더위라고 하니, 미래의 모습이 덜컥 겁나는 순간도 있다. 자, 그렇다고 집에만 있을 것인가. 아니면 시원한 백화점이나 극장 같은 피서지를 찾아 다닐 것인가. 자고로 여름에는 뜨거운 태양아래에서 몸에 물을 적셔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필자 역시 매해 여름 바다나 계곡에서 소심한 물놀이를 하곤 한다.

자녀가 생기고 나서 하는 물놀이는 더욱 소극적으로 바뀌었다. 어른기준의 무릎을 넘어서는 깊이는 마치 끝을 알 수 없는 ‘심해’처럼 느껴질 정도로 무섭고, 얼씬도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필자는 ‘수.못.남. :수영 못하는 남자’ 이기 때문이다. 많이 챙피한 일이지만, 수영을 못하는 것은 사실이다. 아니, 배우고 연습하면 못하진 않을 것이다. 다만, 물이 너무 무섭고 발이 닿지 않는 순간의 공포감은 상상하는 것도 겁이 난다. 한편으로는 다들 수영을 못했으면 좋겠다. 나만 못하는 게 아니었으면 한다.

아마도 초등학생 때 친구와 수영장으로 놀러 갔을 때 발이 닿지 않는 깊이를 만난 이후로 물을 멀리한 것 같다. 그 순간의 공포감은 막다른 골목에서 내 몸집 보다 큰 개가 뛰어오는 고통과 비슷했던 것 같다. 더 유식하게 말하면 일종의 ‘트라우마’ 였을 것이다. 그 이후로 성인이 되기까지, 그리고 한 가정에 가장이 되기 까지 사실 상체를 물 속에 넣어본 적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얼마 전 뉴스에서 중학생 정도 되는 소년의 생존 수영법이 화제가 되었다. 바다의 파도에 휩쓸려 떠 내려가게 되어 매우 위험한 상황이었으나 필자에겐 이름조차 생소한 ‘배면뜨기’ 수영법으로 약 20분 가까운 시간을 바다한가운데에서 구조대가 도착하는 순간까지 버텨냈다고 한다. 이런 기사를 보면 수영을 한번도 해본 적이 없는 본인이 매우 작아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용기를 내어 수영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이 들었다. 아니, 무조건 배워야 한다.

해외의 경우 수영과목이 의무교육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물로 인한 인명사고가 매년 끊이지 않는 우리나라에서도 필자와 같은 사람은 위해서라도 필히 논의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실 물이 너무 두려워서, 수영복 입는 것이 너무 쑥스러워서, 아니면 하다못해 시간이 없어서, 라는 갖가지 핑계들로 미뤄왔던 수영을 배워야 할 것 같다. 적어도 내 자신과 내 가족을 지킬 수 있다는 엄청난 매력이 있지 않은가. 제발 나와 같은 사람이 많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한번 더 묻고 싶다. “혹시, 수영 할 줄 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