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이 좋았다

참으로 오랜만에, 본가에 내려갔던 적이 있다. 친구 자취방, 고시원, 무전여행을 하면서 신세졌던 대학 선배와 군대 동기, 고등학교 동창 네까지. 살아오면서 이러저러한 집을 겪어 보니, 집집마다의 고유한 냄새가 있는 것 같다. ‘가향(家香)’이면서 ‘가향(佳香)’이기도 한 그런 냄새가. 자주 오지 못해 기억이 가물가물한 도어락 비밀번호를 겨우 기억해내고서 현관문을 열면, 신발장에 가라앉아 있던 오래된 숯 냄새와 신발에 밴 가족의 체취가 별안간 흩어진다. 내가 선물했던 아버지와 어머니와 동생의 신발들이 저마다의 상처와 역사를 몸에 새기고서 남겨져 있다.

어릴 적부터 신발에 관심이 많았다. 그렇다고 뭐 요즘 말로 스니커즈 콜렉터 같은 그런 류의 집요한 학자적 관심은 아니었다. 그저 신발이 좋았다. 비싸고 좋은 신발에 대한 동경도 분명 한몫했을 거다. 신발을 아껴 신는 편은 아니었지만, 새 신발은 늘 구석구석 관찰을 끝낸 후에 착용했다. 특히 무슨 신기술이라도 적용된 신발이라면 그런 부분을 한참 뜯어보곤 했다. 지금 돌이켜봐도 뭐 특별한 의미가 있었던 건 아닌 것 같은데, 그 무의미한 관심 때문에 나는 우리 가족에게 유난히 신발 선물을 많이 했다. 대충 기억나는 것만 아버지, 어머니, 동생 합쳐서 17켤레 정도는 선물했던 것 같다. 어쩌다보니 오래 사귄 여자 친구에게도 이런 저런 신발을 10켤레 정도, 매년 1켤레씩은 선물했다. 신발 선물하면 도망간다던데, 도망갈라치면 다시 새 신발로 잡아끈 셈이다.

어쩌다 보니, 신발이다

그러니까, 우리 가족과 여자 친구에게만, 지난 9년 간 거의 30켤레에 가까운 신발을 선물한 셈이다. 몇 번의 실패를 거치며 한 사람에게 여러 번 신발을 선물하다보면, 신발 하나만으로도 그 사람에 대해 꽤 많은 것을 알게 된다. 발볼과 발등의 모양은 어떤지, 쿠션과 유연성 중 어떤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보통 발길이에 비해 딱 맞게 신는지, 크게 신는지, 어떤 디자인을 배제해야할 지 등등.

사실 발이라는 게, 생각보다 더 은밀한 신체부위다. 한 여름이나 실내가 아니면 드러낼 일이 별로 없고 드러낸다 해도 다른 사람의 발을 유심히 관찰할 기회는 거의 없다. 손을 허락하는 일보다 발을 허락하는 일이 더 내밀하고 섹슈얼하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일 터. 그러니 상대방의 발을 잘 알고 신발을 고를 수 있다는 건, 분명 꽤 가까운 사이라는 증거다. 누군가로부터 선물 받은 신발이 어디 하나 빠지는 것 없이 쏙 마음에 든다면, 아마 그 사람은 당신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거나, 적어도 알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한 사람임이 틀림없다. 개인적으로 알면 알수록 신발은 정말 선물하기 까다로운 품목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중학생 때부터 이유 없이 신발을 좋아했던 날들이 벌써 15년째다. 어쩌다 보니 별 생각 없이 좋아하던 관심사가 내 인생의 절반을 차지해버렸다. 별 생각 없었지만 어쩌다 보니 이젠 꽤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어쩌다 보니 신발이다. 여태,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온 건, 다 내 신발이 이끈 길이었는지도 모른다,- 고 괜한 억지를 부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