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용서받은 자를 꿈꾼 자

용서받은 자를 꿈꾼 자

한마디로 이거다. 나라가 뭐길래.

정말 공교롭게도 같은 주제로 칼럼을 계속 쓰게 된다. 난 그야말로 진성 골알못이기 때문에 칼럼 주제를 선정할 때는 그때그때 이슈가 되는 것들을 선정해서 쓰는 편이다. 평소 골프나 골프계에 대해서 이렇다 할 시선이나 관점이 없기 때문이다(물론 없는 이유는 평소에 그닥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헌데 몇주전부터 주장한 한국 남성 프로 골퍼들의 활동 개선을 위해서 협회가 힘을 좀 써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병역에 대한 이야기도 잠깐 다뤘는데, 공교롭게도 배상문 골퍼가 곧 전역을 했다.

배상문. PGA 프로골프투어 통산 2승에 빛나는, 최경주 – 양용은에 이어 한국인 다승 3위의 선수. 그야말로 한국 남자 프로 골프계의 몇 없는 기대주였다. 헌데 2013년 축구계의 박모씨가 벌인 만행 때문에 병역법이 대폭 강화되어 원래대로라면 합법적으로 병역을 연기했어야 할 배상문 선수는 그만 병역법에 걸려 입영을 해야만 했다. 이 과정에서 병무청이 배상문 선수를 병역법 위반 혐의로 고발을 하고, 배상문 선수가 행정소송을 걸었다 패소하는 등 상당한 잡음이 있었다. 이 과정에서 한국 프로 골프 협회가 어떤 도움을 줬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일단 PGA 투어에서는 전역 후 1년이내까지는 시드를 유지해주기로 하여 PGA 투어를 시드 없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대위기는 넘기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그 배상문 선수가 전역을 했다. 입대하면서 논란이 있었던 이 젊은 골퍼는 과정이야 어찌됐든 본인의 선택으로 자진해서 입대하는 수를 뒀다. 거기다 골프장이 없는 부대에서 휴가 때가 아니면 골프채는 잡아보지도 못하는 채로 지냈다고 한다. 일단 본인 말로는.

실제로 밖에서 하는 말들이야 어찌됐건, 그리고 안에서 오갔던 일들이 어떤 것이든 자세한 건 본인만 알고 있으니 일단은 믿는 수밖에야 더있을까. 만일 본인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 장래가 유망했던 젊은 골퍼는 2년간 세계에서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비민주적이고 억압적이고 휴가도 사생활도 개인정비도 보장이 안되는 군대에서 골프와는 담을 쌓고 지낸 것이다. (일단 주말마다 부대 근처 학교에서 재능기부로 학생들을 가르쳤다고 하니, 부대에서 PGA 투어를 뛰는 선수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그 이상 어느정도까지 배려를 해줬을지는 모를 일이다. 세미 프로 출신 병사도 장교들 개인 레슨으로 비공식 골프병으로 빠지는 게 한국 군대의 실태이니말이다.)

일단 전역을 하면서 배상문 골퍼 본인은 다시 투어에 복귀할 꿈에 부풀어 있고, 일단 한국 남자들이 태어나면서부터 원죄처럼 짊어지는 이 병역을 해소한 홀가분함이 가득해 보였다. 배상문 골퍼의 무사 전역과 투어 복귀를 같은 병역 해소자로서 응원하는 마음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정말, 나라가 뭐길래 라는 생각이 든다. 배상문 골퍼의 경우 입대 당시 갑작스럽게 강화된 병역법 때문에 넋 놓고 있다 손해를 본 케이스다. 거기다 여러 가지 잡음이 있었지만 결론적으로 입대를 선택한 것으로 봤을 때 병무청이 고발을 하며 주장했던 것처럼 배상문 선수가 ‘악의’ 를 가지고 병역을 기피할 사람은 아니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와중에 군대를 갔다왔음에도 사람들이 보이는 싸늘함과 냉소적 반응, 예컨대 ‘장교들 스윙도 많이 늘었겠네’ 나 ‘그러게 당당히 갔다오지 왜 질질 끌었나’ 같은 냉소적 반응들이 나에겐 상당히 잔인해보인다.

배상문 선수는 입대 당시 막 PGA 투어에서 승수를 쌓아가며 전성기에 접어드는 시기였다. 나이는 29세로 신체의 절정기였다. 이런 상황에서 어느 누가 선뜻 2년간 군대에 끌려가는 걸 대수롭지 않게 선택할 수 있겠는가? 나조차도 그저 선택권없이 노예처럼 끌려가 2년간 불합리란 불합리는 다 겪고 나온 사람이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배상문 선수가 개인의 영달을 위해 국적을 버리고 미국 국적을 취해 병역을 해소하는 것도 전혀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으리라 생각한다(미국인이 되는 순간 한국의 병역을 져야 할 이유가 없으므로 기피가 아니라 해소가 맞다.).

배상문 선수는 골퍼고, 골퍼로서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UN 세계 인권 선언문 15조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모든 사람은 국적을 요구할 권리가 있고, 어느누구도 자의적으로 자신의 국적을 박탈당해서는 안되며, 자신의 국적을 변경할 권리가 부정되어서는 안 된다. 아직 대한민국 군대가 인권의 사각지대란 것을 생각하면 골퍼로서 전성기에 접어들던 배상문 선수가 당시 국적을 버리는 행위를 했다 한들 그 누구도 함부로 비난할 수는 없다 생각한다. 배상문 선수가 한국 국적으로 PGA 투어에서 골프를 치면서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한 적은 전혀 없지 않은가.

애시당초 이런 병역 관련 논란이 매번 일어나는 것은 결국 근본적으로 한국 군대의 문제이다. 한국 군대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이런 일은 매번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한국인들 전체가 갖고 있는 일반적 인식도 어느정도 책임이 있다. 한국인들은 자신들이 이미 ‘완수한 불합리’에 대해서는 개선하려는 인식을 두지 않고, 타인에게도 이것을 어떻게든 완수할 것을 강요한다. 마치 자신이 당했던 불합리를 고치지 않고 타인도 겪기를 바라는 것처럼 말이다. 기괴한 시험이 되어버린 수능 시험과 대한민국 군대처럼.

다시 한번 배상문 선수의 전역과 PGA 투어 복귀를 응원한다. 그리고 어떤 불합리하고 냉소적 반응에도 흔들리지 말 것을 당부한다. 바로 옆 동네를 봐도 ‘잘 나갈 땐 위성미, 못 나갈땐 미셸 위’ 라는 사례가 있지 않은가. 흔들리지 말고 자신의 길을 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