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음식이 사라지고 있다. 내 기억 속 짜장면의 가격은 2,500원이었다. 학창시절 용돈을 아낄 필요도 없이 부담없이 먹었던 음식 중 하나. 대학시절에도 학식보단 주로 짜장면이나 짬뽕을 먹었다. 학식이나 짜장면 값이나 크게 차이가 없었기 때문.

2002년, 고등학교 3학년 무렵. 88년도 서울올림픽 이후 우리나라에서 개최됐던 최고의 이벤트를 다들 기억할거다. 2002 한일월드컵. 당시 고등학교 3학년 남학생들에겐 3대 저주가 있었다. 김동성의 한맺힌 2002 동계올림픽,  게임 워크래프트 3의 발매, 한일월드컵. 도저히 책상 앞에 앉혀 놓지 않았던 그 해, 나도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

대구에 살았던 나는 3대가 아니라 5대 저주에 걸렸다. 앞서 말한 3대 저주에 더하여 그 해, 대구 동양 오리온스의 프로농구 리그 우승, 대구 삼성 프로야구 우승. 그야 말로 대구 고3 남학생들이 그 해 수능 전국 최하위 꼴찌를 해도 억울함이 없을 정도의 한 해였다.

게임 워크래프트를 제외하고선 모두 스포츠 이벤트였다. 몇 달만 더 있으면 곧 성인이 될 나이, 그렇지만 아직 알콜은 허용되지 않던 나이. 친구들과 나는 이렇게나 커다란 국가적 중대사(?)에 하필 나이가 딱 걸려 맥주와 함께 스포츠 이벤트를 즐길 수 없었던 것을 무지 한탄했었다. 그렇지만  친구들과 그저 모여 함께 하길 원했던 그 때, 이런 스포츠 경기가 있는 날이면 중국집이든 고깃집이든 모여 티비를 보며 콜라만 주구장창 마셔댔다.

2002년 6월 18일, 밤 8시 30분. 그 날도 친구들 몇명이 모였다. 우리가 살던 곳은 대구사람들이 모여 함께 응원하던 중심가와는 거리가 있던 지역이라 동네에 모이기로 했다. 학교가 대학가 근처에 있어 대학생들이 주로 모여 함께 응원했던 강당과 대형 스크린이 설치된 대학 운동장 등에서 그들에 끼어 역사적인 경기의 현장을 함께 느꼈다.

아직도 생각난다. 전직 복서였다는 비에리의 코너킥 헤딩슛에 선제골을 내준 우리 대표팀을 보던 모습을. 그렇게 전반이 마치고, 후반이 중반을 넘어갈 무렵, 친구들과 우리는 질 것을 예상하고 밥이나 먹으러 가자며 발걸음을 어느 한 고깃집으로 향했다. 대학가 주변이라 그런지, 술집과 식당들 마다 다들 손님을 꽉꽉 채우고 있었는데 운 좋게도 한 자리가 남은 고깃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당연히 채널은 이탈리아전이었고 모든 사람들이 고기를 먹으며 보고 있었다. 그리고 당연히 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 순간 사람들이 서서히 자리를 떴다. 그러던 찰나 설기현이 기적같은 동점슛을 넣었다. 온 사람들은 환호했고, 그 뒤에 연장전에서는 안정환의 헤딩골로 더 큰 환호소리가 터져나왔다. 부둥켜 안고 울고 불고 난리도 아니었다.

그 후, 그 해 스포츠 이벤트마다 항상 친구들과 우리는 고깃집을 갔다. 그리고 그 곳에서 돼지갈비를 시켜먹었다. 고깃집에서 돼지갈비를 시켜먹을때 마다, 우리가 응원하던 팀들은 항상 우승했다. 대구 동양오리온스도 그러했고, 삼성 라이온스도 그러했다.

그래서 내가 2002년도의 돼지갈비 가격을 잊질 못한다. 지역마다의 물가차이가 있겠지만 당시 대구에서 형성되어 있던 돼지갈비의 가격이 2,000원-2,500이었다. 대학가로 싼 가격에 형성되어 있었고, 비싼집이라봐야 3,000원이 넘지 않았던 시절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15년 전, 돼지갈비 가격이 2,500원이었다. 지금 대구의 돼지갈비 가격은 8,000원이다. 약 3배 가량이 뛰었는데 지금은 과연 고등학생들이 그때만큼이 배터지게 돼지갈비를 먹을 수 있을까.

나는 서민음식의 기준이 학생들이 마음 놓고 먹을 수 있나 없나로 따진다. 제한된 용돈으로 성장기 왕성한 식욕을 커버할 수 있는 음식이 진짜 서민음식이 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기준으로 보면 그 당시에는 고등학생이 랍스터나 스테이크를 썰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돼지갈비, 짜장면, 치킨(당시엔 치킨도 나름 가성비 높은 음식이었다) 등이 서민음식이었는데 이제는 그런 음식들이 존재하나 싶다.

비싸기만 했던 바나나가 이제는 쳐다보지도 않는 음식이 될 줄 누가 알았으며, 그런 음식이 또 존재하긴 할까. 물가는 높아지고 주머니 사정은 도무지 나아지지 않고 있는 요즘, 진짜 서민음식이 그립다. 어른이 되면 꼭 가봐야지 했던 포장마차도 더 이상 서민적이지 않고, 한땐 구황작물이었던 곤드레 나물도 이젠 고급음식이 되었다. 부모님들의 기억 속에 존재했던 값 싼 재료들이 한식의 주재료가 되면서 우리의 주머니를 털고 있다.

서민음식은 없다. 요즘 티비를 보면 음식과 요리 자체가 권력이 되어가고 있는 듯 하다. 그래서 여러가지 음식과 각종 식재료를 소개하는 필자지만, 내심 마음 속으론 이런 괴리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