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편해서 더 멋진, 남자 로퍼
나는 좋은 신발이 사람을 좋은 곳으로 데려다 준다는 말을 좋아한다. 신발장수가 의도적으로 만든 말인지도 모르지만, 마음에 드는 신발을 신은 것만으로 정말 조금쯤은 어디로든 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편안한 신발을 사면, 혹은 아주 멋진 신발을 사면, 그리고 처음 그 신발을 신고 땅을 밟으면, 이 말을 떠올린다. 아주 멋진 곳으로 날 데려가 달라고. 만나서 반갑다고.
마법에 걸린 것처럼, 멋진 신발이 가지는 힘이 다리는 물론 기분까지 가볍게 만든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인지 옷에는 별 관심 없는 사람도 신발만에는 관심이 많은 경우가 더러 있다. 대표적으로 내 동생이 그러한데, 옷은 한평생 어머니께서 사다 주시는 것밖에 입지 않으면서 신발만은 공을 들여서 고르고 마음에 꼭 드는 것이 아니면 신지 않는다. 신발에 만큼은 고집스러운 동생이 요즘 빠진 것이 바로 로퍼다.
로퍼는 구두의 일종으로 슬립온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끈이 없는 디자인의 단화를 주로 로퍼라고 지칭한다. 로퍼의 원래 의미는 Loafer, 즉 게으름뱅이라는 뜻이다. 끈이 없어 신고 벗는데 편리하고 굽이 낮아 편안하게 신을 수 있어서 이런 이름이 붙은 것이다. 재미있는 유래가 아닌가. 얼마나 편리했으면 이런 이름이 붙었을까 싶다가도, 로퍼를 신고 있으면 단박에 납득이 간다.
구두는 남자의 멋을 만드는 최고의 아이템이라고 생각하지만 역시 불편함이 단점일 수밖에 없다. 포멀한 분위기에 맞게 조금 딱딱하고 무거운 느낌이 있기 때문에 신고 하루종일 밖을 돌아다니거나 활동성 있는 일을 하기엔 발에 무리가 간다. 이럴 때 로퍼는 최고의 대안이 된다. 발이 편하자고 언제나 운동화만 신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댄디한 멋을 충분히 살리면서도 발을 편안하게 하는 게으름뱅이 로퍼야말로 이 시대의 패션피플이 꼭 갖추어야 할 잇 아이템이 아닐까.
소재에 따라, 디테일에 따라, 장식에 따라 로퍼의 매력은 천차만별이다. 그만큼 폭넓게 활용할 수 있다. 먼저 페니로퍼는 구두의 끈 대신 가죽으로 된 장식을 덧대어 만든 구두로 아이비리그 학생들이 행운을 가져다 준다는 의미로 장식 사이의 홈에 동전을 넣고 다녔다고 페니로퍼, 코인로퍼로도 불렸다. 로퍼 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형태에 속하며 심플하고 캐주얼한 느낌이 좋아 어디에나 잘 어울리며 가벼운 수트에도 매칭하기 좋다.
조금 화려한 것을 좋아한다면 구두 끈 대신 작은 술이 달린 테슬로퍼를 추천한다. 포인트가 있어 심심하지 않고 보다 캐주얼한 룩에 어울린다. 면바지나 청바지 등의 다양한 스타일에 잘 맞고 다른 구두에 비해 높이가 상대적으로 낮아 발목이 쉽게 드러나기 때문에 컬러나 무늬가 있는 양말과 매치하면 더 멋스럽게 신을 수 있다.
소재 역시 로퍼에 있어 중요한 요소인데 광택이 없는 부드러운 소재, 스웨이드 로퍼는 셔츠나 면바지 같은 캐주얼 룩에 잘 맞고 포멀한 차림의 경우 가죽 같은 광택이 있는 소재가 조화롭게 밸런스를 잡아 준다. 마지막으로 계절감을 생각해서 컬러까지 고려한다면 로퍼 하나로 달라지는 분위기를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좋은 신발은 정말 우리를 좋은 곳으로 데려가는 것일까? 모르겠다. 신발 장수의 농간이라도 상관 없다. 멋진 구두를 신은 나는 분명 신기 전의 나보다 훨씬 행복하고, 즐거운 발걸음을 갖게 되니까. 이런 마음이라면 더 좋은 곳으로 갈법도 한 것 같다. 게으름뱅이 같은 여유로운 마음으로, 하지만 한껏 활기차게! 걸어 볼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