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알못의 골프단상 49

한국판 그랜드슬램의 제시, 그리고 그 이후.

해럴드 경제 <박노승의 골프 타임리프> 기사는 내가 자주 참고하는 골프 칼럼이다. 골프에 대한 깊이나 해박함이 나와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나는 이 칼럼을 자주 정독하고 정보도 얻고 공부를 하는 편이다.

지난 주 이 칼럼에서는 거기에 더해 아주 흥미로운 제안을 했다. 바로 한국판 그랜드슬램을 확정하자는 제안이었다.

일단 현재의 그랜드 슬램은 1960년 마스터스와 US 오픈을 연속 제패한 아놀드 파머가 디 오픈에 참가하기 위해 영국으로 가던 중, 동행취재 중이던 밥 드럼 기자에게 그랜드 슬램을 위한 새 메이저 대회의 개념을 제안하며 시작되었다. 밥 드럼 기자는 영국에 도착해 다른 골프 기자들에게 파머가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기 위해 영국에 온 것이며, 디 오픈 후 마지막 메이저 대회는 PGA 챔피언십이라고 설명했다. 영국 기자들이 이 내용을 기사화했고, 미국의 미디어들이 이를 받아 쓰며 이로써 마스터스, US 오픈, 디오픈, PGA 챔피언십으로 이어지는 4대 메이저 대회, 즉 그랜드 슬램이 확정된 것이었다.

박노승 씨는 이 칼럼에서 한국도 메이저 대회 4개를 확정하고 이에 한국 그랜드 슬램이라는 정의를 명확히 해서 프로선수들에게 명예를 걸고 경쟁할 수 있는 목표를 주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거기에 더해 최초의 그랜드 슬램이 확정된 과정에서 보듯 메이저대회란 주최측이 정하는 게 아닌 미디어와 팬, 선수들이 정하는 것. 그러니 팬들이 가장 보고 싶어하는 대회, 기자들에게 가장 풍성한 이야깃거리를 남겨주는 대회, 그리고 무엇보다 선수들이 가장 우승하고 싶은 대회를 엄선해 공식적으로 미디어들이 4대 메이저 대회를 확정하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판 그랜드 슬램의 4대 메이저 대회로 한국오픈(60회), KPGA 선수권대회(60회), 매경오픈(36회), 신한동해오픈(33회)를 제시했다. 이럴 경우 한국에서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사람은 최상호 프로 한 명이고 한장상 최경주 배상문조차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지 못한 게 된다.

내가 보기에도 흥미롭고 또 정당한 의견제시였다. 나는 이런 논의 제시가 꽤나 신선했고, 실제로도 이런 것들이 미디어와 팬들의 시선을 끌고 선수들에게 강력한 동기부여도 될 것이라 생각했다. 무엇보다 최경주 배상문조차 아직 커리어 그랜드슬램이 되지 못했으니 말이다. 나는 이 기사가 뭐 폭발적이지는 않겠지만 나름 화제성 있는 공론의 장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이 칼럼은 완전히 묻혀졌다. 스크랩해놓은 기사에 가 보니 댓글은 전체 다 해서 21개에 지나지 않았다. 네이버 골프 뉴스 파트에 가 보니 가장 댓글이 많은 골프 기사는 유소연 선수의 세계랭킹 1위 그리고 메이저 여왕 등극 기사였고, 그 기사의 베스트 댓글은 아니나 다를까 유소연 선수 아버지 욕이었다.

어떤 씁쓸함이나 가슴아픔 혹은 슬픔, 뭐 이런 감정은 아니었다. 일련의 사태를 보며 깨닳은 것은, 박노승 씨가 칼럼에서 제안한 한국판 그랜드 슬램 제안은 신선하고 또 굉장히 좋은 제안이었다. 다만 그 제안 자체가 돼지목에 진주였을 뿐. 아직 한국 골프계에 그랜드 슬램 같은 건 사치인 듯 보인다.

걍 모두들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골프 치면 되실 듯 하다. 지금껏 해왔던 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