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연한 가을이다.

하늘이 높아지고 구름은 적어지고 해는 짧아진다. 가을 날씨라고 하면 아침, 밤으론 춥고 낮엔 더운 것이 정석이다. 아침에 외출할 때 춥다고 조금만 두껍게 입었다간 오후 내내 더워해야 한다. 그렇다고 ‘어제 덥더라.’하면서 얇게 입고 나가면 몸을 잔뜩 움츠리고 이번엔 ‘괜히 이렇게 얇게 입었어!’하면서 떨게 되는 것이다. 거듭되는 코디 실패. 이럴때 입는 것이야말로 아우터지! 라는 결론에 이르러 쟈켓을 들고 나가 본다. 좋아, 쟈켓을 입으니 춥지 않다! 더우면 벗으면 된다. 그런데 문제는 입고 있지 않을 때이다. 하루 종일 들고 다니려니 귀찮아 죽겠다. 심지어 쟈켓을 입기엔 조금 더운 것도 같다. 이러고 있으면 가을은 더워하거나 추워하거나 귀찮아 하다가 끝나버릴 것 같다. 패션의 솔로몬이 있다면 이럴 때 명쾌한 해답을 내려줄 것이다. “가디건을 입어라!”

 

 
그렇다.
가을엔 가디건이 있지 않은가. 딱 적당히 따뜻하고 가벼우면서, 걸리적 거리고 귀찮아지면 가방에 쏙 넣어버리면 되는 이런 편안한 의류가 있다니. 가디건의 매력을 몰랐던 바보같은 과거의 나야 안녕. 이젠 가디건으로 평온한 가을을 맞이하겠어. 이렇게 되고 보니 가디건이야말로 세기의 만능템이자 이 계절에 최적화된 옷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코디하기도 편하고 아무데나 여기저기 잘 어울린다니. 무릇 간편한데 멋이 나기란 쉬운일이 아니지 않은가. 진정한 패션피플은 추위와 더위 따위는 감내하고 불편함을 수용해야 한다고 들었거늘, 가디건은 어째 사 모을수록 세련된 코디가 늘어가는 것 같다. 사무실에서도 야외에서도 가디건은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커버한단 말이다. 이런 사기적인 옷!
 
우리는 시크릿가든에서 현빈이 줄창 가디건만 입고 나올 때 알아봤어야 한다.
물론 얼굴이 80프로 이상 해내고 있지만 극중 캐릭터의 깔끔하고 이지적이면서도 무심한 이미지를 완성하는 데는 그 다양한 가디건 코디도 한 몫 했음이 틀림 없다. 면티에 가디건을 코디하면 부드럽고 댄디한 분위기를 낼 수 있다. 티와 가디건의 색 조합만 가지고도 다양한 이미지를 만들 수 있으니 매일 뭘 입어야하나 고민했다면 이제는 그럴 필요 없다. 이것 저것 매칭하느라 까다로웠던 어제와 작별하고 내게 어울리는 가디건을 돌려 입으면 고민 끝!
 
셔츠와의 조합도 훌륭하다.
가지고 있는 티와 가디건의 경우의 수를 모두 돌려 입었다면 이제 셔츠로 넘어가자. 셔츠도 가디건과의 합이 일품이니까. 화려한 셔츠보다는 깔끔하고 단정한 계열의 셔츠를 받쳐 입은 다음 색감이 잘 어우러지는 가디건을 무심하게 걸치는 것이다. 적당히 꾸민 느낌이 나면서도 깔끔하고 온화한 느낌을 줄 수 있다. 가디건이 민자라면 스트라이프 셔츠를, 셔츠가 민자라면 포인트 패턴이나 무늬가 있는 가디건을 입으면 좋다. 현빈까지는 아니어도 조금은 시크한 멋짐 게이지가 올라갈 것이다.
 
가을이 짧다고 걱정할 필요가 없다.
가디건이 가을에 최적화된 옷인데 가을이 짧아서 걱정이라고? 그것은 모르시는 말씀. 가디건은 단품으로도 매력적이지만 코트나 여타 아우터 안에서도 기가 막히게 레이어드 되는 녀석이다. 겨울이 오면 이너 입고 아우터 입고, 그 사이에 가디건을 입으면 된다. 그러다가 겨울이 또 지나가고 조금씩 따뜻해지는 것 같으면 다시 슬쩍 아우터를 벗어주다가 봄이 오면 가디건을 단품으로 입고 다닐 수 있다. 여름에만 조금 필요 없을 것 같겠지만 여름엔 실내에 에어컨 바람이 강해서 또 꺼내게 되는 것이 가디건이다. 이렇다 보니 가디건은 창고에 넣어둘 틈이 없다. 언제나 필요하고 언제나 우리 곁에 있어야 하는 옷이야말로 ‘가디건’이 아닐까. 쌀쌀한 가을 밤을 맞은 나는 오늘 이렇게 주장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