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럽게 정신없이 아침을 씻고 집 나갈 준비를 했다. 메신저를 확인하면서 오늘이 부모님의 결혼기념일인 걸 알았다. 서러운 자식이 오늘이야말로 부모님의 결혼기념일인 걸 알고 아, 1년이 지났구나 하는 발칙한 생각을 한 것이다. 나는 서럽게 걸터앉아 눈물을 흘리고 또 흘리진 않고 아, 시간이 조낸 빠르다 짐작하며 서러운 생을 살러 아침 11시 28분 집을 나섰다.

나는 하루 일정이 없다가도 생기는 신기한 날을 산다. 물을 마시고 물레를 돌리고, 점심을 먹고 물레를 돌리고, 물레를 돌리고 물레를 돌리고, 해가 지면 낮잠을 잔다. 조낸 열심히 산다. 숫제 뵌 적이 없는 고향 옆집 아주머니를 닮은 이모의 식당에 가서 제육뽂음을 먹고, 가족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메신저에 “여기 제육뽂음이 조낸 맛있어서 어머님 생각이 하나도 안 납니다”하고 보냈다. 우리 재치 있으신 어머니께서 한 마디를 지지 않으시고 “아들은 대학 가면 사촌, 군대 가면 팔촌”이라며 나를 실소하게 하신다. 나는 먹은 제육뽂음을 다 토해낼 정도로 실소하다가 문득 눈물이 조낸 났다. 눈물이 조낸 나는데 주저앉으니 까만 아스팔트 바닥에 까만 개미 한 마리가 지나간다. 나는 그 개미를 가엽게 여기어 이 세상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가여움에 눈물이 조낸 났던 것이다. 곧 나는 안산 바닥에 주저앉아 개미를 보고 눈물을 조낸 흘리며 나는 동정심이 조낸 강한 마르크스적 인간이라는 생각을 하는 상태에 이르렀다. 그래도 나는 사내아이의 가오를 위해 조낸 서럽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따라서 나의 승리였다.

친한 사람들과 술자리엘 갔다. 나는 당최 술이 몸과 맞지 않는 순결적 사람인지라 이런 술자리가 몹시 달갑진 않았지만, 사내의 가오를 위해 위풍당당 술집을 향해 나아갔다. 술자리에 가면 사람들이 술을 마시고, 술을 마시면 술만치도 못한 자신의 삶에 대하여 고달픔에 대하여 궁구하는 조낸 진지한 이야기가 나올 줄만 알았건만, 웬걸. 나의 사람들이 술로 풀어낸 이야기들을 들으니 삼백육십도 디스코팡팡을 물구나무서서 탄 것마냥 어지러워지는 것이다. 나는 재차 내가 순결하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온전한 정신을 유지하기 위해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를 세고 있었다. 그때쯤이었다. 선배 한 분이 벌떡 일어나시더니 내 동기를 향해 걸어가 두 손으로 술을 따르는 것이었다. 조낸 당황한 나는, ‘야자타임’이라는, 불과 몇 달 전 나를 춤추게 했던 불길한 이름의 술자리 놀이문화에서 태연하기 위해 몹시도 애를 썼다. 간단하게 말해 아래위가 역전되는 이 시추에이션은 윗사람에게 조낸 까이는 우리 어린 것들의 발광과도 같은 귀여운 아니 가여운 놀이였다. 어쩌다 학교를 조금 일찍 들어간 나는 그 자리에서 곧장 가장 어른 취급을 받게 되었다. 내가 동기들보다 어리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은 순간이었다.

아아, 어린 것은 조낸 슬픈 일이다. 편의점에서 홀로 술담배 하나 사 못 먹는 서러움을 누가 알랴? 어린 나는 오죽하면 술자리로 가는 위풍당당한 길 위에서 담배를 뻑뻑 피워보는 게 소박한 꿈이다. 나는 아무래도 가여운 어린 것들을 위하여 세상을 하나 더 만들 생각이다. 어린 것들을 위한 가여운 세상엔 나의 어린 친구들, 어린 꽃과 나무들, 어린 하늘과 어린 단풍, 어린 내 스마트폰을 넣을 테지. 거기서 다 같이 물레방아나 조낸 돌리는 것이다. 그래도 주말엔 무지막지한 휴식을 선사할 게다. 바닥에 뺨을 아주 붙여서 떨어지지 못하게 할 거다. 장담컨대 어린 것들의 행복은 그게 다일 게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조낸 불쌍한 것들이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조낸 스치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