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하고 고루한 나날들이었다.

그렇다고 마냥 무의미하지만은 않았다. 나는 나름 잘 살아왔다. 그녀를 보내고 난 후 말이다. 사랑은 참 야속하다. 그녀와의 관계가 끝나도, 당최 멈출줄을 몰랐다. 뉴턴이 발견한 운동의 제 1법칙은 사람들간의 사랑에서 먼저 발견된 것이 틀림 없다. 그 관성의 법칙은 머리, 가슴, 육체, 생각, 추억과 기억 모든 것에 적용된다. 그녀와 내가 멈춘 건 10년 전이지만, 가끔 아직도 제 속도를 제어하지 못하고 튀어나오는 것들이 있다. 무의식 속에 눌러놨던 어느 하나의 추억들이 그것이다. 사소한 그 추억 하나에 잠시 잠을 못 이루는 날이면 나는 어김 없이 바깥으로 나가 달렸다.

 

그녀는 운동을 참 좋아했다. 어디 멀리 바람 쐬러가자하면 약간은 귀찮은듯 앙탈을 부리곤 했지만, 운동할때만큼은 달랐다. 귀찮을 것이라곤 하나도 없어 보이는 그 철두철미한 운동에 대한 열정은 나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달린다. 그녀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할 때. 물론, 그러한 날이 일년에 몇 날 되지 않는다. 그리고 가슴아파 달린다기 보다는, 그녀와의 추억을 음미하기 위해 뛴다. 생각만해도 아프고, 밉고, 그 존재 자체를 죽여버리고 싶었지만 시간이 지나니 마음 한 편에 몇 가지 정도 추억은 담아 놓는 것이 좋겠다는 여유가 생겼다. 달리면서 곱씹는 그녀와의 추억은 꽤 쏠쏠하다. 이제는 그것들을 잊지 않기 위해 뛰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분명 그렇다.

 

그녀는 홈트레이닝을 즐기곤했다. 그래서 내가 그녀의 집에 가면 어김없이 우리는 함께 운동을 했다. 가지런히 정리된 책상과 침대. 그 옆에 놓인 운동 매트와 작은 아령. 보기만해도 그녀의 몸매가 연상되는 레깅스와 운동복이 운동에 대한 그녀의 열정을 말해주고 있었다. 나는 물론 운동보다는 그녀와 함께 하는 시간이 더 좋았다. 함께 스트레칭을 하며 자연스럽게 나누는 스킨십은 우리의 사랑을 더욱더 견고하게 했다. 그녀의 손길 그리고 유연한 신체의 어느 한 부위가 나에게 다가올 때면 내 몸은 곧바로 반응했다. 동시에 숨은 가빠지고 얼굴은 빨개졌다. 그러는 나를 보며 그녀는 귀엽다며 깔깔댔다. 부끄러운 기색을 할 겨를도 없이 나는 깔깔대는 그녀를 와락 안고는 사랑을 나누었다. 운동으로 단련된 그녀의 몸은 나의 온 신경을 집중케했다. 과연 그녀는 무엇을 위해 이리도 운동을 하는 것일까. 자신의 건강과 만족을 위해서겠지? 하지만, 그것을 누리는 것은 나였다. 고로 나는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다.

 

“오빠, 같이 뛸까?”

품안에 안겨 있던 그녀는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일어나 운동복을 입었다. 그러고는 턱을 들어 문을 가리켰다. 고집 피워봤자 안된다는 것을 안 나는 주섬주섬 옷을 챙겨 그녀를 따랐다. 해가 뉘엿뉘엿한 하늘이었다. 내 기억엔. 가을 하늘이라 높기도 높았던 하늘아래 한강은 아름다웠다. 나란히 뛰는 그녀의 찰랑거리는 포니테일이 예뻤다. 정말 예뻤다. 다시금 그녀를 와락안고 싶었지만 상황상 그럴 수 없었다. 숨이 차오르는 나를 뒤로하고 그녀는 앞으로 달려갔다.

 

“자 마셔요.”

그녀가 나에게 건넨 시원한 음료수는 구원이었다. 숨을 헐떡이며 나는 물었다. 왜 이렇게 운동을 좋아하는지. 지치지도 않는지.

 

“살아 있는 것 같아. 운동하고 뛰고하면. 너무 힘들어 죽고싶다가도 운동을 하면 숨을 쉬게 돼. 그래서 살아야지…하는 생각이 들어. 몸에 흘러 내리는 땀은 나를 정화시켜 주는 것 같아. 넓은 물과 흐르는 물은 무엇이든 씻어 준다잖아. 내 맘 속에 있는 힘든 모든 것들을 그렇게 씻어버리고 싶어. 물론, 사랑하는 오빠가 있어서 삶이 더 아름답지만 말이야.”

그저 간단한 질문에 심오한 대답을 들으니, 왠지 그녀의 아픔이 느껴졌다. 씻고싶은 아픔이 있다는건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다. 그리고 이토록 운동하고 뛰는 그녀를 보면 그 아픔은 예사롭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애써 더 숨찬척을 하며 그녀가 건넨 음료수를 목을 젖혀 끝까지 털어넣었던 기억이 난다. 하늘은 높았다. 그녀도 함께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그랬던 그녀를 다시 본 건, 헤어지고 난뒤 정확히 10년 후인 오늘.

유럽의 출장길에서였다. 주말을 맞이해 잠시 시내 구경을 나왔던 터였다. 트램을 타고 가다 그녀와 비슷한 여자를 봤다고 생각한 순간. 난 그녀임을 확신했다.

그녀를 보고 난 직후, 두서 없이 떠오른 그녀와의 기억은 마룻바닥에 쏟은 밀가루와 같았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주워담아야 하는지, 과연 수습은 될지. 한국도 아니고 트램과 자전거가 복잡하게 오가는 자유의 도시 한 가운데서 만났으니 믿기지가 않았다. 마룻바닥에 널린 밀가루를 치울새도 없이 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녀가 맞긴 맞는 걸까? 우왕좌왕하는 사이 그녀가 건널목을 건너고 있었다. 그녀의 포니테일은 여전했다. 찰랑거리는 탄력도 그대로. 운동으로 다져진 아름다운 몸도 그대로. 그러니 바로 그녀가 맞는 것이다. 갑자기 숨이 차올랐다. 트램에서 내린 나는 그녀를 뒤따랐다. 그녀는 여전히 뛰고 있었다. 세련되보이는 운동복과 신발은 테가 났다. 그녀가 그것들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다.

 

뒤에서 나지막히 그녀의 이름을 불렀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아마 귀를 덮은 헤드폰 때문일 것이다. 신호등 앞에서 멈춘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화들짝 놀란 그녀의 반응을 느낄 수 있었다. 온 몸을 들썩거린 그녀였지만 놀랍게도 그녀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이런 날이 올걸 알기라도 한듯이. 빠르게 달리는 자전거, 지금 막 바뀐 신호등, 덜컹 소리를 내며 굼뜨게 지나가는 트램, 한껏 들뜬 여러 나라에서 온 발걸음 바쁜 관광객들 사이에서 우리 둘만이 정지해있었다. 우리만 두고 돌아가는 세상에 순간 현기증이 날정도로 그 정적과 부동의 몸짓은 그대로였다.

 

“잘 지냈어요?”

그녀의 목소리는 평소와 같이 또랑또랑 했다. 10년 전 어느 노천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던 우리가 떠올랐지만, 지금은 손을 잡지 않고 있었고 주위에 지나가는 사람들의 뭔지 모를 외국어가 분위기를 낯설게 하고 있었다.

 

“아, 내가 이런 말할 자격이 있나. 갑자기 떠난 건 난데.”

그제서야 떠올랐다. 우리의 이별은 도망치듯 떠난 그녀때문이었다. 애써 눈웃음을 보이는 그녀의 표정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애써 괜찮다고 손사래를 친 나는 정말 궁금했다. 그녀가 떠난 정확한 이유는 무엇이고, 또 그녀가 말한 아픔은 무엇이었는지. 그녀가 떠난 이유가 그 아픔 때문이었는지도.

 

“그나저나 여기서 이렇게 만날줄은 몰랐어. 그런데, 신기한건 오빠가 내 어깨에 손을 얹었을 때. 나도 모르게 오빠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바로 뒤돌아보지 못했어. 아닐수도 있지만, 고개를 돌렸을 때 정말로 오빠가 아닐까봐. 정말 웃기고 앞뒤 안 맞는 말이지만.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녀는 살짝 고개를 떨구었다. 갑자기 만감이 교차했다. 다 잊었고, 여유롭게 허세까지 부리며 필요할 때만 생각하던 그녀가 눈앞에서 이런말을 하니 가슴이 요동했다. 앉아 있어도 한숨에 단거리를 뛴 느낌. 말을 하려다 숨이 차서, 입을 막고 헛기침을 하며 숨을 골랐다. 그리고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괜찮다, 나도 가끔 네 생각했다, 만나서 반갑다는 못나고 못난 말들의 열거였다. 흡사 아무말 대잔치를 하는 나를 보며 그녀가 살짝 웃었다. 나를보며 깔깔대던 그 웃음이었다. 그녀를 와락안아 사랑을 나누기 바로 직전에 보았던 그것.

 

우리는 서로 탐색했다. 결혼은 했는지, 아이는 있는지. 누구를 만나고 있는지. 여기서 무얼하며 살고 있는지. 그녀는 혼자였다. 나도 혼자였다. 하지만 서로가 혼자인 이유가, ‘서로’ 때문만은 아니었다. 충분히 가정을 꾸리거나 결혼을 하려면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서로가.  그녀는 그토록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한다고 했다. 나를 떠난 뒤 2~3년 후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그리고 꾸준히 운동은 이어갔단다. 그녀의 몸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가끔은 내 생각을 했냐는 질문을 하려다 너무 유치한 것 같아 그만두었다. 그녀도 그런 질문은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렇게 만난 서로를 놀라워했다. 운명으로 이 순간을 포장할 수 있을까? 아니면 정말 운명인걸까? 결국, 10년이 지나도 변한건 없었다. 10년이라는 시간을 제외하면 아직도 서로 데이트를 하고 있다고해도 그리 낯설지 않은 상황이었다.

 

“오빠, 같이 뛸래요?”

10여분 간의 정적 뒤에 그녀가 말했다. 우리는 서로 웃었다. 고집피워봤자 안된다는 느낌이 갑자기 들었다. 잠시 기다려달라고 하고 신고 있던 운동화의 다이얼을 돌려 끈을 조였다.

고개를 들었을 때 그녀는 이미 일어나 있었다. 날씬하게 쭉 뻗은 다리가 레깅스 위에 고스란히 나타났다. 팔을 들어 스트레칭하는 사이 잠시 보이는 배는 여전히 군살 없이 탄탄해보였다. 나와 있는 나의 배에 힘을 주고는 노트북이 든 가방을 등에 밀착해 맸다. 그녀는 작은 얼굴의 턱을 들어 같이 뛰어갈 방향을 가리켰다.

 

나는 느꼈다. 그녀와 같이 뛰고 어느 목적지에 다다르면 마침내 그녀가 떠난 이유를 알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그녀의 아픔이 무엇이었는지. 내가 감당하지 못할 아픔이었는지. 아니면 내가 그 아픔에 너무 무관심했던 것인지. 나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것처럼 그녀는 나와 눈을 마주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웃었다. 살짝 처진 그녀의 웃음을 좋아했던 내가 기억났다.

 

10년이 지나 먼 이국땅에서도 여전히 그녀를 뛰게 만드는 아픔은 뭘까. 드넓은 물이나 흐르는 물로도 모자라, 스스로 흘리는 땀으로 씻겨내고자 했던 그녀의 아픔의 크기는 대체 얼만큼일까. 그 이야기를 듣고 아픔을 헤아리면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나의 목적은 그녀와 다시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 다시 시작한들, 그 아픔을 알지 못하면 그녀는 또 떠날 것이다. 그 아픔을 알고나면 우리 사이는 결정될 것이다.

 

그녀와의 기억이 놓여지지 않았던 이유.

내가 계속해서 뛰었던 이유.

내가 그녀를 기억하는 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