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그것이 필요한 자들의 곁으로

가성비

가격대 성능 비율. 줄여서 가성비. 이 말을 누가 처음 만들었을까. 누가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참 탁월하다는 생각이 든다. 헌데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 중에 하나는 가성비에서 중요한게 가격이란 것이다. 틀렸다. 사실 가성비에서 중요한 것은 가격보다도 성능이다. 단순히 가격만이 중요하다면 중국 사람들도 안 쓸 중국 OEM 제품들이 판치던 시절이 진정한 가성비의 시대라고 할 법하다. 허나 시대는 변했다. 이제는 가격보다도 성능이다. 가성비의 진정한 의미는 ‘성능’이 잘 나온다면 그게 얼마가 되었든 ‘제값’을 줄 수 있다는 심리다.

물론 물건의 가치를 단순히 ‘성능과 기능’에만 한정할 수는 없다. 단순히 성능과 기능으로만 값을 매길 수 있는 건 디자인적인 심미성과 심리적인 만족감 같은 건 무시할 수 있는 제품들에만 한정된다. 때문에 이 가성비를 가지고 논쟁을 할 때 가장 많이 맞붙는 게 바로 남과여, 이 두 종족일 것이다.

여성들이 주로 소비하는 제품들은 단순히 성능과 기능뿐만이 아닌 미학적인 면에서도 심리적 만족감을 줘야만 비로소 ‘제 기능’을 한다고 볼 수 있는 제품들이 많고, 남성들이 소비하는 제품들은 주로 눈에 보이는 심미성을 일정부분 포기하더라도 중요할 때 제 기능을 할 수 있는 터프함을 필요로 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남성과 여성의 생활영역, 경제활동 영역이 다름에서도 기인할 것이다.

어쨌든 이 가성비가 화두로 떠오른 시점도 재미있다. 2000년대 후반 미국발 경제위기가 세계를 덮치면서 전세계는 긴축에 들어갔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고, 이 시점부터 가성비라는 단어가 슬금슬금 화두로 나오기 시작했다. 소비자들의 소비 패턴이 달라지기 시작한 시점이 바로 이때이다.

중요한것은 가성비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소비하는 사람에 따라서 그것이 다르게 적용된다는 것이다. 예컨대 패션 마니아는 핫한 디자이너가 만든 스카프를 억만금을 더 줘서라도 갖고 싶어하지만,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동네 SPA 브랜드에서 산 스카프보다 못할수도 있다. 얼리어답터로 소문난 누군가가 갖지 못해 안달이 난 최신 전자기기는 누군가에게는 그저 손안에서 현재 잘 터지고 있는 전화기보다 못한 제품이다.

그래서 사실 본질적으로 가성비 논쟁은 어떤 제품이든 그것은 그것이 필요한 사람의 곁으로 가야한다는 것이다.

골프는 누구에게 필요한 스포츠인가

골프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일까. 반박할 수 없이 그것은 ‘귀족적’ 인 것이다. ‘돈 많은 자의 스포츠’. 이것이 바로 골프의 이미지다. 한국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사실 맞는 이야기다. 한국에서는 더더욱 맞는 이야기기도 하다. 돈 벌자마자 사람들이 제일 먼저 배우고 싶어하는 건 승마, 스쿠버다이빙, 그리고 골프다. 그리고 이 셋중에서 가장 접근이 쉽고 보급이 잘 되어있는건 역시 골프다. 골프는 태생부터 가진자의 스포츠였고, 귀족들의 스포츠였으며 현재도 그러하다.

이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스포츠는 제각기 나름 귀족적인 출발선을 가진다. 헌데 중요한 것은 그 태생이 아니라 바로 현재이다. 현재의 골프계는 자신들의 이런 이미지에 대해 오히려 긍정적으로 평가하는듯하다. 골프가 귀족적이고, 이것들은 가진자들의 스포츠라는 것을 오히려 더 홍보하는 느낌이다. 골프를 배워 귀족이 될수 있습니다, 같은 캐치프레이즈라면 이해하겠으나 사실 귀족만이 골프를 합니다, 라는 캐치프레이즈는 이해하기가 어렵다. 물론 골프 측에서 적극적으로 자신들이 귀족이라든가 골프를 배워서 귀족적이 될수 있다든가 그 어떤 포지션도 취하고 있지 않기는 하다. 그러나 골프는 대중들이 골프에 갖는 이미지들, 그중에서도 귀족적이거나 가진자들의 스포츠라는 것들을 절대 부정도 하고 있지 않다. 오죽하면 최근에는 오히려 프로선수들에게조차 필드에서의 복장 규제를 더 강화하는 룰개정까지 있었다.

그러나 과연 골프의 본질과 태생, 이미지를 떠나서 골프는 가진자들에게 필요한 스포츠일까. 돈을 벌자마자, 부자가 되자마자, 조금 여유가 생기자마자 그 후에 골프를 배우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골프일까. 뭔가 제반사항이 되지 않는다면 골프를 익히는 것은 사치일까. 골프는 심리적으로 경제적으로 이미 준비가 된 사람들에게만 열려있는 스포츠일까. 영화 <킹스맨>의 명대사처럼 매너가 신사를 만드는게 아니라, 준비된 신사만 매너를 말할 수 있는걸까.

골프라는 스포츠의 본질적 가치는 익히 말했듯 매너에 있다. 골프라는 스포츠가 매너를 어느정도로 강조하냐면 이들은 심판의 존재조차도 부정할 정도다. 진정한 매너있는 골퍼, 필드위의 신사들은 부정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심판들의 감시따위는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상대방과의 경쟁 이전에 자신과의 싸움을 말하는 것이 골퍼들이다. 공정경쟁이 필수인 스포츠에서 이런 게 과연 가능할까 싶지만 이런 시스템으로 골프는 태어나면서부터 21세기인 지금까지 유지되어왔다. 물론 거기에는 여러 가지 논란 특히 선수들의 치팅 논란이 항상 잇따라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골프측의 입장은 단호하다. 골프라는 스포츠의 본질이 바로 거기에 있다는 것이다.

골프라는 스포츠의 본질이 그것이라는 데에는 크게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골프의 본질이 누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인지는 한번 생각해볼만한 문제다. 내가 말하려는 것은 바로 거기에 있다.

골프라는 스포츠가 말하는 본질. 즉 매너, 여유, 경쟁하는 상대방에게조차 예의있고 자신에게는 엄격한 프로 정신. 승부에 최선을 다하는 투쟁적인 정신. 끝까지 승부를 뒤집기 위해 노력하고 그럼에도 비열한 수단은 쓰지 않으려는 정신. 비록 감시자가 없다해도 말이다. 거기에 광활한 대자연을 누비며 기르는 호연지기까지.

골프의 이런것들을 오직 가진자들만이 누릴 수 있다는 건 시대정신과도 어울리지 않는 것 아닐까. 오히려 이런 골프의 가치가 진정 필요한 것은 바로 저소득층 사람들이다. 골프는 태생은 귀족적이되 <킹스맨>의 말처럼 젠틀맨이 되지 못하는 많은 이들에게 매너를 가르쳐줄 아주 좋은 수단이 될수 있지 않을까.

매너란 어떻게 탄생하는가

전쟁으로 황폐화된 중국의 전국시대, 거기서 백가쟁명했던 제자백가들의 시대. 공자가 예를 말했던 시기도 바로 이 시기다. 예로서 사람을 교화시켜야 한다고. 그러나 적지 않은 사상가들은 당대든 후대에는 이 공자의 말을 반박했다. 그들이 주장한 바는 이렇다. 사람은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어야만 비로소 예를 논할 수 있다. 실질적으로 그러하다. 당장 오늘 먹고 죽을 밥도 없는 처지에 예는 무슨 얼어죽을 놈의 예인가.

어찌보면 먹고사는 게 해결된 사람들이 골프를 찾는 것은 ‘예’를 찾는 것과도 비교할 수 있다. 그러나 과연 그렇게 골프를 찾은 사람들이 과연 ‘예’라는 것을 골프에서 배워간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가?

불과 얼마전 한국에서 최초의 PGA 투어가 열렸다. 언론과 관계자들은 드디어 한국 골프가 한단계 발전했다며 호들갑들을 떨었지만 과연 그러했을까. 실제 투어에 참가한 선수들조차도 갤러리들의 비매너를 얘기했고(특히 카메라 플래쉬), 대회 진행은 아니나 다를까 개판이었다. 한국 최초의 PGA 투어는 사전에 사람들이 우려했던 딱 그만큼 논란이 되었다. 사실 새로울 것도 없는 게 이런 뉴스다.

골프는 매너를 교육하는 데 성공했는가? 이런 표면에 드러나는 현상들을 보자면 나는 단호하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아니오’. 매너라는 건, 예라는 건 그만큼 사람에게 교육시키고 주입하기가 힘든 것이다. 그것이 아무리 예를 강조하는 골프라고 한들 말이다. 사실 골프는 한국에서는 이미 ‘한국화’ 혹은 ‘헬적화’ 된지가 오래다. 수많은 선수와 선수 부모들의 갑질과 진상 논란, 대회의 파행적(이라고 쓰고 개판이라고 말하는) 운영. 이런 것들을 보면 골프는 한국에서는 적어도 본질적으로 실패했다. 선수들이 골프를 아무리 잘하면 뭘 하나. 한국에서의 골프문화는 귀족적인 기품과는 하등 상관없이 저급하기 짝이 없다.

못 배운 사람들이 매너가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 의미에서 골프에 비매너가 판친다는 것만큼 아이러니한 이야기가 또 없다. 앞서 말했든 골프는 심판의 존재 자체도 부정할 정도로 매너에 죽고사는 스포츠이다. 자고로 평소에 필드에 나가 골프를 치는 사람들이라면 실생활에서도 그 필드에서의 기품이 넘쳐 흘러야할텐데 한국에서는 그런 공식은 성립하지 않고 있다. 그런 면에서 골프는 타겟층을 다시 잡아야한다. 바로 저소득층과 골프를 접하기 힘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말이다.

골프가 오히려 저소득층에 더 필요한 스포츠라고 힘주어 말하는 이유다. 이미 한국의 양극화 문제는 심각한 수준이다. 소득격차의 문제는 이제 경제적 계층이 세습되는 문제에까지 이르렀다. 한국은 다시 조선시대의 봉건적 신분제 사회로 회귀하는 모양새까지 보이는 중이다. 이런 와중에 골프가 오히려 저소득층, 특히 어린 학생들에게 삶을 건강하게 살아가고 매너와 예라는 정신에 대해 교육시킬 수 있는 좋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 커서 졸부가 되어서 골프를 배우면 오히려 늦다. 골프가 말하는 예는 어린 아이들, 특히 예라는 게 피부로 와닿거나 필요하지 않을 것 같은 아이들에게 실제 피부로 와닿도록 만들 수 있다. 예라는 게 왜 필요한지, 매너라는 게 왜 필요한지 아이들은 필드에서 그걸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하는가

일부 못 배운 사람들이 물을 흐린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그 일부가 상당히 많고 골프에 덧씌어진 이미지들을 골프 측에서는 딱히 일소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 어차피 돈 있는 사람들은 골프를 한다는 배짱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골프에는 천년만년 위기가 찾아오지 않을까? 당장 LPGA 투어만 하더라도 현재 운영이 정상적이지 않다. 아시아계 골퍼들의 약진과 그에따른 아시아 기업들의 스폰서십이 아니었다면 진작 파산했을거라는 추정도 있다. 유럽 골프계의 처지도 마찬가지여서 현재 두드러지는 활약을 하는 골퍼들은 전혀 보이지 않고, 메이저 대회들을 빼면 유럽 골프계는 아주 조용하고 근근히 명맥을 이어가는 수준이라고 할 만하다.

타 종목인 야구나 축구 e스포츠 등을 봐도 한 종목의 인기라는 거품은 절정기에 언제 어떤 방식으로 갑자기 한번에 꺼질지 모른다. 2002년에는 축구가 위기라는 말을 쓸 줄은 몰랐다. 같은 시기 야구는 칼럼에서 평균 관객이 500명도 안나오는 대 위기라는 말을 썼다. 야구와 축구의 처지가 언제 바뀔지도 모르는 일이다. 혹은 e스포츠처럼 갑자기 승부조작 같은 것들이 터지면서 한 종목 전체가 사장되어버릴수도 있다. 골프라고 그런게 없으리라고는 말할 수 없다. 박세리의 등장으로 한국 골프가 갑작스런 전성기를 열었듯 말이다. 골프는 이미 현재진행형으로 위기가 진행중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젊은 미래 세대는 경제적 여유가 있지 않는 이상은 골프에 눈을 돌리려 하지 않는다. 암만 있는 사람들은 결국 골프를 한다 해도 있는 사람들의 수도 점점 줄고 있는 처지다.

종목은 완전히 다르지만 프로레슬링 브랜드인 WWE는 청년과 중년층 팬들의 엄청난 반발을 감수하면서도 현재의 정책을 끝까지 밀어붙이고 있다. 바로 미래세대, 그중에서도 초등학생 세대의 관객들에게 올인하는 정책이다. 새로운 팬들이 유입되지 않으면 산업 자체가 죽은 산업이 될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다. 오래된 팬들이 유치하다 소꿉장난같다고 하면서 브랜드를 떠나지만, 다시 그 틈을 초등학생들이 메꾸고 있다.

골프도 그러해야 한다. 골프는 이제 공교육의 틈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최종적으로는(그게 비록 성공하고 안하고는 상관없이) 모든 국민이 살면서 한번은 학교에서 골프를 통해 매너를 교육받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특히 저소득층 아이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말이다.

기업들도 이런 노력에 동참해야 한다. 칸투칸은 그간 전 브랜드에 걸쳐 귀족적인 고급화보다는 확실히 젊음과 패기 그리고 성능과 기능에 집중해왔다. 앞서 말한 ‘가성비’ 말이다. 칸투칸은 디자인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허례허식보다는 기능과 성능이라는 본연에 집중해왔다. 그덕에 타 브랜드들이 아웃도어나 스포츠 분야에서 고급화 전략으로 나갈 때 값은 저렴하지만 기능은 절대 떨어지지 않는 방식으로 승부해왔고 그 지점에서 성공했다.

그리고 칸투칸은 자신들의 브랜드 이미지, 그리고 추구하는 회사 철학인 도전, 열정 등에 맞춘 사회 공헌 활동도 꾸준히 해 왔다. 야구 팀인 NC 다이노스를 후원하고 대학 미식축구부를 지원하는 등 젊고 패기넘치는 도전적인 열정의 이미지를 잘 구현해내고 있다. 태생이 아웃도어 브랜드인 칸투칸은 그 기술력으로 골프웨어 사업에도 진출했다. 아직 시장에서 그리 큰 지분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들은 역시 그 특유의 기술력, 그리고 적절한 가격정책 바로 가성비와 젊고 공격적이고 열정적 이미지로 자신들만의 영역을 구축해나가고 있다.

바로 이지점에서 칸투칸의 골프웨어는 타 브랜드들의 고급지고, 중년 지향적이고, 귀족적인 이미지와는 태생부터 근본적으로 차별화가 될수밖에 없었고, 또 그렇게 잘 해나가고 있다. 그런차원에서 칸투칸의 골프계 후원이 특정 선수에 대한 후원보다는 유소년과 유망주 육성, 특히나 저소득층과 경제적 빈곤층, 진정으로 매너와 필드에서의 경험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골프를 소개하고 징검다리로 이끄는 역할을 해내기를 빈다.

귀족지향적이고, 비매너와 치팅으로 항상 논란이 되는 한국 골프계에, 칸투칸이 가성비, 그리고 젊음과 열정, 도전적 패기라는 정신에 맞게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