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김상무의 잔소리는 어김없이 시작되었다.

그의 입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자니, 소리는 사라지고 입의 조잘거리는 모양만 보인다. 들리지 않아도 알아차리게 되는 내용이 똑같은 일상의 반복을 다시 한 번 더 확인해주고 있다. 지난 달 실적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 벌써 30년, 아니 그와 같은 30분을 떠들어대고 있다. 잠시라도 눈을 돌려 김상무 뒤의 창문 너머라도 보고 싶지만, 독사 같은 김상무는 그것을 알아차릴 것이다. 어느 어설픈 자기계발서에서 눈 둘 곳이 없으면 상대방의 인중을 보라고 했던 것이 이순간 꽤 쓸모 있다. 내 뒤에 쭈뼛쭈뼛 서있는 팀원들은 아마 눈 둘 곳이 없어 내 뒤통수를 뚫어지게 보고 있을 것이다. 앞에서는 김상무의 날름거리는 혀와 입술이 보이고, 뒤에서는 원망과 짜증이 뒤섞인 시선이 머리를 조여온다.

갑자기 넓은 세렝기티 평야를 힘차게 달리는 치타가 떠올랐다. 앞에 무엇이 있던, 뒤에 어떠한 시선이 있던 그저 앞으로 내달리는 치타. 세링기티를 가본적도 없고, 치타를 눈 앞에서 본적이 있을리 만무하지만 아주 자연스럽게 그것이 떠올랐다. 아마도 그건, 어렸을 적 스쳐봤던 동물의 왕국이라는 기억의 편린이었으리라.

아차, 방금 김상무가 나에게 무엇을 물었다. 세렝기티의 치타가 되어 정처 없이 달리다 그만 그 질문을 듣지 못했다. 당황할 필요 없다. 눈을 깔고, 죄송하다고 하면 된다. 정말, 그렇게 그 순간이 지나갔다. 이 순간이 끝난 것도 김상무의 해산 명령을 들은 것이 아니라, 주섬주섬 움직여 나가는 팀원들의 인기척 덕에 알았다.

고작, 하루의 시작이었다.

먹고 사는 고단함을 하루 더 곱씹는 건 유쾌하진 않지만 꽤 익숙한 일이다. 꿈 많고 열정에 불탔던 신입사원 땐 그것이 달았었다. 모든 것이 내 세상이었다. 깨지고 혼나도 그러려니 했다. 배워가는 것에 열광했었다. 사서하는 고생도 그렇게 좋았더랬다. 그렇네, 정말. 돌아보니 그렇네. 무엇이 김상무 앞에서는 한 마디 못하고, 팀원들에게는 그저 그런 팀장이라는 소릴 듣는 나를 만들었을까. 사는 것인지, 살아가는 것인지, 살아내는 것인지, 살려고 발버둥치는 것인지. 스스로에게 물으면 물을수록 유쾌하진 않지만 꽤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오늘은 다른 날과 다르게 마음 속에서 무언가 올라왔다. 울화였다. 아, 아직 나에게 이런 것이 남아 있었나. 울화를 가장한 울컥일수도 있겠다. 아무렴 어떠랴. 갑자기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감정이 일자 몸이 요동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알 수 없는 용기가 생겼다. 대견했다.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나 자신에게 용기를 가져보라고 슬쩍 속으로 그 말을 건네보았다. 건네는 자와 받는 자 모두 낯간지러움을 느낀다. 어찌되었건 그것을 건네는 자는 그것을 무심코 던져버렸고, 받는 자는 그 말을 받아 들고는 멍하니 서 있는 모양새다.

그래, 한 번 용기 내 보는 거야.

나는 용기를 내 김상무가 주관한 저녁 회식을 불참하기로 했다. 이 따위 회식은 하기 싫다고 말하는 대신, 오늘은 둘째 녀석의 생일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둘째 녀석의 생일이 기억나지 않으므로, 거짓말에 대한 죄책감은 없다. 다만, 실수로 한 해에 그것을 두 번 써먹을까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의 부담을 가지게 되었다. 독사 같은 김상무는 그런 건 잘 알아차리기 때문이다. 어찌되었건 용기를 조금 내어 오늘 저녁 회식을 가지 않게 되었다.

사람들과 같이 퇴근하여 다른 발걸음을 가진 나는 어디를 갈까, 무엇을 할까 고민했다. 집으로 바로 들어가고 싶진 않았다. 갑자기 일찍 들어가면 아내가 놀랄 수도 있다. 회사에서 안 좋은 일이 있냐는 질문을 할 것이 뻔하다. 아이들도 멋쩍어할 수도 있다. 만날 늦게 들어가다 보니 아이들의 키를 세로가 아니라, 가로로 재곤 했다. 누워 있지만, 아이들은 쑥쑥 큰다. 키는 쑥쑥 크지만 부모에 대한, 특히 아빠에 대한 마음은 점점 줄어만 간다. 뭐라 불평할 자격도 없다. 나도 그랬으니.

술은 먹기 싫었다. 이런 기분을 취해서 보내버릴 순 없지. 영화를 보자니 작은 의자에 앉아 2시간 이상을 꼬박 보내려니 답답함이 느껴졌다. 배도 고프지 않았다. 그냥 서있었다. 어느 한 길거리 모퉁이, 신호등이 제때마다 바뀌는 곳이었다. 삼삼오오 지나가는 사람들 속에 그렇게 가만히 서있었다. 다시, 어디를 갈까 무엇을 할까. 용기를 얻어 얻은 시간. 나에겐 일탈과도 같은 것인데.

정신을 차려보니 다시 사무실이었다. 발걸음은 익숙한 곳으로 사람을 안내하고 만다. 텅 빈 사무실. 적막함 속에 털썩 내 자리에 앉았다. 고개를 들어 바라본 사무실은 평온했다. 그러고 보면 사무실은 죄가 없다. 사무실에 있는 사람들이 문제다. 서로를 못 잡아 먹어 안달이니. 그나저나, 나는 왜 다시 사무실로 돌아온 것일까. 나의 마음도 헤아리지 못하는 것이 구슬펐지만, 어쩐지 마음은 이상하게 편했다. 멍하니 앉아 있는 그 시간이 그리 좋았다.

사무실을 나선 나는 일탈의 하루를 기념하기 위해 택시에 올랐다. 평소라면 지하철과 버스를 번갈아 가며 환승 할인을 받았을 것이다. 하루하루 커가는 아이들은 많이 먹는다. 그리고 많이 배운다. 그러니 지금 잡은 택시는 나에겐 사치이지 일탈이다. 아니 아니, 전혀 불쌍하지 않다. 나는 괜찮다. 과감하게 택시를 잡은 나를 칭찬했다. 용기에 박수를 보냈다. 짜릿한 일탈에 소름이 돋았다. 시선은 미터기에서 떠날 줄 몰랐지만. 그래서 잠시 눈을 감았다. 어쩐지 가슴이 벅찬 하루. 반복된 것들에서 잠시 벗어난 조그마한 것들이 나를 위로하고 있다.

집에 오자 아이들은 각자의 방에서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었다. 건성건성 받은 인사는 그저 고마웠다. 나는 그 나이 때 인사도 안 했었던 것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무엇에 열중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쩌면 인사를 하기 싫어서 열중하는 척을 했을지도 모른다.

와이프는 오늘따라 다정하다. 고생했다며 다독여준다. 무슨 일이지? 그러더니 고개를 들고 턱을 돌려 식탁 위를 가리킨다. 웬 상자 몇 개가 놓여있었다. 뭐지? 이게 다 뭐야? 또 뭘 산 거야? 이 말을 속으로 했으니 망정이지, 입 밖으로 소리 내어 그것을 표현했으면 등짝 스매싱을 맞았을 터다.

“당신, 골프 칠 때 옷 좀 샀어. 골프친지도 오래되었지만 옷장 보니까 옷들이 죄다 헤어졌더라. 요즘 통기성도 좋고 디자인도 예쁜 옷이 얼마나 많은데. 비싸지도 않아, 합리적인 가격에 샀어. 걱정 마.”

상자를 주섬주섬 열어봤다. 촉감이 좋은 상의는 나풀거렸다. 입고 필드로 나가면 스윙이 자연스러울 것 같았다. 다른 상자엔 바지가 들어 있었다. 입어보니 원하는 대로 늘어났다. 이렇게 좋은 신축성은 느껴보질 못했다. 아, 그런데 갑자기 왜. 왜 와이프는 이것들을 준비했을까? 무슨 날인지를 곱씹다 기억이 나지 않아 와이프에게 물었다. 근데 오늘 무슨 날인가?

“장난 하는 거야 아니면 치매 걸린 거야?

와이프가 헛웃으며 나의 머리를 짚는다.

“당신 생일이잖아. 돈 아깝다고 생일 선물 몇 해나 건너 뛰었고. 여기 앉아서 미역국이나 먹어. 아침엔 애들 데려다 주고, 저녁엔 방과후 수업 따라다니느라 신경도 못썼어. 그래서 저녁에나 서프라이즈 해주어야지 했는데, 진짜 서프라이즈가 되었네. 정말 몰랐어? 당신 생일?”

하필이면 일탈을 한 날이 내 생일이라니. 김상무의 잔소리, 그리고 무료하고 고된 하루가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마음에 내 생일조차 잊다니. 당장 어머니께 전화를 했다. 나아주셔서 고맙다고. 어머니는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를 하냐면서도 내심 기특한 눈치다.

용기를 내어 회식을 가지 않기를 참 잘했다. 고민하지 않고 택시를 과감하게 잡은 것도.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 들러 나만의 시간을 가진 것도. 나는 어디에서 온 존재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쩐지 이 세상에 태어난 것 자체가 일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 다시 시작될 하루. 무언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틀이 있어야 한다. 일상이라는 틀이 있어야 일탈도 하는 것이지…라는 위로를 마음에 담았다. 아, 이건 자기 합리화인가? 변명인가?

 

하루가 지나고 있다. 이제야. 고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