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은 합리적이라 했다.

그리고 착하다고 했다. 열정이 있으며 정직하다 했다. 날마다 새로운 생각을 하며 진정성을 추구한다 했다. 그러려니 했다. 누구나 그렇게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누구나 그것을 추구하고 자신을 포장하니까. 세상엔 자신을 스스로 깎아내리는 존재는 거의 없다. 더 내세우지 못해 안달하고, 더 높이지 못해 안절부절한다.

어찌되었건, 나는 그 사람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했다. 그 사람의 장점과 정신, 그리고 추구하는 바를 일목요연하게 말이다. 처음엔 쉬웠다. 그 사람이 말한 것을 그대로 읊으면 되었다. 합리적이라고 하니, 합리적이라 하고 정직하다고 하니, 정직하다 했다.

진정성. 그 또한 그 사람이 말하는 자신의 추구점이므로 나는 그것을 곧이 곧대로 전하기만 하면 되었다. ‘진정성’이란 단어 자체로도 긍정적인 느낌은 전달할 수 있으니. 진정성은 받아들이는 자들의 몫이니 전달한 나는 알바가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궁금했다. 내가 전하고 있는 그 사람의 존재가. 그리고 그 진실된 마음이. 온갖 좋은 단어로 둘러싸이고 포장된 그사람의 진실을 알고 싶었다. 내가 먼저 할 수 있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이었다. 그 사람의 평판. 그 사람을 아는, 그 사람을 만나본 사람들의 이야기. 놀랍게도 많은 사람들에게서 그 사람의 좋은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자신을 포장한 사람들에게 그러한 찬사와 긍정적인 평판은 어울리지 않을진대, 그 사람은 달랐다. 자신을 둘러싸고 포장한 이야기가 결코 과장이 아니었음을. 거짓말이 아니었던 것일까? 다른 사람들의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니, 거짓말은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마음 한 편에선 여전히 작은 의심과 궁금함이 몰려왔다. 작은 의심은 이렇게 좋은 평판을 얻는 것이 가능할까에서 출발한다. 궁금함은 그 비결이 뭘까로부터 왔다. 그렇다면 나는 어찌해야 할까. 그렇다. 그 사람을 직접 만나 보는 것이다. 그 사람이 표현한 자신, 그리고 사람들이 말한 그 사람. 그 둘을 합쳐도 내가 직접 만나보고 아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각오라하. 내가 직접 간다.

 

마침내 그 사람과 조우했다.

나는 샅샅이 그 사람을 뒤졌다. 그 사람의 앞, 뒤, 옆, 속까지. 그 사람은 내가 모든 것을 뒤질때까지 잠자코 있었다. 거봐,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했잖아…라는 거드름이 아니었다. 그저 그 진정성과 합리성을 고스란히 전하는듯 했다. 자신을 믿으라며 말이다. 그렇게 잠자코있던 그 사람은 나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을 믿어주어 고맙다는 인사였을까. 진실된 자의 여유. 그것은 나로 하여금 그 사람을 다시 보게 했고, 더욱 믿게했다.

그리고 그 사람에 대해 표현하는 일에 더 매진하게 했다. 나는 어느새 그 사람에게 빠져 있었다. 그 사람이 말한 것은 모두 사실이었으며, 더 많은 사람이 그 사람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지만, 그 작업은 멈춰져선 안된다.

 

[칸투칸을 방문한 날]

 

그러니까 그건, 마음먹고 달려간 그곳에서 일어난 일이다.

위에서 묘사한 ‘그 사람’은 칸투칸이다. 칸투칸을 직접 경험한 내가 느낀 느낌. 그것을 묘사하고 싶었다. 마냥 좋다는 단어들이 난무하는데, 그것을 곧이 믿을 수가 있나. 그래서 난 그 사람, 아니 칸투칸으로 달려갔다.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서 칸투칸을 만날 수 있었다.

 

온라인에서만 보던 반가운 K로 시작하는 알파벳이 버젓한 간판 아래로 문을 열어 들어갔다. 좌, 우, 위, 아래에 본연의 고유한 디자인을 머금은 제품들이 즐비했다. 그리고 그것들은 각자의 브랜드 이름으로 정렬되어 있었다.

주말이긴 했지만 해가 어엿한 하루에도 사람들은 매장을 매우고 있었다. 양 쪽 드레스룸의 문은 쉴틈이 없었다. 드레스 룸에는 거울이 달려 있어 그 앞에서 옷을 입어보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자주 열리는 그 문에 흠칫 놀라는 모습이 많이 보였다. 그만큼 드레스룸은 쉴틈이 없었다. 많이 입어보고, 걸쳐보고, 만져보느라 말이다. 즉, 매장은 분주했다.

 

아니, 이 사람들은 어디서 이렇게 알고들 왔을까?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었다는 것을 몰랐던 나는, 나만 몰랐었나…하는 마음이 들면서 조급해졌다. 직접 제품들을 하나하나 살펴봤다.

일단 눈으로 본 제품들은 훌륭했다. 각각의 디자인은 세련되면서 각자만의 아이덴티티를 고수했다. 브랜드에 따라, 기능에 따라, 목적과 계절에 따라 제 모양을 뽐냈다. 어느것 하나 눈을 그저 흘길 수 없었다. 지나가던 미인이나 미남을 보고 다시 돌아보는 고갯짓 하기를 여러 번. 많은 상품들이 나의 걸음을 세우고, 시선을 빼앗았다. 아, 이러려고 온게 아닌데. 냉철한 평가를 하러 온 건데. 정말인지, 진실인지, 거짓이 있는 건 아닌지 보러 온건데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간에 뭔가에 홀린 기분. 고개를 세차게 가로로 휘저으며 마음을 다잡았다.

자, 이제는 눈이 아닌 손으로. 직접 만져보기로 했다. 곱게 그러나 견고하고 강하게 박힌 박음질과 마무리선은 신뢰를 주었다. 옷이며 신발, 그리고 액세서리까지 어느 하나 그 마감이 허투르지 않았다.  손으로 만져 사이를 벌리거나 끝단을 잡아 당겨보아도 꿈쩍이지 않았다. 촉감과 질감은 어디에 내어 놔도 손색없을 정도. 세상이 좋아진 걸까, 칸투칸이 철저한 걸까. 이 정도의 완성도면 가격을 저기 위 어딘가에 올려 놓아도 팔릴 텐데. 잠깐, 가격은 좀 나중에 이야기하자. 들어와서 가격부터 보고 (너무 합리적이어서)놀란 가슴을 조급하게 꺼내어 놓기 싫기 때문이다. 칸투칸에게 당연한 것을, 내가 지레 호들갑을 떨면 나는 무엇이 되겠는가. 어찌되었건 품질과 마무리, 질감은 다른 것과의 단순한 비교를 넘어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자, 이제는 눈으로 보고 만져봤다면 무엇이 남았을까?

그래, 바로 체험해보는 것. 신발의 종류란 종류는 모두 내 발을 거쳐갔다. 그리고 마침내 끈을 조여주는 다이얼을 돌렸을 때. 나는 마음이 요동했다. 돌리면서 느껴지는 견고함과 발을 조여주는 단단함. 그리고 쉽게 풀어내는 편안함까지. 그저 화면에서만 보던 제품이 아니었다. 모니터 화면에서는 그저 멋지게 찍은 사진 한장이었지만 내 발에서 느껴진 것은 현실이었다. 사진 하나 멋있게 찍었다고 쉽사리 넘어갈 소비자들이 아니다. 그런데 분명한 건, 어느 소비자라도 실제로 그것을 신어보고 돌려보면 바로 빠져들 것임에 틀림이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둘러보며 걸친 재킷과 다양한 종류의 옷들. 겨울의 한파를 온 몸으로 막아줄 모자에 털이 달린 패딩점퍼는 가벼웠고 세련되었다. 디자인도 여러 개, 만져보면 견고하고 입어보면 편한. 아, 이렇게까지 좋고 훌륭해도 좋은 걸까?

 

어느덧, 매장에 들어선지 약 1시간 여.

나의 손엔 구매를 위해 들려진 여러가지 제품들이 가득했다. 분명 말하지만 뭘 사러온 곳이 아니었다. 내가 들어 알고 있던 것을 그저 확인해보고자 온 것이다. 어쩌면 꼬투리를 잡으려한 걸수도 있겠다. 하도 좋다고 말들을 하니. 그렇게 진정성이 있다고 하니 말이다. 누군가 고결하다 싶으면 흠집을 내고 싶은 몽니는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다. 진정성에 대한 고결함에 있어선 칸투칸은 둘째 가라면 서러울 것이니, 이러한 몽니를 받는 건 자랑스런 운명이라 해두자.

손에 들린 여러 제품을 보고 놀랐지만, 그것을 포기 하진 않았다. 이미 눈으로 보고, 만져보고, 체험해 보았으니 포기할 필요가 없었다. 아니, 포기 못하게 된 것이다.

 

특히, 내가 가장 놀란 건. 그러니까 손에 잔뜩 무언가를 드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건 Z208 바지였다. 내가 그 신축성과 편안함에 대해 눈과 귀가 지겹도록 보고 들었지만 실제로 체험한 그것은 정말 물건 중의 물건이었다.

우선 진열된 바지를 손으로 만졌다. 얼마나 늘어나길래 그래? 라는 의문. 손으로 만져본 그것의 질감과 마감에 놀랐지만, 생각보다 많이 늘어나지 않는 것에 대해 편안함에 대한 의문을 가졌더랬다. 그래서 고개를 조금은 갸우뚱한 상태로 드레스 품에 들어가 바지를 입고 나왔을 때, 나는 바지의 신세계를 경험했다. 이 무슨, 과장법의 경우 없는 사용이냐라고 반문할 사람도 있겠다. 바지를 입고 신세계를 경험했다니. 그런데 정말 그렇다. 입을때부터 부드럽게 들어가는 촉감과 입었을 때 나타나는 제대로 된 핏. 그리고 걷는 와중에 느껴지는 적당히 타이트함. 다리로 요상한 자세를 취해봐도 그 편안함은 모든 것을 허용했다. 기존에 입던 바지에서 되지 않던 것들, 불편하거나 유쾌하지 않게 걸리적 거리던 느낌이 모두 없었단 말이다. 나도 안다. 이렇게 열심히 적고 표현해봤자 다 믿지 않을 거라는 걸. 나도 그래서 직접 방문한 것이 아닌가. 그것을 알아보기 위해, 증명하기 위해, 꼬투리라도 있으면 잡아보려는 마음으로.

 

내가 칸투칸 매장의 문을 나설 때는, 이미 양 손에 한가득 칸투칸 로고가 담긴 가방이 가득 들려있었다. 냉철한 판단을 부탁하며 데려간 가족들의 손에도 그러했다. 결제는 오롯이 나의 몫. 가족들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다.

 

그러고 보니 떠올랐다.

칸투칸의 슬로건 중 하나.

 

“행복한 회사, 행복한 직원, 행복한 고객”

 

가족이 웃었고, 나도 즐거웠으니 그리하면 된 것 아닌가.

 

아, 그리고 또 하나.

사실, 들어가자마자 본 품질은 대단했고 그보다 하도 가성비를 외치길래 본 가격표에서는 진정성을 느꼈다. 아, 이 사람들이 그리고 이 회사가 추구하고 떠들어대는 것들이 아무말 대잔치가 아니구나. 진정함과 합리성 대잔치구나.

 

Z208바지를 입었을 때 탄식처럼 나온 말이, 가격에도 적용되는 것이다.

 

“아니, 이렇게 편해도 되는 걸까?

 

칸투칸의 그 마음이 변하지 않고 쭉 이어지길 바라본다.

그러면, 나도 그 사람 칸투칸에 대해 쭉 이야기 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