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있어 ‘전부’는 무엇인가.

어떤 이에게 그것은 돈이나, 사람, 아니면 어떤 물건이나 추억일 수 있다. 그것들은 각자의 마음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어 살아가는데 큰 영향을 미친다. 만약 그것을 잃는다면 주저 앉을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더불어, 동시에 그것으로 인해 살아가는 힘을 얻기도 한다.

‘전부’는 ‘소유’를 기반으로 한다. 그래서 우리는 무언가 아주 소중한 것을 잃거나 상실의 기분을 극대화할 때 ‘전부를 잃었다’라고 표현한다. 극단적이고 간단한 예로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했을 때를 떠올려보자. 그때 느낀 생각과 감정은 어땠는가? ‘전부’를 잃었다는 말로도 부족한 궁극의 아픔이었을거다.

 

모든 사람들에겐 각자의 ‘전부’가 몇 가지 있다.

 

아이러니한것은 사람들 각자의 마음속엔 저마다의 ‘전부’가 몇개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원래 하나의 ‘전부’를 잃으면 아무것도 없어야 하는데 말이다. 말이 그렇지 않은가? ‘전부’라는 뜻은 ‘어떤 대상을 이루는 낱낱의 전체, 있는대로 빠짐 없이 전체가 다’니까.

아마도 그것은 마음속에 ‘분류화’되어 자리잡아 있는 것 같다. 사람이나 물건, 또는 가진 것에 대한 어떤분류로. 주인을 잘 따르던 강아지가 세상을 떠났을 때, ‘전부’를 잃은 것 같은 슬픔을 느끼겠지만 동시에 가지고 있는 돈을 사기당했을 때도 같은 표현을 할 것이다. 즉, 먼저 하늘나라로 간 그 강아지는 ‘애완동물’이라는 카테고리 내에서의 ‘전부’이고, 가지고 있는 큰 돈은 ‘소유물’의 한 분류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사랑하는 사람까지 이별을 고하고 떠나버렸다면? 그 사람에겐 잃은 만한 ‘전부’가 몇 개는 되는거다. 반대로, ‘전부’를 몇 개씩 가지고 있는 그 사람은 진정한 부자일수도 있겠다.

 

그것들은 당신에게 왜 ‘전부’가 되었는가?

 

생각해보면 누군가에게 ‘전부’로 자리매김 되어 있는 것이 어쩌다 그렇게 되었는지를 아는 것은 아주 흥미로운 일이다. 내가 사랑하는 그 사람을 언제 어떻게 만난 것인지. 왜 그러한 생각과 마음이 들었던 건지. 하고 많은 사람 중에 왜 그 사람이었어야 하는 건지. 더불어 내가 쌓아온 부나 소유물. 내가 ‘전부’라고 생각하는 그것은 내 삶에서 어떤 우연과 인연, 그리고 이유로 마음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왔는지. 모든 것이 명확하진 않을 것이다. 저도 모르게 어느샌가 그런 존재가 되었거나, 아니면 아예 인지를 못했다가 사라지고 난 뒤에야 그것을 ‘전부’라고 느낄수도 있다. 아마도 후자가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클 수도 있겠다. 사람들은 소중한 것들을 잃어봐야 정신을 차리는 습관이 있기 때문이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 사람이든 사물이든 무엇이든 간에 그것이 당신에게 ‘전부’가 되었다면, 어찌되었건 이유는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사랑’과 ‘애정’ 그리고 ‘관심’과 ‘투자’로 본다. 무형이든 유형이든 우리가 그러한 감정과 시간을 들인 대상은 소중하기 마련이다. 아니면, 소중하기 때문에 우리는 안절부절하지 못하고 그것들에 마음과 시간을 쏟아붇는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빠져들었을 때가 기억 나는가? 나도 모르고 있던 내 모습이 낯설고 낯간지럽지 않았던가. 그 상대에게 열렬하고자, 내 마음을 전하고자 또 어떤 변신을 하고 변화를 주었는가. ‘나’ 자신을 (잠시동안)바꾸어서라도 붙잡고 싶었던 사람. 그 사람에 대한 사랑. 내 ‘전부’가 되어달라며 달려들던 그 때를 돌아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나의 ‘전부’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그 열정과 투자를. 그렇게 당신에게 ‘전부’가 된 존재들을 위해 지금도 애쓰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것들이 왜 당신에게 ‘전부’가 되었는지를 곱씹어보면, 나는 여전히 그 존재들을 나의 ‘전부’로 유지하기 위해 마음과 행동을 다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그 ‘전부’가 사라진다면 당신은 어찌할 것인가?

 

살아가는데 있어 가장 힘든 날은 ‘헤어진 다음 날’이다. 사람과 헤어지든 동물과 그렇든, 아니면 사물이나 장소, 심지어는 추억가 생각까지도. ‘전부’라는 것이 사라진 마음엔 커다란 구멍이 생기거나, 아주 커다란 ‘허탈감’이 마음 한 가운데를 딱 자리잡고 앉는다. 그럴때 느끼는 가슴 시림과 철렁 주저 앉는 마음의 고통은 느껴본 사람만이 안다.

앞에서도 잠시 이야기했지만, 우리는 너무 당연해서 우리 삶의 ‘전부’라고 느끼지 못했지만 그것이 우리와 이별을 고할 때야 비로소, ‘아, 내 삶의 전부였구나’를 깨닫는다. 너무나 당연하게 느끼는 것만큼 우리 시야를 가리고 생각을 아둔하게 만드는 것이 없다.

 

알고보면 ‘전부’인 것 같지만 ‘전부’가 아닐 수도 있다.

 

상실의 상처를 가진 사람들의 마음을 가벼이 여기고자 하는 말은 아니지만, 우리는 우리가 가졌던 ‘전부’를 잃고도 잘 살아간다. 그게 사람이다. 마음 속에 슬픔이 드리워졌을지언정 우리는 그렇게 아침에 뜨는 해를 보고, 밥을 먹고 씻고 일한다. ‘전부’를 잃었다고 슬퍼하지만 어쩌면 그것은 우리에게 ‘전부’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것.

 

‘내 삶의 전부’에서 ‘전부’가 빠지면 ‘내’가 남는다.

 

그럼에도 살아갈 수 있는 건, ‘내’가 남았기 때문이리라. 모두가 나를 떠나도 ‘나’는 끝까지 ‘나’아 함께한다. 스스로를 저버릴지언정, 그 순간까지도 말이다. 그러니 ‘내 삶의 전부’라는 것들이 다 떠나가도 어떻게든 살아가는 것이 사람이고 우리다. ‘전부’를 잃었다는 것은 아픔과 슬픔의 극한을 표현하는 것이리라. 모든 것을 내 삶에서 빼도 결국 남는건 나라는 것을 상기해보면,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게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바로 서지 않으면, 내가 건강하지 않으면 내가 생각하는 ‘전부’를 소유할 수 없다. 그것들에 사랑과 애정, 그리고 시간을 쏟아부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이순간 자신부터 챙겨보자.

‘전부’를 잃었던 그 아픔은 잠시 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