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서 일해요?

가끔 이런 질문을 받으면 좀 곤란하다. 이때의 ‘어디’는 단순한 장소의 개념이라기보다는 직장, 소속을 묻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저는 어… 주로 집이거나, 스타벅스… 스타벅스는… 콘센트 사용이 자유롭고… 오래 앉아 있어도 눈치도 안 보이고… 또… 꾸준히 다니다보면 무료 쿠폰에 연말 다이어리에…” 이렇게 말할 수는 없으니까. 그렇다고 그냥 ‘소속이 없다’는 말은 또 뭔가 날카로운 것 같아서, ‘프리랜서’라고 대답하고 만다. 그럴 땐 ‘프리랜서’ 라는 단어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가도, 그 대답을 들은 상대방의 미묘한 “아~프리랜서…” 하는 대답이 신경 쓰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내가 아주 소속이 없는 것은 또 아니다. 프리랜서이긴 해도 내 작업물이 활용되는 곳은 있으니까. 재수 학원이라든가, 라디오 방송국이라든가, 칸투칸이라든가… 뭐 그렇게 말할 수야 있지만, 이어질 질문을 미리 차단하기 위한 방편으로 그저 ‘프리랜서’라고 말한다. 이어질 질문이란, “아, 그럼 그 학원에서 강사로 계신 거예요?” 또는 “방송 작가 돈 많이 번다고 하던데, 연봉이..?”, “칸투칸에는 어떻게 입사했어?” 같은 것들. 따지고 보면, 학원 강사이긴 하지만 딱히 소속감을 갖고 있지는 않고, 방송 작가는 연봉이라는 개념이 없으며, 칸투칸에도 입사한 적은 없기 때문. 프리랜서란 그저, ‘어디’에서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어디에서든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그 말을, 구구절절 내 입으로 하고 싶지 않아서.

프리랜서? N잡러?

이제 나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지인이나 친구들은 종종 이런 질문을 한다. “요즘은 무슨 일해?” 그렇다. 내가 하는 일이란 것이 꽤 자주 변하거나 다양해진다는 사실을 다 알고 하는 질문이다. 그러면 나는 얘기한다. “요즘은 대입 자기소개서 컨설팅하면서 칸투칸 칼럼 쓰고, 다음 주엔 홍콩에 취재하러 가야돼서 일정 조율하고 있지. 굳이 따지자면, 3JOB 중이지”

제 능력과 스펙과 노력으로, 이름만 대면 알 법한 기업에 입사해서 착실히 일하고 있는 친구들 입장에선, 3JOB이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업무량’이 어마어마하게 느껴지는지, 늘 나를 대단히 많은 일을 하는 것처럼 얘기하곤 한다. 뭐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밥 먹고 일만 하는 것도 아니다. 충분히 게으른 날도 있고, 미루고 미루다 새벽에 일을 할 때도 많다. 어쨌든, 나는 그렇게 살고 있다.

그런데 나처럼 이런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사람들이 요즘 꽤 많은가 보다. 여러 가지 일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통칭하는 신조어, ‘N잡러’ 라는 말이 생긴 걸 보니. 꼭 프리랜서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생계를 위해서, 또는 차마 버리기 힘든 꿈을 위해서 여러 일을 병행하는 사람들. 이제 ‘프리랜서’를 대신할 내 정체성이 하나 더 생긴 건가?

위안은 되지만 연대는 힘든

하지만, 나 같은 사람들을 묶어 ‘N잡러’ 라고 통칭해봐도 N잡러들끼리의 어떤 연대는 이뤄지기 힘들 것 같다. ‘N잡러 노동조합’ 뭐 그런 것도 당연히 생겨나지 않을 것 같고. 애초에 N잡러들이란 소속되고, 연대하고, 조직 속에 들어가는 것과는 반대로 ‘내 삶에서 일정 부분 제멋대로이고 싶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로 하고 있는 ‘일’의 종류나 시기, 목적이 모두 달라서, 협업을 통해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연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내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있다면 종종 만나서 커피도 마시고, 서로의 작업에 대한 이야길 나누면서 위로나 어떤 영감을 얻고 싶은 마음은 있다. 안타깝게도 그런 사람은 없지만.

국민 연금도 바닥이 나니, 마니하는 시대에, 어쩌면 N잡러는 최악을 위한 비빌 언덕이기도 하다. 최근 한 기사를 보니, 서른둘의 나이에 서비스 디자이너로 근무하고 있는 조은혜 씨도, 자신의 취미이자 부업으로 사진을 찍는다고 하더라. 그녀에게 N잡러의 의미를 물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내게 N잡이란 미래에 대한 대비다. 공무원도 아니고, 국민연금도 바닥났단다. 나이 들어서 디자이너를 계속하기는 어려울 테니, 사진을 찍으면서 실력을 쌓아놓는 거다. 당장만 생각한다면, N잡이 아니라 투잡을 해도 되지 않나. 특기나 취향과는 별개로 말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생각한다면 N잡을 할 수밖에 없다. 기반을 닦아놓는 게 제일 중요한 것 같다.”

그렇다. N잡이란 장기적으로 봐야 한다.

그녀의 인터뷰를 보고, 나도 무릎을 탁 쳤다. 내가 나 스스로를 ‘프리랜서’라고 칭할 때 들었던 자괴감, 죄 지은 것도 없이 느껴지는 부끄러움, 그 복잡다단한 감정의 실체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내가 말하는 ‘프리랜서’ 라는 단어에 ‘당장 밥 벌어먹는 자, 제도권의 보장을 받지 못하는 자, 언제 밥줄 끊길지 모르는 자’ 라는 인식이 깔려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런 인식을 해결하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이 바로 ‘장기적으로 보는 것’ 이다.

대기업에 들어가도, 공무원이 되어도 죽을 때까지의 노후를 보장받지 못하는 시대에 어쩌면 나는 지금부터 내 인생 전체를 조율하기 위해 ‘일’을 하고 있는 거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문득 햇살이 참 밝고 따스하더라. 가진 것도 없이 행복을 느끼는 일이 전혀 부끄럽지 않았다.

지난 3년 간 근무하던 재수 학원을 관뒀다. 라디오 작업은 올해 특집 다큐멘터리가 12월에 제작, 방송되고 나면 또 한 동안은 일이 없을 것이다. 2018년, 내가 쥐고 있는 일은 아마도 칸투칸 칼럼과 초등학생 글짓기 과외뿐일 것이다. ‘장기적으로 보고’ 콘텐츠 제작을 하는 진짜 프리랜서, 진짜 N잡러로 발돋움하기 위해 꽤 많은 것을 포기하고, 더 많은 것들에 도전하기 위해서 결단을 내렸다. 월급쟁이 인생이 아니라서 매순간이 ‘모 아니면 도’ 라는 생각으로 열중해야하지만, 이것도 다 프리랜서, N잡러의 특권 아닐까. 그렇게 나는 오늘도, 내일도, 앞으로도 ‘일’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