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예뻤다.

 

너무 예뻐서 붙잡고 싶었다. 온 종일 그녀는 나의 머릿속을 걸어다녔다. 잡으려 하면 잡힐듯 하다가도, 잡히지 않는 순간은 꽤 불안했다. 그래서 만난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프로포즈를 했다. 내심 놀란 그녀는 어쩔 수 없이(?) 그것을 받아들였지만, 요즘에도 그때 무슨 정신으로 허락을 했는지 스스로도 모르겠다고 한다. ‘사랑’이라고 하면 될 것을. 물론, 이해는 한다. 평생 살아야 하는 배우자가 되자고 달려 드는데, 만난지 얼마 안된 그때를 돌아보면 그녀가 도망가지 않은게 다행일지도.

 

내가 프로포즈를 한 이유는 간단했다. 예뻤고, 같이 있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때 내가 바란건, 그게 다였다. 그저 내 옆에 있어주길. 다른 누군가에 빼앗기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과 그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행복하고 싶다는 욕구와 동시에 불행해지지 말아야겠다는 마음이 공존한 것이다. 결국, ‘결혼’이라는 이벤트로, ‘그녀’는 ‘와이프’가 되었다.

 

새롭게 주어지는 이름과 역할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두 남녀의 인생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삶이 바뀐 이유는 결국 ‘역할’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결혼하기 전 두 남녀의 역할은 말 그대로 ‘남자’와 ‘여자’였다. 그저 서로를 탐닉하고 사랑하는 역할. 무엇이 더 필요할까. 과거와 미래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눈 앞에 있는 서로를 어루만지고 꼭 껴안고 있으면 제 역할을 다 한 것이기에.

 

여기에 남편과 아내라는 이름과 역할이 주어졌다. 이후에는 아이들이 태어나고 나니, 아빠와 엄마/ 부모라는 보다 큰 역할이 주어졌다.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 정도다. 이름도 많아지고, 거기에 따른 역할도 많아진다. 그저 ‘남자’와 ‘여자’로 남고 싶은데, 인생이 그렇지가 않다. 그러고보니 그저 그 둘이 ‘남자’와 ‘여자’ 였을 때, 상대방이 나중에 새롭게 주어지는 역할을 잘 하게될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저 지금 앞에 있는 모습이 좋아서. 또는 혹시 나중에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해도 자신이 그것을 메꿔줄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을 것이 뻔하다. 사랑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 수 있을 것이라 믿을 때니까. 그 시기엔 우주에 있는 별들도 남아나질 않는다. 죄다 말로는 그것을 다 따다 사랑하는 이에게 갖다 바쳤으니.

 

그렇게 이름과 역할이 바뀌고 나니, 서로에게 기대하는 바는 달라진다. 그리고 그 기대에 미치지 못하거나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불화가 시작된다. 이 불화는 결혼한 사람들에겐 필수코스다. 피해갈 수 없다. 누구나 겪는 사춘기와 같고, 다른 인생을 살다가 같은 집에 사는 사람들에겐 넘어야 할 산이다. 살아온 환경이나 경험도 다른데, 갑자기 주어진 역할에는 장사가 없다. 누구나 처음인 남편과 아내의 역할, 그리고 부모로서의 시간과 행동. 아이들에게 처음이라 미안한 아빠와 엄마는 매순간을 헤맨다. 어쩌다 어른이 된 자의 고뇌이자, 나를 키워준 부모에게 올리는 존경의 마음이다.

 

이런 면에서 난 참 감사할 것들이 많다. 연애 때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아내의 모습이 그것이다. 그 감사할 것들 중 단연코 으뜸. 아내는 와이프와 엄마의 역할을 멋지고 아름답게 잘 해낸다. 정말 생각지도 못한 모습이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난 아내를 이성적인 대상으로만 바라봤었다. 그저 예쁘고, 같이 있고 싶고 안고 싶었던게 다다. 물론, 제 역할을 하게될 것이라 무의식 중에 믿는 구석이 있어서 그렇게 구애를 했을 수도 있지만 사람의 삶이 어디 그런가. 아내도 사람인데, 힘들어서 모든 걸 놓겠다고 한다면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아니면, 애초에 아이들을 키우는데 관심이 없거나 자질이 없었더라도 내가 뭐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물론, 나 또한 가장으로서 그리고 남편과 아빠로서 그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자 노력한다. 그래야 많은 것들이 안정되고 한 가정이 굴러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결혼전부터 그러하기를 다짐했던 터였다.

 

아내에게서 보이는 엄마의 모습

 

맞벌이의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여성의 사회 참여율이 높아졌고 그 경력도 중요해지고 있다. 둘째, 경제적인 이유다. 한 사람이 벌어 가정을 이끌어가기가 영 쉽지 않다. 예전 경제 개발과 성장이 한창일 때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다. 이 밖에도 많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이 두가지로 대부분을 설명할 수 있겠다.

 

하지만 내가 맞벌이를 그만 두자고 제안한 건 둘째 아이를 낳고난 뒤다. 첫째야 어떻게 어머니의 힘을 빌려 주중에는 맡겨 놓고 아내도 일을 했었지만 둘째가 태어난 후로는 두 아이에게 엄마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제적인 부분이야 내가 버는 것으로 아껴쓰면 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마침, 운이 좋게도 해외 주재원으로 발령이 나게 되었으니 아내도 기약없는 경력 단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내도 두 아이의 엄마로서의 역할이 지금으로선 더 중요하다고 느꼈던 것이다.

 

누군가 다음 생에엔 주재원의 아내로 태어나겠다는 우스갯 소리를 하지만, 현실은 극한 직업의 로드매니저와 같다. 아내는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아이들의 스케줄에 맞추어 움직인다. 잠투정을 하는 아이들을 가까스로 일으켜 씻으라 한 뒤, 아이들의 아침밥을 준비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아이들’의 아침 밥이라는 것. 다행이 나는 아침엔 입맛이 없어 아침을 거르는 것이 습관인지라 어차피 차려도 잘 먹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아내는 아이들의 아침만 준비한다. 내가 출근하고 나면 아내는 아이들을 차에 태워 학교에 이른다. 교실까지 잘 들어가는 아이들을 바라본 뒤에는 다른 엄마들이랑 갖가지 정보를 나눈다. 대부분 아이들에 관한 정보이자 이야깃거리들이다.

 

아이들이 수업 받는 동안 자유 시간이 있지만, 말이 자유시간이지 그건 ‘대기 시간’과도 같다. 그렇게 몇 시간을 기다리다 아이들을 픽업하고나면 방과후 수업이 있다. 아이들은 갖가지를 경험한다. 그리고 아내의 기다림은 또 시작된다. 아, 방과 후 수업에 가기 전에 아이들의 출출함을 달래 줄 도시락은 아이들 수업 시간을 기다리며 준비한 것이다.

 

그렇게 집에 돌아오면 아내는 또 아이들의 저녁을 준비한다.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두 아들녀석들은 배고프다며 아우성이다. 덕분에 엥겔지수가 팍팍 올라가는 요즘 밥 먹는데는 딴짓하다가 어떻게든 먹여놓고 나면 1시간도 안되어 배고프다는 말을 하기 일쑤다. 아내는 힘들어하지만 제 자식이 맛있게 먹는 모습엔 사르르 녹는 것이 부모들이다. 밥을 먹고 나면 아내는 아이들의 공부를 봐주고 책까지 읽어준다. 나 또한 퇴근 후에는 그 일에 동참하고, 주말엔 아이들과 운동을 하거나 산책을 한다. 집안일을 도와주는 건 기본이다.

 

재밌는 건, 이러한 역할을 하나하나 구분지어 이건 내가 하고, 저건 당신이하자라고 구분 지은 적이 없다. 그리고 그 역할과 실행에 대해 아직까지 아내와 나는 갈등이 생기거나 왈가왈부한 적도 없다. 참 고마운 부분이다. 즉, 완벽하진 않지만 각자 제 역할을 잘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아빠로, 아내는 엄마로.

 

아내에게서 보이는 엄마의 모습이 참 아름답다. 가끔은 밥을 먹다 아이들의 김치를 찢어주는 손놀림을 보면 내가 잡았던 젊었을 때의 보드라운 그것이 아니다. 손톱은 짧아졌고, 그 위를 뒤덮던 아름다운 색깔과 장식들은 없어진지 오래다. 가끔은 요리를 하다 칼에 베인 상처도 발견하곤 한다. 뭉툭해 보이는 엄지 손가락이 왠지 낯설 때도 있다. 아이들을 위해 준비된 여자이자 나의 아내. 그 이름은 결국 ‘엄마’다. 아내에게서 엄마의 모습이 보이는 것이 마음으론 참으로 흐뭇하고 고마우면서도 안쓰럽기도 하다. 나도 자연스레 짊어진 가장이란 무게를 짊어지고 있지만. 그래도 천진난만하게 커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나와 아내가 짊어진 무엇이 그리 큰 일은 아니라는 위안이 든다.

 

나는 가끔 아내를 ‘엄마’라고 부르기도 한다. 보통은 이름을 부르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어쩐지 아이들 앞에서 나도 아내를 ‘엄마’라고 부르며 투정을 부리고 싶을 때 말이다. 아, 그리고 무언가를 찾지 못할 때 그러기도 한다. 그러면 아내는 아이들의 투정을 받아 주듯이 나의 그것을 받아준다. 물론, 그걸 꾸짖을 때도 있다.

 

아내에게서 나는 엄마의 손맛

 

결혼하기 전, 아내의 요리 솜씨는 젬병이었다. ‘젬병’이란 말을 곧이 써도 크게 무리가 없을 정도. 이건 아내도 인정하는 부분이니 크게 마음에 걸리지 않는다. 신혼 때야 요리의 맛이 뭐가 중요할까. 서로 같이 해도 되니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물론, 결혼 하고 나서는 어느 정도 이것저것 요리를 하다보니 조금씩은 나아지고 있었다. 아이가 태어나니 아내의 요리 솜씨는 일취월장했다. 이유식으로부터 시작한 그 손놀림은 다른 보통 요리도 척척 해내게 한 것이다.

 

출장이 많은 나는 어느새 출장을 다녀올 때면 아내에게 문자를 보낸다. 아, 당신이 해주는 된장찌개 먹고 싶다. 아, 오늘은 돼지고기와 쉰 김치를 넣은 김치찜! 이러면 어김 없이 도착한 집에는 아내의 정성스런 요리가 식탁에 올라와 있다.

 

결혼하기 전에는 물론 엄마의 집밥이 그리웠다. 지금도 그립긴 마찬가지. 거기에, 이제는 아내가 해주는 그것까지 있으니 정말 감사하고 든든하단 생각이 든다. 이 말을 하면 우리 어머니께서 섭섭해하실 수도 있겠지만, 어쩐지 힘들 때 생각나는 음식이 때로는 ‘엄마의 집밥’이면서, 또 때로는 ‘아내의 집밥’이기도 하다. ‘아내’도 결국 아이들의 엄마 이니, 어쩌면 그것도 ‘엄마의 집밥’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아이들이 커서 힘들 때면 생각할 ‘엄마의 집밥’ 말이다.

 

가족이 위로가 되는 건, 그 존재 자체로서다. 서로 같이 살면서 아웅다웅할 때는 모르지만 잠시 없을 때나 떨어져 있을 때, 그리고 함께 모여 밥을 먹으며 속닥속닥 하는 것에 가족이란 이름은 완성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각자의 역할을 알아서 잘 할 때 가능한 것. 아내에게서 엄마의 손맛이 나는 건 나에게 있어 정말 신기한 일이다. 그리고 새로운 경험이자, 나도 내 역할을 제대로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만드는 일이다. 결혼하기 전에는 몰랐던, 그래서 더 감사한 일이다.

 

힘들 때면 생각 나는 ‘엄마의 손맛’은 힘들 때 마음은 물론 영혼까지 어루만져 주는 특별하고 소중한 양식이다. 아내에게서 나는 ‘엄마의 손맛’은 아이들 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그러한 위로가 될 것이다. 그 위로를 받은 나는 또 나의 역할을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될 터. 아이들도 이 어루만짐을 깨닫고 제 역할을 다해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 위로를 받아들이고 깨닫는다면, ‘엄마의 손맛’에 대한 소중함을 알게되는 그 때에는 알아서 그렇게 할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