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고함.

숭고함, 그것은 무엇일까.

사전적 의미로는 뜻이 높고 고상하다, 고 나와있다. 미학적 의미로는 ‘대상이 인간을 압도하는 크기 또는 힘을 갖는 경우, 소위 미적 형식은 상실되며 (…중략…) 인해 불쾌감을 느끼지만 곧 그런 느낌이 사라지면 유한한 감성을 매개로 무한한 것을 표현하려고 한다.’ 고 설명되어있다. 문학적 의미로도 비슷해서 ‘상대방을 압도하며 도취를 야기하는 아울러 순간 같은 시간성의 양식을 취하는 말의 힘’ 을 다룬다.

근데 사실 피부로 잘 와닿지는 않는다. 숭고? 숭고라는 게 도대체 뭘까.

사실 꽤나 문학소년이던 시절에는 책을 엄청나게 읽어대서 아는 단어는 많았고 아는 개념이야 많았다. 그런데 숭고함, 또는 숭고미, 라는 걸 느껴본 적은 없었다. 단지 그런 단어가 있다는 걸 알고만 있을 뿐이지.

어떤 예술작품을 봐도 마찬가지였고 위인전 속의 위인들이라거나 철학자들이나 종교인들이 말하는 진리라는 걸 들어봐도 마찬가지였다. 숭고함이나 숭고미, 뭐 그런게 있기는 한건가. 압도적인 대자연을 봐도 마찬가지. 우와- 라는 탄성이 나오는 순간은 많았지만 순간 무릎을 꿇게 된다거나 하염없이 눈물이 펑펑 쏟아진다는 스탕달 신드롬 같은 건 경험해본 적이 없었다.

하루는 내 예술대학교 동기들이 나는 가수다에 나온 임재범의 여러분을 듣고 눈물을 쏟았다. 그때 동기들 중에서 가장 좋은 컴퓨터를 가지고 있던 나는, 친한 동기들을 우리 집에 불러 그 프로그램의 재방송을 보곤 했는데 그날은 무려 3명이나 눈물을 훔치고 쏟아내고 하는 것이었다. 지금의 나라면야 그런 모습들을 보고 ‘꼴값들 하고 있네’ 하면서 코웃음을 치겠지만 그때는 예술적 감수성이 풍부한 게 자랑거리이던 시기라… 사실 난 시기심을 느끼고 약간의 자괴감마저 느끼고 있었다.

왜 나는 임재범의 여러분을 듣고 눈물이 안 나지…? 내 감수성이 부족한 건가?

그때 그런 메마른 나를 보고 살짝 미소 짓던 동기들… 지금은 다들 예술도 안하고 그냥 먹고 살기 급급한 그들의 그 승리에 찬 격려의 미소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참 어릴 때였다. 나나 그들이나. 임재범의 여러분이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그럴 시간에 책이라도 한 자 더 볼걸, 뭐 그런 생각이 든다. 대학생활이 다 그렇지 뭐.

갑자기 숭고함 얘기를 하다가 대학시절의 꽁트같은 에피소드로 넘어간 건 내 인생 처음 느낀 숭고함, 숭고미를 얘기하려면 대학시절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대학시절.

그때의 나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지금이야 내 직업이 작가이고 나는 연극인입니다 하고 말하는데 주저함이 없지만(비록 연극을 실질적으로 하거나 작품을 쓰고 있지 않는 순간조차도), 그때는 신춘문예에 당선되서 등단을 안하면 작가가 아니라거나 연극판에 발들여놓지 않으면 연극인이 아니라는 순진한 두려움 같은게 나를 감싸고 있던 시절이었다. 뭐 나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그러했지만. 심지어 그게 몇 년 되지 않은 일이라는 게 더 소름끼칠 따름이다.

아무튼 그런 처지였으니 학교 생활에서 오는 각종 부조리와 적폐와 스트레스는 오히려 어떤 그… 우리끼리는 ‘연극뽕’ 이라고 부르는 그 뽕맛에 해나가는 처지였다. 강압적인 인사 문화라든가, 집합 문화라든가, 폭력적인 선후배간의 위계질서라든가 뭐 이런것들. 이런것들이 마치 연극인의 필수 교양 요소인 것처럼 하고 다녀서 뽕맞고 다닌다고 말하던 그런 시절. 많이 좋아졌다는 지금에도 왕왕 소리가 들려나오는데 그때는 정말 더하면 더했지 못하진 않았었다.

그래도 내가 다니던 과는 상대적으로 글쓰는 학과다보니 오히려 이런 부조리들은 옆에 있는 연극과나 연기과 같은 과들에 비하면 사실 명함도 못내미는 수준들이었다. 우리야 학기초에 반짝하다가 마는 수준인데다가 옆동네 학과의 진짜 폭력적인 애들이 수십년간 일궈온 부조리에 비하면야, 애당초 글쓰는 샌님 쫄보들의 곤조래봤자 선배고 나발이고 그럴 깜냥도 안되는 애들의 장난같은 수준일 뿐이었으니.

헌데 내가 1학년 2학기 학년 과대표를 맡고 2학년이 되면서 맞딱뜨린 모순은 그래서 더 비참했다. 내가 느낀 부조리함은 선배들보다는 동기들에 관한 것이었다.

어쨌거나 우리도 부조리나 선배들의 패악질이나 위계질서에는 다른 모든 과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질려있던 차였다. 근데 그런 애들이 학년이 올라가더니 기어코 후배들에게 인사도 받고 위계질서도 잡아야겠다고 역으로 패악을 부리거나, 같이 선배들 욕하던 애들이 선배들 하던 짓을 그대로 하고 있거나, 도대체 예술대학에서 이런 폭력적 위계질서가 왜 필요하냐면서 단체 행사엔 코빼기도 안비추던 자유로운 영혼들이 단체복 맞출땐 귀신같이 와서 총회에 앉아있질 않나… 특히 마지막 케이스가 제일 열받았는데 단체복, 유니폼이야 말로 폭력적이고 합일적이고 위계적인 문화의 대표격 아닌가? 아니 처음부터 자유로울거면 끝까지 자유롭던지… 왜 도전자일땐 자유인이다가 챔피언이 되니 꼰대가 되는지. 이게 갓 스무살 된 애들부터 서른이 한참 넘은 인간들까지 모두가 보이던 추태들이었다.

거기다가 2학년이 되면 정말 이해할 수가 없는 추태가 나오기 시작했다. 대표적인게 앞서 말한 연극뽕이었는데, 누구라고 말은 못하지만 1학년때 연극 동아리에 들어가 활동하면서 자유로운 영혼이던 애가, 2학년 되서 단체복 받고는, 자기네 과 선배들한텐 인사도 안하면서 연극, 연기과 사람들에겐 동아리 선배님이라고 인사하고 다니고, 인사받고 다니고 우루루 몰려다니고… 뭔가 과시하는듯한 그 움직임이 참 웃기다고 해야할지. 언제는 단체행사도 싫고 인사도 싫고 아무튼 위계질서도 싫다더니. 동아리가서는 선배님 찾고 인사하고 정작 자기네 과 선배한텐 인사도 안하고.

그런 일련의 상황들과 개인적인 몇몇 사정들에 더해서 내가 1년 반 학교 생활 끝에 느낀건 인간에 대한 불신, 그리고 연극에 대한 불신이었다.

불신자.

결정적으로 개인적으로 겪은 사건 하나가 이 불신의 화룡정점이었다. 학생들끼리 하는 연극이라지만 나름 방학 중에 하는 연극 제작 동아리 활동은 꽤 진지했다. 뭐 이야기가 거창하진 않더라도 메시지를 던지고 나름 연극으로 세상을 바꿔보자 이런 파이팅들이 넘쳤다. 문제는 그 연극의 연출 선배가 참으로 폭력적이었다는 건데 자기가 어찌할 수 없는 타과 전공생들한텐 그렇게 사근사근 젠틀맨이 따로 없더니, 자기 후배들인 우리한텐 쌍욕에 고성에 정말 맨정신으론 견딜수가 없었다. 거기다가 방학 특성상 꼭 명절이 껴 있었는데 어디 연극 연습하고 공연이 코앞인데 명절때 쉬려고 하느냐며 ‘꼰대질’을 했다. 지도 교수마저 그 선배 편을 들어서 더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사실 어느정도는 이해한다. 공연이 코앞이고 정말 손쓰기조차 힘든 급한 상황이면 명절이고 뭐고 없는 건 맞다. 근데 그 연극이 그 정도로 위기는 아니었다. 어찌저찌 반발도 있고 해서 결국 명절을 다 쉬진 않지만 이틀에서 사흘정도 쉬는 걸로 결론이 내려졌었다. 그러면서도 어찌나 통큰 결정을 했다는 듯이 의기양양해하던지.

명절 날 자기 팀원들 집에도 보내지 않으려는 사람이 만드는 연극이 세상을 아름답게 바꿔봤자 뭘 얼마나 바꿀수 있을까?

그때 들었던 의문이었다.

학교에는 이제 딱히 롤모델도 없었다. 멋지다고 생각하는 사람, 따르고 싶은 사람, 그런 선배도 없었고. 글을 쓴다는 작업의 특성상 뭔가 지지부진하지만 명확히 보상이 따르는 길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악기야 연습을 하면 늘고, 노래는 부를 수록 늘고, 다리고 찢을수록 찢어지고, 몸을 사용해서 하는 작업은 어찌됐든 실력의 향상이 명확하게 눈으로 보였다. 문제는 글쓰기는 그게 아니었다는 것이었다. 그런 암울한 상황에서 딱히 따르고 싶은 선배조차도 없었으니 학교 생활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오죽했으면 휴학하면서 했던 계획중 하나가 ‘연극이랑 멀리 떨어져있기’ 였을까.

나는 실제로 휴학중에 연극을 보지도 않고, 연극하는 사람이랑은 만나지도 않고, 연극과는 상관없는 곳에서 연극과 상관없는 일을 하며 보냈다.

휴학하면서 연극과 떨어져있다보니 연극이 그리워지긴 했지만, 다시 복학을 했을 때 연극을 바라보던 마음은 예전과는 달랐다. 난 어느새 연극이 좋기는 하지만 그닥 연극을 믿지는 않았다. 연극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글쎄. 한국에서 공연된 모든 연극들이 세상을 바꾼 수치를 1이라고 한다면, 차라리 그 시간에 페이스북에서 유행했던 아이스버킷 챌린지가 한 280억 정도 세상을 많이 바꾸지 않았을까.

다시 숭고함, 다시 인간.

복학하면서 그동안 책을 참 많이 못읽었다는 생각에, 제일 먼저 한게 책 읽기였다. 그 중에서도 희곡. 웃긴 얘기지만 글 쓰는 전공으로 대학을 두 번 다녀보니, 전공생들은 수업중에 제시되는 책들을 읽기에 바쁘지 개인적으로 시간내서 혹은 뭔가 따로 공부를 위해 책을 읽는 경우가 참 드물었다. 상황과 함께 개인들의 게으름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었다.

복학하며 처음 집어든 책은 아서 밀러의 <시련> 이었다.

사실 뭐 알고 읽은 건 아니었고, 복학한 바로 직전 학기의 연극 제작 수업 공연이 아서 밀러의 <시련> 이었는데 난 내용도 제목도 처음 듣는 것들이었다. 그래서 그냥 아무 생각없이 집어든 희곡이었다.

내용은 뭐 아는 사람은 익히 알겠지만 미국의 개척지에서 일어났던, 세일럼이란 마을에서 일어난 마녀 사냥 사건에 대한 희곡이었다. 작가인 아서 밀러는 미국이 맥카시즘에 휩싸여 소위 너도나도 빨갱이라고 낙인찍는 광풍이 휘몰아치던 시기를 겪고(어느나라랑 참 비슷하다) 이 희곡을 썼다. 주인공인 존 프락터는 도덕적으로 깨끗한 인물도 아니고 그렇다고 영웅적인 인물도 아닌 그저 평범한 사람이다. 다만 자신의 과거를 잊고 어떻게든 아내와 앞으로의 남은 생을 잘 살아내보려는. 거기에 존 프락터를 사랑하는 과거의 불륜상대이자 해고된 하녀 아비가일이 마녀사냥의 광풍 속에서 오히려 자신들은 마녀가 맞고 같은 마녀라고 온갖 마을 사람들, 특히 존 프락터와 그의 부인을 지목하는 거짓말을 하면서 이야기는 겉잡을 수 없는 회오리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연극이라고 어려울 것 같지만 오히려 재미면으로만 놓고 봐도 내가 읽은 이야기 중에 최고 중에 속한다. 분량은 길었지만 도서관에 앉아 정신없이 읽어내려갔는데 이야기의 끝이 참 궁금했었다. 이 이야기는 그래서 어떻게 끝날까? 존 프락터가 주인공이니까 저 마녀사냥 재판에서 이기게 되는 걸까?

이야기의 끝에서 존 프락터는 교회와 법정에서 하나의 제안을 받는다. 어차피 이거 다 저 아비가일이라는 여자애가 벌인 개짓거리인거 너나 할거없이 다 알고 있다. 문제는 그동안 교회와 법정이 죽인 사람들도 있고 교회의 체면과 위신도 있으니, 그냥 마녀라고 고백하면 살려주겠다. 존 프락터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절대로 자신들은 마녀가 아니라며 상식과 정의에 기대 호소하는 외로운 싸움을 벌이다가 이 제안을 받고 급격히 흔들린다. 그리고 결국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결국 아내와 함께 살아남아 이 진흙속에서 생을 연명해 살아나간다면 그것은 나름의 승리 아니겠는가. 존 프락터는 받아들이고 다음날 법정에서 자신은 마녀가 맞다고 진술한다.

여기까지, 만 읽으면 이야기는 이대로 끝날 것 같지만. 뒷 이야기가 더 있다.

법정과 교회는 존 프락터에게 이제 진술을 했으니 진술서에 본인의 이름을 직접 사인하라고 요구한다. 존 프락터는 그것만은 안된다며 마침내 울분을 터뜨린다.

“그건 내 이름이니까요! 내 평생에 다른 이름을 가질 수가 없기 때문이오! 내가 거짓말을 했고 또 그 거짓말에 서명을 했기 때문이오! 내가 처형될 사람들의 발 끝의 먼지만도 못한 존재이기 때문이오! 이름도 없이 나보고 어떻게 살란 말씀이오? 내 영혼을 당신께 넘겼으니 내 이름만은 남겨놓으시오!”

이 대사의 앞부분에는 () 괄호를 치고 이렇게 쓰여져 있다.

(온 정신과 육체를 다해 소리지른다.)

내가 살면서 처음 느낀 숭고미는 다름아닌 이 이야기안의 이 인간이 말하는 이 대사에서였다. 그야말로 압도적임. 정말 사전적으로 미적 형식마저 자취를 감추고 오직 압도적인 느낌만이 가득한 그 느낌.

이야기안의 인간, 그 인간의 이야기. 거기서 그걸 느꼈다.

분명 작가도 인간이 싫었을 터인데, 인간의 숭고함을 보여주는 이야기를 써내다니. 그것부터가 대단해보였다.

난 어떤 연극을 하고 싶어했는가. 돌이켜보면 왜 연극이 하고싶은지 어떻게 하고싶은건지는 대답할수 없어도 어떤 연극을 하고싶은지는 분명했다. 난 내 연극을 본 사람의 인생이 바뀌는 그런 연극을 하고 싶었다. 바로 저 대사를 읽은 순간에 바뀐 내인생처럼.

결국 돌고 돌아서 인간이었다.

인간에게 실망했지만, 그런 인간을 바꾸는 것도 결국 인간의 이야기였으니까.

그래서 하는 말인데, 결국은 인간이다. 칸투칸이 하는 작업들 중에서 가장 대중과 소비자의 호응이 높았던 작업들 역시 인간에서 시작한 작업들이었다. 그걸 진정성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진정성이라는 것 자체도 인간에 대한 진지함에서 나온다. 작금의 한국에 불고 있는 냉소와 불신, 그리고 차별과 폭력, 그리고 사상적 낙인을 여전히 찍어대는 살얼음같은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인간에 대한 사랑 아닐까 생각한다. 숭고함이란 한 인간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을만큼 중요한 미적 감각이고, 그 숭고함이란 냉소와 비난에서는 결코 탄생하지 않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