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 대해

재래시장

난 재래시장을 좋아하지 않는다. 냄새나고 위생이 더럽고 카드를 안받는 곳도 많고 바가지도 씌운다. 거기다가 한국인의 정 운운하면서 흥정을 해야만 가격을 깎을수 있다는 그 제도 자체가 21세기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난 재래시장 옆에 대형 마트가 들어서면 안된다는 이유도 알 수가 없다. 왜 대형 마트가 ‘상생’을 이유로 재래시장의 상권을 침해하면 안되는가? 재래시장이 도태되는 건 대형마트 때문이 아니라 재래시장이 제대로 시장의 기능을 소비자들에게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에게 시장의 기능을 하지 못하는 시장을 과연 시장으로 볼 수 있는가? 그런 시장을 왜 도대체 보호해야 하는 건가? 그런 시장은 오히려 도태되는게 당연한 수순 아닌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여행갔을때 가장 충격받았던 부분이 람블라스 거리의 재래시장에 갔을 때였다. 람블라스 거리의 재래시장은 말만 재래시장이지 모든 면에서 한국에서 갔던 대형마트들에 손색이 없었다. 아니 어떤 부분은 월등히 뛰어났다. 거기다가 100년이 넘었다는 역사까지 가지고 있으니 대형마트는 그 재래시장에 비빌수가 없는 것이었다. 더더군다나 지역 주민들이 당연하게 장을 보러 가는 그 람블라스 재래시장은 당연하게도 외국인들에게도 관광을 위해 꼭 들르는 곳 중 하나였다. 람블라스 거리의 재래시장은 지역 주민과 외국인 관광객들로 인해서 인산인해를 이뤘다.

난 그때 깨닳았다. 중요한건 ‘재래’ 시장이 아니구나. 재래 ‘시장’ 이구나. 시장은 시장의 기능을 제대로 할 때 가치가 있다. 시장의 기능을 하지 못하는 시장은 보호해야할 명분도 없고 애초에 존재의 의미도 없다.

탱고 선생님

탱고를 배운지 7개월이 조금 넘었다. 여전히 걸음마 단계지만 즐겁고 열심히 이 탱고 라이프를 즐기려 노력중이다.

탱고를 배우기 시작한지 한달이 조금 지났을까. 그때까지는 월단위로 끊어서 회비를 내던 것을 연회원 개념으로 끊어서 회비를 내려던 차였다. 그런데 약간 당황했던 부분이 있었다.월회원으로 들어가던 회비도 너무 저렴했는데 연회원으로 가니 터무니없이 저렴했었다. 아무리 내가 다니던 곳이 반은 동호회 반은 학원 개념으로 돌아가는 곳이라 해도 이게 이렇게 해서 남는게 뭐가 있나 싶었다.

술자리에서 선생님에게 조심스레 물어본 적이 있었다. 내가 생각해도 이 가격이 너무나도 싼 것 같다. 나는 좋지만 이게 과연 남는게 있으신지… 선생님은 거꾸로 나에게 이렇게 물어보셨다.

탱고 재밌죠?

네? 네. 재밌죠.

나도 그래요. 탱고 재밌어요.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탱고를 췄으면 좋겠어요.

그리고서 선생님은 술잔을 기울였다.

한국의 소셜 댄스 판 자체도 작은편이고, 그 중에서도 가장 큰 게 살사나 스윙 같은 라틴 댄스쪽이고, 탱고는 그 중에서도 가장 작다. 헌데 재밌는건 그 작은 판도 한국이 아시아에서는 가장 활발하게 돌아가는 탱고판이라는 것이다. 물론 그런데도 불구하고 유럽이나 본토 아르헨티나에 비하면 턱도 없다. 현재 대한민국의 유효 탱고인구를 전부 센다면 1000명 전후라고 예상되고 있다.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인구지만 무엇보다 선생님 입장에서 만족스럽게 큰 시장은 아닌 것이었다. 더군다나 동호회 특성상 처음에 재미를 붙였다 한들 중간에 그만두는 사람이 워낙 많다보니,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판을 키우고 탱고를 추는 사람의 숫자 자체를 늘리기 위해서 연회원 같이 장기로 끊는 회원들에게는 파격적인 할인을 해주는 것이었다.

그날 같이 술잔을 기울이면서 입으로 말하진 못했지만 나도 속으로 똑같이 되뇌고 있었다.

나도 그래요. 더 많은 사람들이 탱고를 췄으면 좋겠어요.

나는 주변 친구들에게 같이 탱고를 추자고 늘 말을 하고 다니지만 아직 한명도 탱고를 추러 온 사람은 없다.

일본의 생활체육

일본은 현재 완전히 생활체육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유일하다. 이 말은 뭐냐면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일본이 스포츠 선진국이라는 이야기다. 이 말은 한국은 스포츠 선진국이 아니란 이야기다. 더 정확히는 한국은 스포츠 선진국 근처도 못갔다는 말이다.

누군가는 발끈할수도 있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그렇게 따고 한일전은 거의 이기는데 무슨 일본 따위랑 비교하느냐고. 그러면 조용히 물어보고 싶다. 그 말을 하는 당신은 스포츠를 즐기고 있습니까? 당신은 체육인입니까?

일본이 완전한 생활체육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이야기는, 현재 일본의 젊은 세대부터는 평생에 걸쳐서 즐기는 스포츠가 1인당 1종목 이상이 있다는 이야기이다.

굳이 고교야구팀이 한국이 100개가 안되는데 일본이 4000개가 넘느니 이런 이야기까지는 갈 필요도 없다. 일본은 전국 초중고를 통틀어서 수영장이 없는 학교가 2개밖에 없다. 다시 말하지만 없는 학교가 2개다. 한국에서 초중고를 나온 당신, 수영장이 있는 학교라는 걸 들어본 적 있는가?

이미 여기서부터 게임 끝난 거다. 인프라에서부터 말이다.

그리고 한국은 아직까지 생활체육이라는 개념 자체가 완전히 자리잡히지 않았다. 이 말은 뭐냐면 운동은 ‘운동부’가 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이 ‘운동부’ 문화는 아직까지도 엄청난 폐해를 누적해 반복하고 있다. 어쩌면 이런걸 보고 적폐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합숙 문화, 폭력 및 구타 문화, 상납금 같은 금품 수수 파문, 거기에 더해 무엇보다 성적을 내기 위해서 코치나 학교 측에서 운동부 아이들에게는 공부 자체를 시키지 않으려 한다. 운동부 아이들이 공부를 할 시간에 운동을 하기를 바라는 게 바로 한국의 어른들이다. 그리고 이 운동부 아이들이 운동에서 성공을 못하면, 전국체전에서 금메달을 못 따거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못따면 또 실패자 취급을 한다. 혹은 그 근처에도 가지 못한 아이들은 공부도 못해 운동도 못해, 사회에서는 갈 곳이 없어진다.

21세기 한국의 이야기다.

일본의 생활 체육은 과연 어디까지 성과를 내고 있을까?

올해 일본 육상 단거리 100m에서 두명의 선수가 아시아 신기록을 세웠다. 몇십년 가까이 깨지지 않던 기록이었다. 이 기록을 일본에서 동시에 두 명이 갈아치웠다. 무엇보다 일본 육상은 한국처럼 엘리트 기반이 아니다. 생활 체육 기반에서 이런 성과가 나왔다는 것이 고무적이다. 일본의 육상 기록 단축은 단기적 성과가 아닐 것이다.

대학로

대학로에 연극을 보러 갈 때마다 느꼈다. 여기는 시장이 형성되어 있지 않은 죽은 공간이라고.

이번에 연극을 하기도 했지만 역시 마찬가지로 느꼈다. 대학로는 시장이 형성되어 있지 않다.

잘 모르는 사람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그게 무슨 소리냐. 연극을 하는 사람들이 있고, 연극을 보고 싶어하고 보러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무슨 시장이 없냐고.

이런 말을 관객들이 하면 그런가보다 하겠지만, 이런 말을 연극인들이 하면 정말 소름이 돋는다. 연극인들이 굶는 건 다 저런 사람들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당신이 연극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고 해보자. 헌데 대학로라는 곳에서 연극을 하는 것은 알고 있다고 해 보자. 그럼 당신은 대학로라는 곳에서 당신 취향에 맞는 어떤 장르의 연극을 보고 싶은데 누군가에게 추천을 받아서 공연을 보고 싶을 것이다. 지금 인터넷을 켜고 한번 검색을 해보기 바란다.

인터넷에서는 현재 상연되고 있는 연극들의 정보들 중에서 어떠한 의미있는 정보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다보면 결국 저질스런 코미디나 연애물같은 연극이나 보러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나면 누군가는 만족하겠지만 실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연극 뭐 재미없네, 연기도 별로고, 돈 아깝다고. 그렇게 미래의 관객이 될 수도 있었던 사람은 영원히 연극을 떠나게 된다. 연극에 실망해서.

나는 연극을 하는 사람이고 실제로 많이 보는 사람이기 때문에 당신에게 좋은 연극을 취향에 맞춰 추천해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허나 당신이 단지 인터넷만 뒤져서는 그 정보를 절대로 얻을 수가 없다. 한국 연극계는 일반인들에게 제대로 공연의 정보를 전달하는 홍보의 장을 가지고 있지 않다. 거기에 더해서 티켓 결제 시스템은 또 더럽게 복잡하다. 연극인인 나도 가끔 연극 티켓 하나 사려다가 화병이 걸려서 소리를 지를 때가 있다.

나는 연극인으로서 가장 안타까운 부분이 이것이다. 연극계에는 시장 자체가 형성되어 있지 않다. 소비자와 판매자가 제대로 만나고 있지 않다. 이게 가장 근본적인 문제이다.

연극인이 가난하다? 왜 가난할까?

연극으로 돈을 못 버니까.

연극으로 돈을 왜 못벌까?

일부 사람들은 이게 마치 무슨 사회 구조의 문제인 양, 혹은 건물주들의 횡포인 양 말하지만 다 틀렸다. 애초에 연극이 돈이 안되게 만든 건 연극인들이다. 연극으로 시장을 만들지 않고 자기들만의 예술세계랍시고 대중들을 저멀리 밀어내온 건 건물주도 사회구조도 아닌 바로 연극인들이다. 난 하루빨리 대학로가, 연극계가 제대로된 시장을 가지기를 바란다.

시장같지도 않은 재래시장에 좌판 깔아놓고 이마트 아웃, 재래시장 살립시다 하지 말고, 람블라스 재래시장처럼 정말 제대로된 시장을 만들기를 바란다.

칸투칸

시장. 결국 자본주의 사회에서 중요한 화두는 이것이다. 시장.

그런 의미에서 칸투칸의 행보는 의미있다 못해서 대단하기까지 했다. 가성비라는 키워드 자체는 그리 대단할것도 없었다. 헌데 칸투칸이 성과를 거둔 분야는 이미 모두가 포화상태라고 했던 레드오션 그 자체, 바로 아웃도어시장이었다. 이미 국내 브랜드며 외산 브랜드며 할 거 없이 뽕을 뽑을대로 뽑아서 더 빨아먹을 것도 없는게 이 아웃도어 시장이었다. 칸투칸은 그런 아웃도어 시장에서 성과를 내고 자신들만의 자리를 잡았다.

그때 나도 칸투칸의 제품과 철학에 반해 행보를 주목하고, 결국 이렇게 인연이 되어 여기에 글을 쓰는 입장까지 되었다. 돌이켜보건데 칸투칸의 성공은 결국 이 시장의 개척에서 시작된 게 아닌가 싶다. 내가 말한 개척은 포화상태인 시장을 개척했다는 뜻이 아니다.

‘제대로된 시장이 없는’ 상황에서 칸투칸은 ‘제대로된 아웃도어 시장’을 만들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 브랜드로부터 시작된 패딩 열풍은 그 특유의 고가 정책으로 등골 브레이커라고 불리면서 희화화되고 사회 문제로까지 파장이 커지던 상황에서, 이제 패딩은 겨울철에 누구나 한 벌은 가지고 있는 필수 아이템이 되었다. 이젠 누구도 패딩을 살 때 단순히 가격만 보고 사지 않는다. 가격대 성능비를 보고, 구체적으로 패딩의 구성요소를 살펴본 뒤 합리적 구매를 한다. 거기에 더해 굳이 디자인을 본다면 보기도 한다.

칸투칸이 이런 합리적 소비에 한 획을 더했음은 부정할 수 없다.

시장을 만들기 위해

먼저 시장이 형성되어 있다는 착각을 깨부숴야 한다. 대학로 연극계가 그렇고, 한국의 스포츠계가 그렇고, 아르헨티나 탱고 판이 그렇고, 칸투칸이 개척했던 아웃도어판이 그러했다. 그들이 시장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재래시장 역시 마찬가지다.

세상에는 이름만 시장이고 시장의 기능을 하지 못하는 죽은 시장들이 너무나 많다. 언뜻보기에는 레드오션같지만, 사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바다 자체가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답은 역시 과감한 개척, 그리고 미래세대에 대한 투자와 교육이다.

예를 들어 ‘고 알레’ 라는 단체가 있다. 소규모로 시작한 이 단체는 생활체육으로서의 ‘축구’ 에 대한 교육 사업으로 시작했다. 현재는 생활체육 축구 클럽들의 경기를 드론 촬영을 해주는 사업, 혹은 외국에서 고급 라이센스를 보유한 현역 코치를 초빙해 생활체육을 즐기는 성인들을 대상으로 강습을 여는 등, 다양한 사업을 폭넓게 벌이고 있다. 언뜻 들으면 조기축구하는 사람들한테 그런 사업하는 게 뭐 대단하랴 싶지만, 이들이 하는 강습 세미나는 경쟁률이 장난이 아니다. 단순히 축구가 아침에 나가 볼 차고 막걸리 마시는 아저씨들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걸 이 생활체육인들의 열정이 증명하는 것이다. 결국 이들이 형성한 시장은 현재도 성장중이고 앞으로도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축구는 대한민국 생활체육계에서 현재 가장 파이가 큰 스포츠이고, 이들의 사업은 이제 막 시작 단계기 때문이다.

칸투칸의 사업 역시 결국은 이런 방향으로 가야할 것이다. 시장의 개척은 단순히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것에만 있는 게 아니다. 목마른 소비자들에게 제대로된 교육과 체험의 기회를 주는 것 또한 개척의 한 요소이다. 탱고 판을 키우기 위해서는 탱고 옷을 파는 게 아니라 탱고를 가르치는 게 중요한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