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을 하던 나

난 어려서부터 게임이 좋았다. 재밌었으니까. 그리고 쉽게 가질 수가 없었으니까.

내가 어린시절 그러니까 9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게임이라고 하면 부모세대나 선생님같은 어른들은 펄쩍펄쩍 뛸 때였다. 게임을 하면 사람이 바보가 된다느니 하면서. 초등학생 때 학교앞 문방구에는 작은 오락실 기계가 놓여 있었다. 난 매일매일 그 게임들이 너무나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난 부모님 말을 잘 듣는 착한 아이였기 때문에 게임을 할 잔돈 같은 건 가지고 다니지 않았다. 설령 있다 치더라도 친구들처럼 돈바꿔서 떡꼬치 사먹거나 게임기에 투자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난 다른 친구들이 게임을 하는 모습을 열심히 구경만 하곤 했다.

헌데 어느날 그러다가 누군가 내 뒤통수를 주먹으로 때리는 것이었다. 아, 이게 바로 오락실 삥 뜯는 일진인가? 가만, 여긴 오락실도 아니고 문방구 앞 대로변인데…? 하며 뒤를 돌아봤더니 우리 반 여자 담임 선생님이 세상 제일 마귀같은 몰골로 내 앞에 서 있었다. 대뜸 뺨을 두세대 더 때리더니 주먹으로 내 정수리(당시 내 나이 11세였다.)를 난타한 담임 선생님은 나를 교무실로 데리고 가서 10여분간을 더 쥐어박더니 반성문을 쓰게 했다. 내가 뭘 잘못한 건지 알 수가 없었던 나는 있는 사실대로 반성문을 썼다. 학교가 끝나고 오늘은 학원을 가는 날이 아니어서 시간이 남아 학교 앞 문방구에서 친구가 하는 게임을 구경했다. 라고.

담임 선생은 반성문을 박박 찢더니 다시 내 정수리를 주먹으로 난타하고는 내가 거짓말을 한다고 말했다. 학원을 가는 날이 분명할 거라고. 아니었지만 난 더 맞다가는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맞다고 거짓말을 했다고 했다. 그리고는 게임을 구경하는데 왜 죄송하다는 반성의 기미가 보이지 않느냐고 다그치길래, 속으로는 그게 왜 죄송한지 반성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죄송하다고 했다.

2시간을 더 시달린 후에야 나는 마침내 그 담임 선생의 컨펌을 거친 반성문을 들고 거의 온몸이 너덜너덜해져서 집으로 돌아갔다. 부모님에게 그 반성문에 사인을 받아와야 하는 건 덤이었다.

참고로 이건 5공화국 때 전두환 대통령에 맞서 반대 시위를 하던 대학생이 공안 경찰에 잡혀 구타를 당하던 이야기가 아니다. 초등학교 4학년 학생이 여자 담임 선생님에게 문방구 앞에서 게임 구경을 했다고 당했던 일 들이다.

세상이 바뀌었다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다. 게임은 문화 산업을 통틀어서 가장 파이가 큰 시장이 되었고. 참고로 게임시장이 어느 정도로 거대한 지는 4년전의 통계 자료 하나로 설명할 수 있다.

전세계 게임 시장까지는 갈 것도 없이, 대한민국의 2013년 문화 콘텐츠 수출 규모 통계에 따르면, 게임 산업은 캐릭터(카카오니 라인이니 난리치는 그 캐릭터산업), 음악(K-POP 이라고 난리치는 그 음악 산업), 애니메이션(웹툰으로 세계 진출한다는 그 애니메이션), 영화(영화는 역시 한류열풍이라는 그 영화) 이 네 개 주력 문화산업을 다 합친것의 3배에서 4배를 상회한다. 다시 말하지만 게임 시장의 수출 규모가 캐릭터, 음악, 애니메이션, 영화 4개 산업을 다 합친다음 그 규모에 3에서 4를 곱한 것보다 컸다.

이게 4년전 통계이니 지금은 아마 더 커졌을 것이다. 게임 산업은 폭발적으로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는 몇 안되는 산업이니 말이다.

사실 게임만큼이나 세상 사람들의 태세전환이 빠른 것도 없을 것이다. 게임을 무슨 마약이나 사회악처럼 규정짓던 정부에서도 게임 산업이 벌어들이는 돈에는 눈이 돌아갔는지 미친듯이 이런저런 명목으로 세금을 떼려고 했다. 사실 대한민국에서처럼 게임의 취급이 안좋은 국가도 흔치는 않다. 유럽이나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중국조차도 자국내 게임 산업 육성에 총력을 기울이는 중이다. 물론 한국은 세금 뗄 궁리만 하고 있다.

나는 이런 세상에 살면서 사람들이 이세돌이 알파고에게 승리한 것에 열광했던 것이 정말 블랙 코미디였다. 바둑이 정확히 조선시대에는 현시대의 게임과 같은 취급을 받았다. 사실 바둑이야말로 두뇌 게임의 원조이니 우리랑 똑같은 피를 가진 선조들에게 똑같은 취급을 받았다는 건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조선시대 정부와 사대부들은 바둑을, 선비들을 홀려서 공부는 게을리하게 만드는데다, 내기 바둑같은 사행성 도박에 빠지게 하고 마약과 같은 중독성을 가진 천하의 악질적인 것으로 분류하고 공격했다. 별로 믿고싶지 않겠지만 조선시대에 바둑은 그런 것이었다. 그런데 왜 우리가 지금 이세돌의 바둑을 보면서 열광할 수 있느냐고? 왜긴, 일본은 바둑을 하나의 예술이자 기예로 받아들여서 바둑 문화를 엄청나게 발전시켰고, 그 전통이 구 일본 제국 때 조선과 청나라에 퍼졌던 거지. 일본이 아니었으면 우린 여전히 바둑은 천한 것들이나 두는 잡기라고 취급받았을 것이다. 아니면 하우스 같은데서 꾼이나 타짜들이 판돈걸고 내기바둑이나 두고 있을 수도 있고.

예나 지금이나 게임은 죄가 없다. 죄가 있다면 게임이란 걸, 놀이란 걸 천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시선이다.

게임의 시대

몇해 전 TED 에서는 블리자드 엔터테이먼트 직원이자 전세계적으로 가장 성공한 온라인 MMORPG 게임인 <World of Warcraft> 의 개발자중 한 명이 나와 강연을 했고 그게 꽤나 화제였다.

게임의 역사와, 인간의 역사 속에서 게임이 어떤 역할을 했고, 어떻게 세상을 바꿔왔는지가 강연의 주 내용이었고, 결론적으로 우리는 게임에 할애하는 시간이 너무 적으니 더 게임을 하는 시간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도 충분히 게임을 많이 하는데 너무 적다니? 그녀는 게임을 하는 게 그렇게 인생의 낭비가 아니고, 우리는 게임을 통해 유희와 함께 인간사 모든 종류의 문제를 해결하는 실험을 해볼 수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과거와 현재, 인간들은 당면한 문제를 게임을 통해서 극적으로 해결해 왔고, 해결해 가고 있음을 여러 사례를 들어 증명했다.

물론 그녀의 이런 강연이 아니었더라도 게임을 통해 인류가 진화하고 문제 해결 능력을 키워왔음은 다른 사례들도 많다. 외국의 한 연구에 따르면 실제로 FPS 게임을 즐기는 게이머들은 동체시력과 상황판단력이 일반인에 비해 월등히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 실제로 미군에서는 이런 전쟁 시뮬레이션 게임과 FPS 게임을 병사들의 훈련에도 적극 활용하고 있다. <American Army> 줄여서 AA 라고 부르는 게임은 실제로 미군 홍보 게임으로 모병을 장려하기도 하면서, 병사들의 가상 전투 훈련에 활용되고 있다.

더군다나 이제는 VR 이라는 최첨단 기기가 대중화되기 시작하면서 단순히 모니터와 키보드, 마우스로 즐기거나 콘솔과 패드로 즐기던 게임은 시청각에 촉각이라는 감각을 사용하는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Facebook 은 차세대 기술로 VR 을 이용한 가상현실 채팅 기술을 컨퍼런스에서 선보였는데 그야말로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그들은 가상 현실에서 각자의 아바타로 대화를 하고(아바타들의 입모양은 정확히 대화에 맞춰서 움직인다), 회의실에서는 지우개를 던지거나 칼을 그려서 그 칼을 들고 펜싱을 하는 등 다채로운 움직임을 할 수 있었고, 심심하면 회의실을 화성이나 용암이 가득한 화산위로 설정하고, 거기에 더해서 실제 가상현실 밖의 사람에게 전화를 거는 등 거의 새로운 세계를 여는 모습을 선보였다.

VR을 이용한 게임들은 레이싱 파트와 만나면서도 새로운 경지를 열었는데, 이제 일부 드라이버들은 최첨단 기술로 개발된 가상현실 레이싱 기계에 앉아서 현실과 거의 흡사한 감각으로 레이싱을 즐기거나 연습할 수 있다. 당장 유튜브에만 보더라도 레이서들이 게임을 즐기며 거의 현실과 흡사하다고 감탄하는 장면을 드물지않게 볼 수가 있다.

바야흐로 우리는 게임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N번째 예술, 우리는 대비하고 있는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영화. 지금은 누구도 영화가 예술임을 부정하지 않지만, 과연 과거에도 그러했을까? 영화가 예술로 인정받은 것은 언제일까? 정확히 얘기할 수는 없지만 보통은 이탈리아의 시인이자 영화평론가인 리치오토 카누도가 영화가 7번째 예술이라고 선언한 해를 기점으로 삼는다. 그게 불과 1911년, 영화는 예술로 인정받은지 고작 100년이 조금 넘은 것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게임은 어떠할까? 그러나 우리는 누가 언제 게임을 예술로 선언하는지 이미 중요하지 않은 시대에 살고 있다. 게임은 이미 몇몇 작품의 경우 충분히 예술의 경지로 들어왔음을 증명했다. 디스토피아 세계와 인간을 다룬 <Last of us> 나 중세 판타지 세계를 다루면서도 인간이란 존재에 대한 무거운 질문을 던지는 <Witcher 3> 같은 게임들은, 그 제작비나 수익 같은 세속적인 면에서는 이미 영화를 초과한지 오래되었다. 단순히 제작비나 수익을 떠나서도 이 게임들은 잘짜인 시나리오, 묵직한 주제의식, 빨려들듯한 재미 등으로 게이머들과 평론가들의 찬사를 한몸에 받았다. 게임은 더군다나 영화가 주지 못하는 것을 줌으로써 이미 특정한 부분에서는 영화를 초과한지 오래이다. 게임은 바로 이야기를 ‘직접 체험’하게 만든다.

이제 VR이 더욱 대중화되고 더 혁신적인 기술들이 동시다발적으로 개발되면 게임은 문화와 예술을 넘어 우리 삶의 한 축을 지배하는 요소가 될 것이 분명하다. 아니, 어쩌면 이미 그렇게 되어있는지도 모른다. 헌데 우리는 과연 이런 시대에 대비가 되어있는지?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