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이라는 제목의 책이 있었다. 물론 난 읽지는 않았다. 하지만 저 제목은 잘 지은 제목이라고 생각한다. 저 제목을 읽는 순간, 내 인생 속의 저러한 것들이 한순간 스쳐지나가니까. 물론 그 생각이 더 소중해서 책 자체를 살 생각은 안 하게 됐지만. 어찌 보면 너무 잘 지은 제목의 폐해라고나 할까.

나한테도 그런 것들이 있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더 정확히는 이런 것 정도는 학교에서 미리 배웠어도 참 좋았을텐데, 하는 것들. 좀더 정확히는 고등학교 때 쯤에는 이런 것들을 배웠으면 좋았으련만 하는 것들. 나이 30이 되고 보니 10년이 아쉬운 그런 것들.

옷.

난 옷을 참 못 입었다. 옷 입는 법을 아예 몰랐다고도 할 수 있다. 패션 테러리스트라는 말은 대학교 신입생때부터 참 꾸준하게 듣던 말이었다. 난 외모라는 걸 아예 가꿀 줄을 몰랐다. 무슨 옷을 사야될 줄도 몰랐고, 핏이 뭔지, 색깔 조합은 뭔지, 신발은 뭘 사야 되는건지, 도통 아는 것이 없었다. 난 심지어 군대에 가기 전까지 옷이라고는 엄마가 사오는 옷만 입었다. 내 사이즈라는 것조차 몰랐다. 그냥 엄마가 105라니까 그런갑다 했다. 물론 난 105가 아니다. 턱도 없이 벙벙한 그 옷들의 정체는 그냥 옷은 클수록 편하다는 엄마의 말같지도 않은 소리였을 뿐이었다.

군대에 가면서는 차라리 나았다. 군대에서는 모두가 같은 옷을 입으니까. 문제는 군대에 가면서도 난 옷 사이즈를 몰랐기 때문에 신병 교육대에서 옷과 신발 모두를 잘못 골랐다는 것이었다. 난 심지어 신발도 엄마가 사 준 걸 신을 뿐 내가 직접 신을 사 본적이 없었다. 난 신발을 사면 떨어지거나 잃어버릴때까지 신었다. 그러니 사이즈도 몰랐다. 엄마는 내 신발을 사올 때도 꼭 두 치수는 큰 걸 사왔다. 난 신병 교육대에서 각각 105짜리 전투복과 두 치수는 커서 걸을때마다 헐렁거리던 전투화를 보급받고 2년 군생활을 했다. 이제는 내 치수에 익숙해진 신발을 신다가 예비군 훈련때 전투화를 신으면 깜짝깜짝 놀라곤 할 정도다. 이걸 신고 2년간 행군에 뜀걸음을 어떻게 했는지. 전투복은 또 왜이렇게 큰지.

군대를 다녀왔어도 사정은 매한가지였는데 나는 유행이나 핏이나 내 몸에 어울리는 디자인이나 색이 뭔지에 전혀 감이 없었다. 다시 시험쳐서 간 대학교에서는 이전처럼 패션 테러리스트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냥 완전한 복학생 룩으로 1년 반을 다녔다. 예술대학교다 보니 외모나 옷차림에 있어서 너무 잘난 아이들이 많아서 난 알게 모르게 그런 쪽으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결국 휴학을 하자마자 나는 두 가지 목표를 세웠다. 하나는 직접 아르바이트를 한 돈으로 장시간 해외여행을 가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옷을 잘 입는 법을 배우는 것이었다. 지금 들으면 웃을 수도 있지만 그때 나한테는 꽤나 절실한 목표였다. 외모라는 것에 전혀 신경을 안 쓰던 시절이라면 상관은 없었지만, 이제 와서 뭔가 꾸며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는데도 어떻게 할 바를 몰라서 헤매고 있었으니. 그때 나이가 스물여섯이었다.

친한 친구 중에 제일 옷을 잘 입는 사람이 있었다. 본인 스스로도 옷을 입는 걸 좋아했고 내가 봐도 옷을 참 잘 입었다. 나는 아르바이트 첫달 월급은 전부 비행기표를 사는 데 질렀고, 두 번째 달 월급 100만원 중에 50만원을 가지고 그 친구에게 연락을 했다. 옷을 입는 법을 좀 배워보려고 하는데 도와줘야겠다. 흔쾌히 쇼핑을 가서 그날 10시간인가를 돌아다녔다. ‘입을 만한 옷이 전혀 업는 상태의 성인 남성이 기본적으로 신발장과 옷장에 갖춰놔야 할 것들’이 뭔지를 수업 듣듯이 설명 들으면서 쇼핑을 했다.

그날 내 신체 사이즈를 정확하게 알았고, 신발부터 사기 시작해서 바지, 상의까지 구매하면서 돈을 거의 다 썼다. 잊을 수가 없는 게, 그렇게 옷을 입어본 게 처음이라 너무 신기한 나머지 다음날 옷을 입고 사진까지 찍었었다. 셀카는 잘 찍지도 않는데. 같이 쇼핑해준 친구도 뿌듯해했으니. 사람이 됐다고.

고등학교 때에도 사복을 쇼핑하고 입는 법을 하루 정도는 배웠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황학동 벼룩시장을 가든, 동대문 구제시장을 가든 말이다. 그러고보니 교복 값도 비싼데 교복을 입는 이유도 잘 모르겠다. 중학교 고등학교 6년 내내 교복을 입혀놔봤자 졸업하면 양복 입는 법은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되니 말이다. 핏이 딱 맞게 입지를 않는데 그걸 수트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냥 봄, 여름 혹은 가을, 겨울 내내 입을 옷 사기, 이런 특별활동 시간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베이지색 면 바지를 자기 몸에 딱 맞는 사이즈로 사서 밑단까지 수선해오기, 자기 몸에 딱 맞는 셔츠 기성복 브랜드를 알아내서 사 입고 오기, 현재 자기가 입은 옷에 잘 어울리는 자켓이나 블레이저는 매일 자율로 입고 오기. 이런 게 과제나 교칙이라면 어땠을지.

연애.

난 연애도 늦은 편이었다. 군대를 전역하고 나서야 인생 첫 연애를 했다. 그것도 짧게 끝났지만. 사실 얼마간은 첫 연애가 늦었기 때문에 약간 한맺힌듯이 사람을 많이 만나보려는 경향도 없지 않아 있었다. 지금이야 나이도 들고 연애도 해볼 만큼은 해봤다는 기분이 들기 시작해서 그런 치기도 수그러들긴 했지만, 한때는 저 위에 옷도 못입는 인간이란 타이틀에 더해서 연애도 못하는 인간이라 진지하게 고민도 많이 했었다. 나라는 인간은 뭔가 매력이란 게 전혀 없는 건가?

첫 연애는 정말 열심히 했었다. 그도 그럴것이 당연한 게 ‘첫 연애’ 잖아! 이 세상 사람들 중에 첫 연애를 열심히 안 하는 사람도 있을까? 첫 연애에 결혼까지 성공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지만 나는 그런 특출난 케이스는 아니었다. 평범한 연애를 했고, 평범하게 행복했다. 평범하게 이별했고, 평범하게 아파했다. 다만 내가 슬펐던 것은 내 연애와 내 사랑이 뭔가 역사에 남을 정도로 특별할 만한 점은 전혀 없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닳아서였다.

사실 가까이에서 보면 모든 사람의 연애는 특별하고 유니크하지만, 조금만 멀리 떨어져서 보면 모두의 연애는 비슷한 패턴을 보이게 마련이다. 난 내 사랑과 내 연애는 특별하리라 생각했고, 내 감정과 내 감각 역시 특별하리라 생각했다. 물론 그 사람과의 연애는 그 사람과만 할 수 있으니 어느정도는 맞는 얘기였지만, 그 때 늦은 연애와 이별을 하면서 나는 다른 사람들의 패턴과 비슷한 이 연애가 왜인지 모르게 서글펐다.

그래서 군대에서 혹은 대학에서 사회에서 친구들에게 듣는 연애 이야기 중에 가장 부러운 게 바로 ‘중고등학생 시절의 연애’다. 정말로 풋풋하고 순진한, 어찌 보면 아직 아이의 티를 벗지 못했을 때, 그때 첫 연애를 했다면 어땠을까. 교복을 입고 친구들에게 괜히 들킬까봐 티내기도 싫어서 몰래 만나서 손만 잡고 걸어도 두근거렸을 그 느낌을, 지금의 나는 전혀 느낄 수 없는 그 순수함을 그때 느꼈어야 했을텐데. 살면서 처음 느끼는 그 감각과 감정에, 뭔가가 새로운 사람으로 변하는 기분을 그때의 그 순진함으로 느꼈다면 어땠을지. 지금도 길을 걷다가 고등학생 커플이 손을 잡고 걷거나,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가볍게 입맞추는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진다. 그런 아이들을 보고는 질투도 나지 않는다. 오히려 결혼을 꿈꾸게 된다. 결혼을 해서 아이들이 고등학교에 가면, 꼭 연애를 하라고 해야지 하는 생각. 그래서 수줍게 손잡고 다니는 아이를 보며 슬며시 미소짓게 되는 순간을 그리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할 수만 있다면 모든 학교를 남녀 공학으로 바꿔버리고 싶다. 대체 왜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 성장기때부터 아이들을 이성과 격리시키는 건지. 제대로 된 성 교육이라고는 전혀 되지 않고 있고, 교사들의 성비도 맞지 않아서 롤모델로 삼을 남자 교사도 제대로 없는 교육 현장이 아쉽다. 아이들은 왜 연애를 하면 안 되는 걸까. 아이들은 왜 돌기가 있는 콘돔도 사면 안되는 걸까.

한국의 성교육과 관련된 어느 전문가의 글을 봤을 때, 나는 슬프면서도 가슴이 아팠다. 보통 적정한 최초 성관계 연령을 16세 정도로 보고, 서구권에서는 더 낮게 보는 경우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성교육이 발달한 선진국일수록 부모들은 항상 내 아이가 사귀는 누군가와 오늘밤 같이 섹스를 할 수도 있다는 인지를 하고 있다. 그래서 보통 아이가 애인을 집에 초대를 하는 건 같이 데이트를 하고 부모님께 자신의 애인을 소개한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부모의 허락하에 그날 밤 자신의 방에서 섹스를 할수도 있다는 것이라고. 이런 이야기를 한국 학부모들에게 하면 펄쩍 뛰는데 자신은 이해를 할 수가 없다고.

한국의 학부모들은 내 아이의 섹스가, 혹은 첫 경험이 어디에서 이루어지길 바라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부모가 어느정도 상황을 통제할수 있고, 안전과 청결 위생이 보장되는 자신의 집에서 자신의 아이가 행복하게 관계를 가지는 것이 최선 아니겠느냐고. 자신의 아이가 인적도 드문 놀이터나 아파트 복도, 혹은 계단, 혹은 더러운 화장실, 혹은 불결한 여관방이나 누군지 얼굴도 모르는 애인의 자취방이나 아지트에서 관계를 맺는 걸 바라는 거냐고.

이야기가 좀 많이 나갔지만, 굳이 성관계뿐만이 아니라 연애도 마찬가지 아닐까. 농담삼아 우스갯소리 삼아 연애를 글로 배웠단 말도 하지만, 세상 모든 건 배워야 비로소 잘 할수 있게 된다. 내게는 늦게까지 배우지 못했던 그것이 연애였고, 옷입기였다. 너무 늦도록 몰랐었기 때문에 그 두가지를 배우면서 좌충우돌 일어나는 상황들이 힘들기도 했다. 너무 늦게 배웠기 때문에 늦도록 잘 하기가 힘들었다. 지금도 잘 하는 건 아니지만.

우리는 때로 살면서 너무 중요한 부분들에 대해서 배우지 않고 넘어간다. 수능 시험보다도 중요한 건 이런 것들 아니었을지. 공부도 잘하고 연애도 잘하고 옷도 잘 입는 애도 물론 있겠지만, 모두가 그런 사람들인 건 아니니까. 사람들이 좀더 옷을 갖춰입고 잘입으려 하고, 좀더 많이 연애를 하고 사랑을 하고 그 관계에 걸맞는 매너를 걸치려고 할 때, 내가 사는 공동체와 나라가 좀더 행복해지고 살만해질 거라는 믿음에, 오늘도 그렇게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