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불교 신자다. 뭐 어느 종파인 것을 떠나서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라면 거의 모두가 공유하는 비슷한 가르침들이 있다. 그중에 하나가 무소유의 개념이다. 불교가 유독 무소유라는 법정 스님의 책 때문에 유명해지긴 했지만, 불교만 무소유 개념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어느정도 대자연에 대한 존경심이 있는 종교라면 응당 이런 무소유 개념과 가르침들을 가지고 있다. 세상 만물 중에 온전한 내 것이라곤 없고, 그저 대자연에서 잠시 빌려쓸 뿐이라는 개념.

근데 문제는 온전한 내 것이라고 생각되는 물건이나 제품이 있으면, 그게 또 그렇게 삶의 만족도를 높여준다는 것이다. 그게 종교에서 말하는 ‘집착’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난 좀 유독 그 소유에 대한 개념이 강했는데 특히 온전한 내 것, 남이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는 나만의 것에 대한 갈망이 컸다. 아마 어렸을때부터 몸이 좀 약하고 왜소했던 탓인 것도 같다. 그 어린나이부터 놀던 애들은 왜 그리도 나에게 와서 백원만 천원만 이것좀 저것좀 하며 빌려가서 돌려주지 않았던 것인지. 그리고 한 살 터울인 누나는 어려서부터 나보다 피지컬이 월등히 좋았던 탓에(지금도 나보다 좋다) 가끔 내 물건이나 사적인 시간과 노동력을 빌려가서 보상해주지 않는 일들이 아주 많았다. 예를 들면 자기가 맘에 드는 생일 선물을 내게 선물하고는 일주일 뒤 ‘너 안 쓰니까 내가 가져간다’ 라며 가져가는 행위라거나, 이것저것 내게 심부름을 시켜대는 일이라거나.

아마 지금 내가 나만의 시간, 나만의 작업, 나만의 여유, 나만의 물건 같은 것에 집착하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아닐까 싶다.

헌데 이런 심리는 사실 상처받은 인간이 가지는 트라우마 따위가 아니다. 모든 인간에게는 온전한 나만의 것, 자기만의 것을 갖고 싶은 욕망이 있고, 이것이 충족되었을 때는 안정감을, 충족되지 않았을 때는 불안정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예를 들어 보육원에 위탁되는 아이들의 경우 보육원의 재정과 각종 악조건들 속에서 사생활이라곤 없는 생활 속에서 성장한다. 나만의 물건도 없고, 나만의 공간, 사생활이 없이 성장한다는 얘기다.

화목한 가정이라 할 지라도 경제적 사정 때문에 방을 같이 쓰는 건 성장기 아이에게 큰 스트레스인데, 성인이 되기 전까지의 모든 과정속에서 사생활과 온전한 나만의 것이 없다는 건 어떤 스트레스일지 가늠이 되는가? 더군다나 나만의 가족이란 것도 없는 아이들에게. 이런 보육원 아이들에 대한 교육 연극에 대한 이야기를 문화예술교육사 교육 과정을 들으면서 접한 적이 있었다. 이런 경우에는 사실 연극 교육이란 개념 자체가 무의미해지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최고의 프로그램은 수수깡으로 아이들에게 자신만의 방 만들기 놀이를 하는 것이라고 했다. 아이들의 호응도도 높고, 한번도 자신만의 것을 가지지 못했던 아이들에게 자기의 방을 꾸며보는 것은 아주 행복한 추억처럼 남고 또 인생의 어떤 목표가 될 수도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내게 있어 이런 사생활의 영역은 최소 단위로는 나의 방이다. 나는 부모님도 내 방에 들어오는 것을 몹시 싫어하는 편이다. 사실 부모님과 함께 산다는 것도 장성한 자식 입장에서는 이래저래 눈치도 보이고 스트레스 받는 편이지만, 세계적인 불경기 속에서 어찌됐든 집한채 안에 가족끼리라도 같이 살수 있다는 건 정말 축복받은 인생 아니겠는가.

어쨌거나 이런 동거생활 속에서 부모님에게 절대 건드리지 말라고 엄포를 놓는(만일 이게 어겨진다면 정말 사춘기 중학생처럼 땡깡을 치는 일이 벌어지는) 영역이 있는데, 바로 나의 ‘책상’ 이다.

내 책상은 한눈에 봐도 굉장히 무질서하고 더럽기 그지 없다. 아마 어린시절이었다면 이 책상은 또 쥐도새도 모르게 내가 외출한 사이 부모님에 의해 치워져 있었겠지. 하지만 지금은 절대 그런 일을 용납할 수가 없는게, 책상 위의 이 무질서한 배치는 전부 내게 특화된 맞춤이기 때문이다.

책상이 어지러워보이지만 나는 내가 필요한 모든 것을 정확히 단 한동작으로 책상에서 찾아낼 수 있다. 책을 읽고, 또 글을 쓰고, 컴퓨터와 노트를 이용해서 작업을 하고, 또 이번에 찾아낸 자료를 멀리 둘 수 없어 책상 여기저기에 쌓아두고 다시 꺼내보는 일들이 몇 년간 오래 이어지다보니 벌어진 일이다. 지저분해 보이지만 사실 먼지는 손이 자주 닿지 않는 곳에만 조금 쌓여있을 뿐, 사용자의 입장에서는 그닥 더럽지도 않다. 아마 책상 위의 배치가 바뀌면 심란함을 넘어서 거의 패닉에 빠질지도 모른다. 글을 읽고 쓰는 게 직업인 사람인데 작업한 과정과 결과물들 그리고 작업대를 통째 뒤흔든다면 어떻겠는가.

책상은 이렇듯 내 생활과 인생의 결과물로 자연스럽게 맞춰진 맞춤이다. 마치 가죽이 점점 빛이 바래듯.

가죽 얘기를 하니 내가 가지고 있는 가죽 제품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난 4년 전까지는 두툼한 장지갑이나 반으로 접히는 지갑을 가지고 다녔다. 그리고 그전엔 전혀 불편함을 못 느끼던 그 지갑이 점점 현금을 쓰는 일이 없어지고,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각종 카드들을 들고다닐 일이 없어지면서 정말 치워버리고 싶은 것이 되었다. 거기에 지갑은 부피가 크기도 커서 옷에 넣어다니면 옷의 태가 반드시 망가지게 마련이었다. 겨울이면 몰라도 특히 여름날엔 반바지에 티셔츠만 입고 외출하고 싶어도 이놈의 지갑은 바지에 넣으면 불룩 튀어나와서 도저히 처치가 곤란이었다. 그렇다고 들고 다닐수도 없고.

2014년 여름, 나는 동네에 생긴 자그마한 가죽 공방을 찾아갔다. 이런이런 연유로 아주 크기가 작은 카드 지갑을 만들고 싶노라고. 목걸이에 걸거나 손목에 걸 스트랩 같은게 있으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얘기도 했다. 색상은 밝은 갈색으로 했고, 그 지갑은 현재 3년을 넘게 잘 쓰고 있다. 물론 색은 완전히 바래서 짙은 갈색이 되었다. 맞춤으로 만들면서 지갑에 내 이니셜도 넣었기 때문에 애착이 상당하다. 아마 웬만하면 평생 바꿀 일이 없을 것 같기도 하다. 가죽의 색이 바래는 에이징 과정을 함께한다는 것도 매력적이다. 같이 나이를 먹는 친구가 생긴 느낌이라고 하면 알려나 모르겠다.

처음 맞춘 셔츠도 생각난다. 난 체형이 기성복에 전혀 없는 체형이다. 팔은 짧고 두껍고, 어깨는 넓다. 거기에 허리가 터무니없이 얇고(27인치다) 앉은키는 길다(100cm). 성장기에 유도를 했는데 아마 그 영향일 것이다. 운동을 하려면 참 끝까지 했어야 됐는데 하필 하다 말아가지고 안그래도 마른 체형에서 어깨와 앉은키만 길어진 체형이라니. 잘라다 다시 붙일수도 없고. 덕분에 옷도 못입었지만 옷태도 안나기로 아주 주변에서 말들이 자자했다. 옷입는 것만 보다가 사우나에 가서 벗은 몸을 본 친구는 ‘그나마 운동을 해서 몸은 예상외로 좋으니 차라리 벗고 다녀라’ 라는 말까지 했었다.

내 몸에 잘 맞는 기성복을 찾는 노력도 많이 했지만, 항상 허리가 벙벙하게 뜨는 셔츠가 못내 불만이기도 했다. 셔츠는 내 체형에 잘 맞는 기성복이란 게 존재하지가 않았으니. 어느 날 저렴한 가격(기성 셔츠와 비슷)에 맞춤이 가능한 셔츠 전문점들을 몇 군데 알아보고, 그렇게 처음으로 셔츠를 맞춰 보았다. 제대로 내 어깨, 가슴, 허리둘레 등을 체촌한 경험도 새로웠다. 그리고 내가 고른 옷감과 디테일로 셔츠가 만들어진다는 기대감도 재밌었고. 그렇게 맞춘 셔츠는 정말로 몸에 딱 맞았고, ‘나중에 몸이 더 커지거나 좋아져서 체형이 바뀌면 이 셔츠를 못입는 건 아닐까’ 하는 정말 때이른 바보같은 상상도 했었다. 생각보다 사람 체형이 그리 극적으로 바뀌지는 않더라. 어쨌거나 속옷인데다 거의 소모품에 가까운 셔츠건만 그 맞춤 셔츠는 금이야 옥이야 애지중지 입으면서 거의 3년을 넘게 입고 있다. 특별한 날에만 꺼내입는 그 기분은, 그리 고가가 아님에도 나 역시도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은 좋은 기분을 들게 만든다.

맞춤에 대한 마지막이자 가장 최근 기억은 작년 겨울 외할머니와 성수동에 갔던 일이다. 80의 고령인 외할머니는 그때쯤부터 건강에 대한 이야기를 호소하셨다. 걸을 때마다 한쪽발이 아프다는 이야기를 하셨었고, 이래저래 핑계삼아 손자와 같이 쇼핑이나 하고 싶은 생각이셨는지 같이 신발을 사러가자고 했다. 물론 나도 그런 핑계가 있으면 외할머니와 보내는 시간이 생기는 격이니, 겸사겸사 할머니의 발에 잘 맞는 신발이 뭐가 있을까 고민을 했다.

결론은 맞춤 기능성 신발이었다.

고령에 한쪽 다리가 아프신데다가, 이제 추워져서 손발도 자주 차가워진다는 할머니. 여기저기를 알아보다가 성수동에 수제화 장인들이 몰려서 영업하는 거리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할머니와 함께 성수동에서 밥을 먹고, 쭉 가게들을 돌아보며 쇼핑을 하고, 어느 가게에 들러서 할머니의 겨울 부츠를 맞춤으로 진행했다. 작은 가게의 장인은 여성화를 전문으로 오래 만드셨던 분이셨고, 내가 건강을 생각해 기능성을 위주로 고르는 디자인을 할머니는 싫다고 하셨다. 할머니는 장인이 추천하는 약간은 굽이 있는 예쁜 여성신발을 맘에 들어하셨다. 본인이 원하는 이런저런 디테일들까지 추가주문을 하고 계산을 치른 할머니는 가게 안의 신발들을 찬찬히 구경하기 시작했다. 나는 할머니의 신발이 생각보다 굽이 높아 조금 불만이었다. 아무래도 다리가 아프다는 상태였으니까. 거런 내게 장인은 웃으며 말했다.

“아무리 나이가 드셔도 여성분들은 이쁜 걸 제일 좋아하세요.”

그 말이 잊혀지지가 않는다.

할머니의 신발은 맞춤이라 생각보다는 고가였고, 그래서 굳이 내 신발도 맞추고 가라는 할머니의 말을 구두를 신을 일이 없다는 핑계를 대며 거절했다. 대신에 내년 쯤에 와서 구두를 맞출테니 같이 오자고 이야기했던 기억이 난다. 요즘 추워진 날씨에 할머니가 그 구두를 신고 나올 때면, 난 왠지 기분이 좋아진다.

맞춤은 이렇듯 다양한 기억과 추억을 선물한다. 정보화 되고 자동화가 된 시대에, 굳이 사람의 손이 한번이라도 더 들어가는 맞춤을 선택하는 이유는 다름아닌 그 사람의 손길 때문 아닐까 싶다. 그것은 우리가 온기에 따뜻함을 느끼는 것과 같이, 아주 당연스러운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