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부터 유행이나 광풍까지는 아니지만 한국에 새롭게 형성되는 문화 조류가 있다. 바로 ‘레트로 게임’ 산업이다. 사실 이제는 새로운 생산물이 나오거나 AS 가 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산업’이라고 보기는 좀 애매한 부분은 있다. 좌우지간 이 ‘레트로 게임’ 들은 초창기 일부 수집가들이나 매니아들에 의해서만 작은 클럽이 형성되다가, 현재는 어린시절 오락실에서 게임을 즐겼던, 혹은 그 당시에는 경제적 사정으로 바라만 봐야했던 게임기들을 사들이는 키덜트들에 의해 시장이 형성된 상태다. 물론 아직 시장의 규모는 작다.

위키 백과의 정의에 따르면 레트로는 ‘회상, 회고, 추억이라는 뜻의 영어 ‘Retrospect’의 준말로 옛날의 상태로 돌아가거나 과거의 체제, 전통 등을 그리워하여 그것을 본뜨려고 하는 것을 말‘ 하는. 한마디로 복고주의적 양식을 말한다. 레트로 게임은 과거 일본 게임 산업의 황금기 시절 나왔던 닌텐도의 패미콤 시리즈, 새가의 새턴과 메가 드라이브, 등의 게임기들과 그것들을 통해 즐길 수 있는 게임들, 거기에 더해 그 시절의 브라운관 TV를 마련해서 색감과 느낌까지 과거의 느낌을 찾으려는 노력의 일환 등을 통칭한다.

이런 레트로의 세계를 처음 접했던 건 대학교 앞 동네의 카페에서였다. 주인장은 같은 학교의 졸업생이었고, 카페 역시 주인장이 거의 카페 겸 개인 작업실로 쓰던 공간이라 잡다한 작품들과 소품들이 많았다. 아마도 주인장의 취향과 감성이 레트로적인 면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겨울에 어디 고물상에서 얻어온, 주인이 열두번은 바뀌었을 법한 석유난로를 카페 한가운데에서 난방용으로 쓰지를 않나, 드럼통을 잘라서 개조한 장작구이용 통을 가져와 군고구마를 팔지를 않나. 이런 것들이 커피를 마시는 카페라는 공간과 어우러져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물론 나도 꽤 좋아했고.

그런 주인장이 어느날인가는 구둣방 아저씨들이 즐겨 봤을법한 진짜 모니터가 손바닥만한 크기의 브라운관 티비를 가져왔다. 저걸로 남파간첩들 단파 방송이라도 청취하려는 모양인가 싶었지만, 주인장은 어디선가 그 옛날의 새빨간 닌텐도 패미콤을 가져와서(슈퍼 패미콤도 아니고 그냥 패미콤) 티비에 딱 연결을 시켰다. 거기에 후후 불어서 팩까지 장착. 정말 그 옛날 초딩시절 잘 살던 친구 집에서만 보던, 그 옛날의 티비에 그 옛날의 색깔로 도트가 찍혀서 캐릭터들이 돌아다니는 걸 보니 느낌이 색달랐다. 아, 이래서 사람들이 레트로 게임에 빠져드는구나 하는 느낌. 주인장은 옆에는 커피 한잔과 위스키 한잔을 각각 놓고서 자기 여자친구와 슈퍼 마리오(최초의 그 작품 맞다)를 즐기기 시작했다. 카페의 한 가운데에서는 석유 난로가 특유의 기름 냄새를 풍기면서 돌아가고 있고, 외풍이 심한 문가 쪽에는 군고구마를 구우며 장작이 타닥타닥 타고 있었다.

이 모든 광경이 평화롭기 그지 없었다.

그때부터 언젠가 사정이 된다면, 나도 저런 것들을 성취해 얻어보고 싶다는 욕구가 스멀스멀 들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어린시절의 향수를 자극하는 그 소품들의 색깔과 냄새와 온도들이, 너무나도 편안했으니까. 익숙한 것들에 파묻히는 안락함과 즐거움이 그런 것임을 나는 늦게 알았다.

세상은 너무도 빨리 변하고, 익숙한 것들은 익숙해지려는 찰나에 내 곁을 떠나가니 말이다. 오랜만에 마주한 그 익숙함은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이런 욕구들이 나나 소수의 개인들에게만 있는 것인 줄 알았는데 또 그것도 아니었다. 닌텐도는 작년 크리스마스, 그리고 올해 크리스마스 2년에 걸쳐서 실제로 자신들의 그 옛날 명기인 ‘패미콤’ 과 ‘슈퍼 패미콤’의 복각판인 ‘NES Classic’ 과 ‘SFC Classic’을 내놓았다. 물론 그 시절처럼 팩을 장착하는 건 아니고, 디자인도 완전 동일하지만 크기는 조금 작아졌다. 문제는 사람들이 예상 이상으로 이 닌텐도의 신기종(?)에 열광했다는 건데, 현재도 아마존에 들어가보면 물건이 없어서 몸부림치는 사람들의 아우성을 들을 수가 있다. 이베이에서는 심지어 중고가 신품보다 더 높은 가격으로 웃돈을 주고 거래되기까지 한다.

이는 사실 레트로 게임과 그 시절 향수에 대한 소비자들의 욕구가 어느 임계점에서 대기업에 의해 터져나왔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이전까지는 암암리에 시장이 형성되어 그 정보들에 접근하고 그런 수고를 감수할 수 있는 매니아들만이 이 추억의 레트로 감성을 소비할 수 있었다면, 이제는 닌텐도라는 대기업이 자체적으로 나서서 일반 소비자들에게 그것들을 손쉽게 제공한 것이었다. 물론 돈을 더 비싸게 받기는 했지만.

하지만 단종된 기종인데다,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재밌다는 것, 추억을 불러일으킨다는 것 등 수많은 이유들로 사람들은 이 클래식 에디션을 구매했다. 선물 용으로, 소장 용으로, 혹은 나처럼 어린 시절에 직접 즐기지는 못하고 먼 발치에서 구경하며 손가락만 빨았던 기억의 해소를 위해서도 있었다. 현재 가장이 된 그 시절의 어린이들이 아예 집안에 오락실 기계를 DIY로 만들어 놓고 와이프들에게 등짝을 맞았다는 블로그 포스팅은 이제 흔히 볼 수 있는 레퍼토리마저 되었다.

이 레트로 게임에 대한 가장 단적인 헌사는 제주도에 있는 넥슨 컴퓨터 박물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컴퓨터의 역사, 게임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이 거대한 박물관은 직접 그 시절 레트로 게임들을 한데 모아놓고 즐겨볼 수 있는 코너까지 마련되어 있다. 물론 레트로 게임만 있는 건 아니고 최신 기술의 집약인 VR 컨텐츠까지 시간 연대순으로 즐겨볼 수가 있도록 동선이 짜져있다. 나도 친구들과 이곳에 갔다가 정말 헤어나오지 못하는 게임의 늪에서 허우적거렸던 적이 있었다.

재밌었던 것은 같이 갔던 친구들이 나 빼고 3명이 전부 여자였는데, 나보다도 훨씬 좋아했다는 것이었다. 결혼을 앞둔 한 친구는 직원에게 이 옛날 기종을 어디 가면 살 수 있느냐고 집에 꼭 들여놓고 싶다고 물어보기도 했다.

헌데 이런 컨텐츠들이 꼭 ‘추억’만으로 소비되는 것은 아니다. 아까 말했다시피 이런 레트로 게임, 혹은 레트로 문화의 소비의 이면에는 다양한 이유들이 존재한다. 그 중 무시할 수 없는 한가지가 바로 ‘지금 해도 여전히 재밌다’ 라는 것이다. 바로 이게 단순한 추억팔이용 소품과 ‘명기’라 불리는 기기가 되는 차이점이다.

사실 추억만 놓고 보자면 딱지나 고무줄 놀이가 더 추억을 불러 일으킨다. 하지만 딱지나 고무줄 놀이에 사람들이 열광하지는 않는다. 이런 것들의 재현은 그저 한순간의 이벤트일 뿐이다. 우리가 레트로 게임에 열광하는 건 추억도 추억이지만, 여전히 그게 재밌기 때문인 것이다.

굳이 게임의 예로 들 것도 없이 자동차의 예를 들자면, 작년 재작년 동안 자동차 업계에서 가장 떠올랐던 단어는 바로 ‘리스토어’일 것이다. 원래는 단종된 과거의 자동차를 새것처럼 신차 그대로의 모습으로 복각하는 게 리스토어의 원 뜻이지만, 이즈음엔 거의 완전 튜닝에 가깝게 자동차를 복각하면서도 ‘이쁘게’ 만드는 게 트렌드였다.

이 리스토어의 수혜를 받은 게 단종된지도 한참이 된 현대자동차의 ‘갤로퍼’ 였다. 개그맨 배칠수부터 시작해서 길가에 슬금슬금 하나둘씩 보이던 이 갤로퍼 리스토어 차량들은 어느새 인터넷에서도 화제가 되어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이유는 단 하나였는데 ‘이뻐서’ 였다. 실제로 갤로퍼 리스토어 차량을 보면 요즘 자동차들의 디자인에선 볼 수 없는 각지고 단순한 미학에 SUV 특유의 박시함과 든든함, 거기에 요즘 감성으로 복각 된 세련된 색상과 인테리어까지 어우러져서 모두의 눈길을 한몸에 받았다. 내 친했던 형 하나도 차 한 대를 뽑아야 하는데 무심코 보게 된 갤로퍼 리스토어에 눈이 돌아가서 몇 달을 고민했던 적이 있었다. 애초에 경차나 하나 사려고 했던 게 일이 커져서 끙끙 앓던 모습이 기억난다. 그만큼이나 이 갤로퍼 리스토어의 외양은 ‘이뻤다’.

헌데 현재는 조금 다르다. 갤로퍼도 갤로퍼지만 이 리스토어 열풍이 조금은 시들한 모양이다. 왜 그럴까?

많은 이유들이 있겠지만 일단 이 구형 갤로퍼들이 갖고 있는 문제들이 있었다. 말로는 부품이 있다고 하지만 단종된 데다가 이미 나오지 않는 부품들이 너무 많았고, 리스토어 업자들조차도 전국의 폐차장을 돌며 멀쩡한 차량이 있는지 부품이 있는지 확인하며 다니는 수준이었다. 거기다가 차가 있어도 국산 차량의 고질적인 문제인 ‘녹’이 발목을 잡았다. 차체의 녹을 갈아내고 보강하고 방청작업을 하고,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너무나도 수고스러웠다. 물론 소비자는 돈만 내면 그만이긴 해서 이런 수고로움은 업자의 몫이었기 때문에 넘어갈 수 있었다.

디자인만 놓고 보면 현재의 기준으로도 잘 뽑힌 미쓰비시 파제로 1세대의 카피라서 외부나 내부의 복각은 정말 이쁘게 수준급으로 잘 뽑혀나왔다. 그러나 문제는 현대자동차가 일본 자동차의 내구성까지 카피한 건 아니었던 데서 발생했다. 아무래도 옛날 자동차다 보니 고속도로에서 속도를 낼 수도 없고, 엔진은 현재의 유로6 기준을 당연히 충족시키지 못하게 매연을 뿜어내고 다니는 데다가, 그렇다고 엔진까지 갈아내자니 이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아무리 복각을 했어도 옛날차는 옛날차라 승차감이나 편의사항에서는 요즘 자동차와 비교가 불가능했으니, 실제로 사놓고 몇 번 타 보고는 중고 거래로 나오는 리스토어 차량들의 수도 상당했다.

거기다가 리스토어 업체라는 모 업체가 벌이는 여러 행각들이 이 차량 자체나 리스토어라는 말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기도 했다.

오히려 이 리스토어 열풍이 한번 휩쓸고 지나간 뒤에 남은 것은 ‘차는 역시 일본 차가 명차다’ 라는 명제만 재확인 한 것이었다. 갤로퍼 조차도 미쓰비시 파제로의 카피차량인데다가, 리스토어 업자들이 간혹 비교하며 올리는 일본 차량의 리스토어 작업일지는 연식이 비슷한 차량인데도 갤로퍼에 비해 손댈 것이 없을 정도로 녹이나 부품의 훼손이 적었다. 일부 사람들은 갤로퍼를 복원해서 파제로 마크를 달고 다닐 정도였다. 이런 반사작용에 힘입어서 정말 명차라고 할 만한 국산 중고차들 특히 쌍용의 체어맨이나, 삼성의 SM5 같은 차들이 눈길을 받기도 했다.

복고, 레트로의 열풍은 몇 년을 주기로 각종 산업에서 꾸준히 유행을 형성한다. 응답하라 시리즈처럼 그것은 예술 계통 산업에서도 나타나고, 패션에서는 매년 유행하는 레트로가 다를 정도다. 그러나 여전히 아까 말한 명제는 유효하다. 레트로가 단순한 추억팔이로 그치지 않으려면 그것은 여전히 현재에도 가치있다는 것을 증명해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