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 번쯤

제일 최근 것을 말해보자면, 4일 전, 토요일이었다. 로또 번호 3개를 적중(!)시켜서 그래도 겨우 본전은 건진 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한 줄 모르고 또 그런 생각을 해버렸다. “아, 잠깐 일주일 정도만 미래에 다녀오면 안 될까? 다른 허튼 짓 안 하고, 딱 다음 주 로또 번호만 메모해오는 걸로 하고.” 참으로 간사한 나란 인간.

굳이 로또 당첨 때문이 아니라도, 누구나 한 번쯤 미래나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꿈꾸는 때가 있다. 10대 땐 얼른 어른이 되길 바라고, 이제 30대가 되니 한 10년만 되돌아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흘러가버린 내 나이를 되돌려 놓을 수만 있다면 군대도 기꺼이 한 번 더 가겠노라, 비장한 각오까지 다지면서. (그런데, 이 각오는 매번 손바닥 뒤집듯 번복하게 된다.)

심지어 한때는, 자려고 누워서 유튜브에서 시간 여행, 4차원, 양자역학 같은 주제의 영상을 찾아보느라 밤을 새기도 했다. 진짜 시간 여행이 가능할 거라 생각했다기보다는, 뼛속까지 문과인 내게도 미지의 과학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뭐랄까, 약간, 어릴 때 읽었던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이야기’, ‘세상에서 제일 미스터리한 이야기’ 같은 시리즈물을 보는 기분이랄까. 특히 4차원이나 양자역학 같은 건, 과학이지만 철학적으로 고민해볼 여지도 있었다. 아무튼, ‘카르페 디엠’ 이라는 말이 진부하게 느껴질 정도인 이런 시대에도, 사람은 현재에 충실하긴 글러먹은 존재인가보다.

시간 여행자는 없다.

그 중에서도 시간 여행에 관한 영상은, 그 절묘한 인상착의나 타이밍 때문에 진위를 알기 전까지는 분명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마력이 있었다. 몇 가지 대표적인 사례만 보자면,

  1. 1928년, 찰리 채플린의 영화 ‘서커스’에서 한 노부인이 휴대폰을 사용하고 있는 영상
    -> 당시의 보청기 격인 단순 소리 증폭기를 귀에 대고 걷는 모습이었다.
  2. 스웨덴의 30대 남성이 미래의 자신과 다정하게 인사를 나누고, 팔뚝의 문신까지 보여주는 영상
    -> AMF라는 스웨덴 연금 회사의 바이럴 마케팅 영상이었다.
  3. 1940년 11월, 홍수로 파손되었던 사우스 포크 브릿지 재건 현장에서 포착된, 지나치게 세련된(?) 남성이 등장하는 영상. 선글라스, 헤어스타일, 티셔츠에 후디 자켓까지. 지금 봐도 이질감이 없다고…
    -> 당시 최신 유행했던 아이템과 헤어스타일의 남성이었다. 그러니까 그냥 그 시대의 세련된 패셔니스타였던 것.

이 외에도 다수의 ‘시간 여행자’ 영상들은 오해였거나, 조작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럼 그렇지, 싶다가도 허무했다. 아니, 한 번쯤은, 한 명쯤은, 시간 여행 좀 해보면 안 되냐? 인과 관계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삶에, 흥미롭고 신비로운 일이 좀 더해지면 안 되는 거냐고.

불현듯 떠오르는 시간 여행자의 감각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 과거나 미래를 오간 적 있는 시간 여행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때가 있다. 물론 억지와 추측으로 난무한 생각이지만, 뭐랄까, 그, 어떤, ‘시간 여행자의 감각’ 이 불현듯 떠오르곤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데자뷰 현상 같은 것. 분명 처음인데 이미 경험해본 듯한 느낌, 순간적인 기시감. 물론 데자뷰에 대해서는, 우리 무의식 중에 잠재되어 있던 기억의 편린이 순간적으로 되살아난 것이라는 학설, 진짜로 예지몽 비슷한 걸 꾼 경우(이 경우도 프로이트 식으로 보자면, 무의식의 무대인 꿈이 원인이니 첫 번째 학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심지어는 그냥 뇌의 화학적 작용일 뿐이라는 설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설명되고는 있다. 그런데 나는 그냥 그걸, ‘시간 여행자의 감각’ 이라고 불러보는 거다. 문과생의 치기인지, 글 쓰는 자의 허세인지는 몰라도.

현재를 사랑하게 만드는 감각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이 ‘시간 여행자의 감각’이 오히려 현재를 사랑하게 만드는 때가 있다. 그건 바로 ‘아, 이 순간이 머지않아 추억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때다. 현재 무엇인가를 경험하면서, 동시에 어느 미래의 내가 지금 현재의 내 상황을 추억하는 상황. 시간 여행이면서, 현재와 미래라는 시간을 동시에 겪는 느낌. 내 인생에도 그런 장면이 많다. 마치 반투명 유리창을 눈앞에 둔 것처럼 비가 억수 같이 쏟아지던 경주역, 서울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던 KTX에서 입석으로 탑승해 한 량과 다음 량 사이의 비좁은 복도에서 음성 파일을 정리하던 기억, 처음 광안리에 캠핑의자를 들고 가서 혼자 책을 읽고 맥주를 마시던 가을…

최근에도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글을 쓰는 지금 기준으로 불과 하루 전! 어제였다. 새로운 콘텐츠를 기획하고 준비하는 중에 수동 타자기가 필요해서 중고로 clover 707DLX 한글 타자기를 구입하게 되었다. 아직 차가 없는 탓에 직거래를 위해 왕복 3시간 거리를 대중교통으로 이동해야 했다. 그것만으로도 꽤 번거로운 일이었는데, 게다가 이동 수단 중 약 50분 동안의 버스 이용을 피할 수 없었다. 나는 지독한 버스 멀미라 수십 계단을 걷더라도 지하철을 이용하는 편인데… 그리고 지금은 돈도 쪼들리는데… 판매자와 문자를 주고받으면서 짧고도 강렬한 고민을 한 끝에, 나는 직접 정관까지 찾아갔다.

머리가 깨질 것 같은 멀미를 헤치고, 정관에서 마음에 쏙 드는 clover 707DLX 한글 타자기를 품에 안고 다시 정류장에서 1010번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문득 그런 느낌이 불쑥 찾아왔다. ‘아! 당장 몇 개월 뒤에, 이 순간이 참 소중한 추억이 되겠구나. 이 타자기로 콘텐츠를 만들면서, 정겨운 타자기 소리를 들으면서, 고생고생하며 중고로 이 타자기를 구입한 오늘을 추억하겠구나.’ 미래의 내가 현재의 나를 추억하면서, 나는 멀미 지옥 같을 버스를 기다리면서도 행복해졌다. 아담하고 묵직한 타자기를 품에 꼭 품고서, 현재를 사랑하게 됐다. 전혀 과학적이지는 않지만, 나는 문득 시간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 들었다. 몇 개월 뒤의 내가 느낄 감정을, ‘지금’ 아주 생생하게 느끼면서 나는 역설적으로 미래를 궁금해 하기보다 지금 현재를 사랑하게 됐다. 이런 시간 여행이라면 얼마든지 환영이다.

하지만 이번 주 토요일에도 나는, 일주일만 미래에 다녀오고 싶다는 ‘시간 여행자의 헛된 망상’ 을 또 할 것이다. 분명 또 그러고 있을 내가 그려진다. 아, 이것도 시간 여행인가? ‘미래의 나’여, 조금만 덜 어리석을 수는 없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