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도 잘해요.

막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만 해도, 아침마다 ‘혼자서도 잘해요’ 라는 어린이 프로그램을 애청했다. ‘삐약이’의 하이 톤 목소리는 잠이 덜 깬 상태에서도 귀에 쏙쏙 박혔다. 보통의 유아를 대상으로 하는 노래들이 그렇듯, ‘혼자서도 잘해요’의 주제곡도 입에 착착 붙었다. 어찌나 착착 붙었는지, 도입부는 아직까지도 무의식 중에 흥얼거릴 때가 있다. “거야, 거야, 잘할 거야. / 혼자서도 잘할 거야~…”

식사, 배변, 세면, 옷 갈아입기, 심부름 등등, 더 이상 부모에게 응석부리지 않고 스스로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그런 의도의 노래였겠지만 당시 겨우 6, 7살이었던 내가 그런 뜻을 헤아릴 수 있었겠는가. 그저, ‘뭐든 혼자서 할 줄 아는 것이 멋진 것’이라는 막연한 환상을 갖게 되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응당 부모에게 도움을 청해야 할 일들도 혼자 해내려다 일을 내고야 마는 경우도 많았다. 차가운 물에 면과 스프를 부어 넣고 10분 넘게 기다리면서 ‘왜 라면 봉투엔 5분이라고 적혀있는데, 아직도 라면은 완성되지 않은 것인가?’ 답답해하기(10살 때), 색종이를 별모양으로 자르려다가 손가락을 깊게 베이기(8살 때, 심지어 부엌 가위였다.), TV에서 오징어 먹물도 먹을 수 있다고 하길래, 집에 있던 서예용 먹물을 마셔보기.(9살 때)…

혼자서도 잘하랄 땐 언제고

천방지축, 좌충우돌, 하지만 그런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기어코 ‘혼자서도 잘하고 싶었던’ 바로 그 마음이 내가 어엿한 한 사람으로 자라는데 크게 기여했을 것이다. 더 자라서 학교에 가서는 이른바 ‘사회화’라는 것을 위해 ‘함께 하는 일’의 의미를 배우기도 했으나, 그 순서를 되새겨보면 역시 ‘혼자 할 줄 알고 나서야, 함께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선 내가 홀로 설 수 있어야, 쓰러지는 것들을 떠받치기도 하고 때때로 쓰러졌다가도 일어설 줄 아는 법이니까.

그런데 얼마 전부터는 ‘혼자서도 잘하는 일’을 특이한 것처럼 말하는 여론이 이어져왔다. ‘혼밥’, ‘혼술’ – 사실 지금은 그리 낯설지 않은 단어지만, 이런 신조어가 생긴다는 사실 자체가 ‘혼자서도 잘하는 일’에 대한 이질감을 드러낸다. 그런데 이 ‘혼족’들을 칭하는 구체적인 행위들을 살펴보면, 아이러니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의 행위는 대부분 내가 어릴 적 애청했던 ‘혼자서도 잘해요’에서 ‘혼자서 할 줄 알아야 한다고 권장하고 교육하던 것들’이라는 점이다. 혼자서 뭔갈 먹고, 혼자서 어딘갈 돌아다니는 것. 이런 거, 부모한테 응석부리지 말라고 그렇게 ‘혼자서도 잘해요’ 같은 어린이 프로그램 만든 거 아닌가. 그렇게 혼자서도 잘해야 한다고 할 땐 언제고, 다 커서 혼자 밥 먹고, 술 마시고, 혼자 여행하고, 영화보고 하려니까 이상하게 쳐다보는 건 뭐냐고 정말.

‘혼자’도 습관이라

사람마다 성격이나 자라온 환경이 달라서, ‘혼자’보다 ‘같이’가 편한 사람들도 있다. 그 사람들을 이상하게 생각하진 않는다. 나한테 그런 사람들을 이상하게 생각하고 판단할 자격도 없고. 다만, 혼자서 뭘 잘 하는 사람들 또한 이상하게 볼 이유가 전혀 없다. 나 같은 경우는 ‘장남 콤플렉스’를 겪으며 자란데다가, 원체 성향이 내 시간과 일정을 혼자 콘트롤하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라 혼자서도 잘 하는 편이다. 술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혼술을 할 일은 거의 없지만, 한다 해도 별 상관은 없을 것 같다. 혼밥은 늘 해오던 것이고, 여자 친구가 있지만 가끔은 혼자서 영화관 가는 걸 좋아한다. 한 달 동안 혼자서 무전여행을 했었지만, 혼자라서 외롭다거나 불편한 것은 별로 없었다. 그래서, ‘혼족’이라는 신조어가 생겼을 때, 약간 당황스러웠다. 내가 뭐 어때서, 나만 별종이야? 내가 좀 문제 있는 건가?

그런데 요즘 나는 이 ‘혼자’도 습관이라는 생각을 한다. 오랜 연애의 결실(?)로 요즘은 일주일에 7일은 여자 친구와 거의 모든 사생활을 공유하며 지낸다. 그러다 가끔 일이 있어 혼자 밥을 먹거나, 늘 같이 가던 서점에 혼자 가거나, 늘 같이 걷던 거리를 혼자 걸으면, 이상하게 헛헛한 거다. 내 나이 서른. 그 중 10년을 한 여자와 연애했으니, 내 인생 1/3 정도면 ‘혼자’가 편하던 내 성향도 바뀔 만한 건가? 아니, 사실은 성향이 아니라 늘 혼자 해오던 그 ‘습관’이, 이제 늘 함께하는 일상의 ‘습관’으로 바뀌어버린 건가? 때문에 요즘의 나는 종종 낯선 외로움을 느끼곤 한다.

‘혼자‘일 수 있다면

그리고 그런 낯선 외로움은, 종종 낯선 두려움이 되기도 한다. 더 이상 혼자서 잘할 수 없을 것만 같다는 두려움. 사랑하던 사람이 떠나면 어떡하지, 라는 두려움. 이렇게 편안하고 행복하고 아늑한데.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당연히 느낄 법한 감정일 수도 있지만, 그 정도가 심해진다면 이거야말로 ‘집착’이 되어버리는 거니까. 그래서 사람과 사람 사이, ‘혼자’와 ‘같이’의 사이, 그 사이 어딘가에서 다시 적당한 지점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예전엔 허풍으로라도, “내가 다 해줄게, 내가 다 해낼게, 내 곁에만 있으면 돼.”라는 말만 했는데, 요즘은 일부러 “같이 할 수도 있지만, 이건 네가 혼자해보는 게 더 좋을 것 같다.” 라든가, “서로가 없는 시간에도 혼자 충분히 즐기고 채울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을 것 같다. 하고 싶은 게 있다면 뭐든 해봐.” 라는 말을 많이 하는 편이다. 그리고 이 말은, 여자 친구에게 하는 말이지만, ‘혼자’가 두려워지려는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가을께부터 꾸준히 듣는 노래 중에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가 있다. 원곡도 좋지만, 한동근과 최효인이 함께 부른 버전도 굉장히 좋다. 그 노래의 가사 중에 “사랑은 비극이어라 / 그대는 내가 아니다. /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라는 부분이 있다. 요즘은 이 가사가 좀 다르게 읽힌다. 노래 속 상황처럼 이별 후라면 ‘그대는 내가 아닌 것’이 비극이겠지만, 연애든 결혼이든 아직 헤어지지 않았다면, 그것은 비극이나 희극이 아니라 지극히 당연한 사실이자 하루 빨리 받아들여야할 사실이다. 우리는 아무리 사랑해도, 아무리 늑골이 으스러질 것처럼 껴안아도, 아무리 같이 있어도 서로가 될 수 없다. 그것을 인정하고, 서로의 ‘혼자 됨’을 존중할 때 비로소 아무도 다치지 않고 ‘같이’ 있을 수 있다.

‘혼족’들이여! ‘사회성 부족’, ‘아웃사이더’, 심지어는 ‘찐따’ 같은, 그대들을 폄훼하는 말들에 부질없이 에너지를 쏟지 말지어다. 온전히 ‘혼자’일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다정히 ‘같이’있을 수 있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