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뛰고 있다.

 

삶은 여러것에 비유된다. 어떤 이는 삶은 영화라고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삶은 여행이라고 한다. 스포츠에 비유되기도 하는데, 그것은 각 종목별로 비유되는 것이 흥미롭다. 예를들어, 달리기나 마라톤이 대표적이다. 또한 골프나 역도 등도 마찬가지. 스포츠는 아무래도 힘든 훈련과 경험을 하고 난 뒤에 오는 성취감이 있기 때문에 우리네 인생과 자주 비유되어 회자되는 것 아닐까 한다.

그런데 아쉽게오 우리 삶은 ‘걷는 것’이나 ‘쉬는 것’에 비유되지는 않는다. 어쩌면 한국인의 특성일 수도 있겠다. 전쟁 이후에 먹고사니즘에 혈안이 되어 ‘생존’의 시대를 살았던 그 때의 기억 때문일까. 좀처럼 우리는 ‘걷는 법’을 잘 모른다. 그저 앞만 보고 달려왔다고 하는 것이 옳겠다. 그리고 지금도 달리고 있고 앞으로도 달려야 할 것이다. 잠시 휴식을 하거나 걸으면 이내 남들은 앞서 나간다는 강박관념을 느끼게 된다. 그것은 누가 알려줘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누가 지시를 하거나 뭐라고 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재밌는 것은 항상 달리고 있는 한국인이 참 불쌍하다고 스스로 판단하면서도, 우리 자신이 달리고 있지 않으면 불안하다는 생각을 스스로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편하다는 생각이 들 때, 곧바로 찾아오는 불안감

 

사람은 편안함을 추구한다. 몸과 마음이 편안할 때 행복한 기분이 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나에게 행복한 순간이 언제냐라고 묻는 다면, 아주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당장 떠오르는 기억은 추운 겨울날 전기장판 위에서 뒹굴거리며 고구마를 까먹으며 영화를 봤던 기억이다. 그리 거대하지도 않고 특별한 사건은 아니었지만, 아마도 아주 편한 자세로 세상 가장 편한 우리집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던 그 경험이 나를 편안하게 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그건 한 순간일 뿐. 아마 그러한 생활을 하루 이상하게 되면 아마도 곧장 불안감이 엄습했을 것이다. ‘내가 이러고 살아도 되나?’, ‘내가 이럴 때인가?’라는 질문과 그러면 안될 것 같다는 스스로에 대한 경고가 급습할 것이 뻔하다. 더불어, 남들은 그리고 내 경쟁자는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을 것인지, 갑자기 세상에서 도태되어 가는 것 같고 뒤처진다는 암울한 생각으로 가득찰 것이다. 우리네가 그렇다.

 

계속해서 달려온 것에 대한 집단 무의식, 그리고 그 관성의 법칙

 

유명한 심리학자 칼 구스타프 융은 ‘집단 무의식’이라는 이론을 정립하고 주장했다. 말 그대로, 개개인의 심리 뿐만 아니라 조상으로부터 내려오는 특정한 ‘무의식’이 있다는 것. 이것은 문화로도 내려오고 각 민족의 정서로도 뿌리깊게 박혀있다.

우리 조상은 어떻게 살았는가. 삼면이 바다로 둘러 쌓인 특성상 강대국의 교두보로서 탐닉이 되어 왔고, 실제로 수많은 침략을 받아왔다. 먼저 싸움을 걸기보단 막아내기에 급급한 상황. 모든 국민은 힘을 합쳐 싸워 내야 했고 그래서 공동체 문화가 발달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어려울 때마다 아주 무섭게 힘을 합쳐 싸우거나 무언가를 지켜내는 모습을 쉬이 볼 수 있다. 독립운동도 그렇고, IMF 때 개인의 금을 모아 나라를 살리거나, 태안 기름 유출 사건 때는 너나 할 것 없이 바다로 나가 돌 하나하나를 닦아 기적을 만들었다. 최근엔 비상식과 적폐에 대항하여 촛불 혁명을 이뤄내기도 했다. 나라가 힘들때마다 그렇게 온 국민이 달렸다. 그래서 전쟁 이후에 다쓰러져가는 황무지에서 한강의 기적을 이뤄내기도 한 저력은 세계로부터 대단하다는 찬사를 받는다. 인정할 건 인정하자. 정말 잘 한 일이다.

물론, 명이 있으면 암도 있다. 앞만보고 달려온 우리에겐 지쳐도 지친다 말 못하고, 다른 사람이 뛰니까 나도 뛰어야 한다는 무언의 압력이 있다. 공동체 문화의 장점은 힘을 합쳐 무언가를 이뤄낼 수 있다는 저력이지만, 단점은 개개인의 개성을 억압하거나 다른 사람의 눈치/ 또는 다른 사람에 왈가왈부 하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최근엔 이러한 우리네 특성에 대해 자정의 목소리가 많이 나오지만, 어째 피를 속일 수 있으랴. 즉, 우리가 그렇게 살아온 그 집단 무의식은 단숨에 바뀔리 만무하다. 즉, 지금까지 달려온 그 속도가 당장 몇 세대만에 멈추지 못할 정도의 관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을 그리 부정만 할 필요도 없다. 세상엔 완벽한 문화나 국민성은 없다. 장점과 단점이 공존하는 것은 인정해야 할 부분이며,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개선하는 것이 무조건적인 비판만 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 그리고 그렇게 바꿔가야 하는 것이 현재를 위한 우리와 앞으로 다가올 세대들을 위해 우리의 몫이자 사명이다.

 

잘 달려야 한다. 그것을 만들어 가는 것이 우리의 몫이다.

 

그러니, 우리는 계속 달려야 한다. 달려왔던 민족이고 달려가야 할 민족이다. 땅덩이로 치면 손에 꼽을 정도로 작은 우리지만 우리의 저력은 세계가 알아차린다. 그 장점은 밀고 나가야 한다. 그것을 가지고 달려 나가야 한다. 단, 잘 달려야 한다. 지금까지는 무조건적으로 달렸다면 이제는 ‘잘’. 잘 달린다는 것은 무엇일까? 실제로 우리가 계속 달려야 하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할지 생각해보자.

 

첫째, 준비 운동을 철저히 해야 한다.

모든 운동은 달리기전이 중요하다. 자신이 얼마나 달릴 수 있는지도 가늠 해야 하고,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준비 운동을 해야 한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몸을 풀어야 한다. 자만심은 절대 금물. 왕년을 생각하며 앞뒤없이 덤볐다간 낭패다. 예전엔 아주 오랜만에 전력질주를 하려다 넘어진 적이 있다. 넘어진 이유가 우스우면서도 안쓰럽다. 내 마음은 이정도 속도로 달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다리는 그 속도를 못 따라간 것. 결국, 상체가 하체보다 앞으로 나가면서 앞으로 고꾸라진 것이다. 물론, 준비 운동이 없이 달려나간 이유도 컸다.

 

둘째, 휴식을 잘 취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달려오긴 했는데 쉬는 법을 몰랐다. 기성 세대는 더 그렇다. 쉬는 것은 사치로 여기거나, 심하게는 죄의식을 가지기도 했다. 그저 열심히 하는 것이 미덕이었고, 경제와 문화 그리고 사회는 성장해갔다. 그러니 쉼 없이 달리는 것이 당연한 시대였고, 성장해가는 열매를 따먹으니 지칠줄도 몰랐다. 그 열매는 달콤했고 쉬지 않는 것을 보상하고도 남았을 정도니까.

하지만 세상이 바뀌었다. 기성 세대가 일구어 놓은 부(富)는 고착화 되어가고, 성장은 정체일로다. 하지만 기성 세대는 현재 세대에게 똑같이 쉬지 말고 달릴 것을 요구한다. 너희들이 달리고 있지 않으니 성장이 더딘것 아니냐는 의심까지 하고 만다. 물론, 현재 세대가 (기성 세대보다는) 부유한 시간을 타고나 덜 배고팠던 것은 사실. 그리고 인내력과 끈기가 부족한 부분도 일면 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뀐 것은 인정해야 한다. 즉, 잘 달리기 위해서는 잘 쉬어야 한다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 달리지 않으려 하는 것도 문제 일 수 있겠지만, 쉬지 않거나 그 방법을 모르는 것은 더 큰 문제다. 잘 달리고 멀리 가기 위해서는, 잘 쉬어야 한다.

 

셋째, 장비를 잘 챙겨야 한다.

준비 운동을 열심히 하고, 휴식을 잘 취하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자신에게 잘 맞는 장비를 챙기는 것도 중요하다. 발에 편안한 신발. 통풍이 잘 되고 충격흡수가 잘 되는 그것을 가져야 더 건강하게 달릴 수 있다. 발에 맞지 않아 뒷꿈치가 까지고 발바닥에 물집이 잡힌다면 어떨까? 얼마 가지 못해 쓰러질 것이 뻔하다.

신발뿐만 아니라 옷도 그렇다. 날씨나 습도, 기온에 맞춘 적절한 옷차림이어야 한다. 한겨울에 반바지에 민소매를 입거나, 한 여름에 스포츠 레깅스나 구스 조끼를 입는 것은 판단착오다. 자신에게 맞는 사이즈, 무게, 스타일 등. 이것은 우리가 가져야 할 덕목과 실력 그리고 준비성을 대변한다.

 

넷째, 이어 달릴줄도 알아야 한다.

앞서 이야기 했듯이 우리는 공동체라는 인식에 묶여 있어 너가 뛰면 나도 뛰고, 나도 뛰면 너도 뛰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뛰는데 너가 안뛰면 괘씸하다고 생각하고, 너는 뛰지만 나는 좀 쉬어도 된다는 이중성이 우리의 발목을 잡는다. 한국인이 대단한 건 공동체로 똘똘 뭉칠 수 있는 정신과 실행력이 있다는 것이지만, 좋지 않은 점은 공동체에 골몰하다보니 ‘내분’이 일어날 일이 다분하다는 것이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그래서 난 ‘이어 달리기’를 제안한다. 이것이 진정한 협동이 아닐까 한다. 목표를 향해 달려 나가는 것이 어찌 우르르 다 가야만 하는 일일까. 한국 대표로서 공동체 내에서 집단과 개인을 나누고, 뜻이 맞는 사람끼리 이어 달리기 하면 목표는 좀 더 쉽고 편하게 그러나 의미있게 달성 될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도 선진국처럼 2~3주 휴가를 가자고 외친다. 하지만 당장 내 후배가, ‘2~3주 휴가 다녀올게요’라고 하면 당신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그런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은 한국이라는 사회에서 당신은 마음이 편치 않거나 그자리에서 바로 화를 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받아들이고 노력해야 할 일들이다. 잘 쉬는 것도 중요하고, 이어달리기도 중요하다. 그러한 마음 자세가 되어야 우리는 서로 협동하고 힘을 모으면서 달릴 수 있다.

 

다섯째, 왜 달리고 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 열심히 달려왔고, 앞으로도 달려야 한다는 것은 알겠는데 그렇다면 무엇을 위해 왜 달려야 하는지를 곱씹어봐야 한다. 즉, 열심히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왜 무엇 때문에 하는지를 아는 것. ‘목적’을 명확히 해야 한다. 우리는 흔히들 ‘목표’라는 것에 혈안이 되어 있다. 목표를 세우고 달성하고. 하지만 그 목표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에 대해서는 놀랍게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명확하지 않은 ‘목적(방향)’을 위로하기 위해 ‘목표’만 과도하게 세우고 스스로를 괴롭히는 모양새다. 왜 우리는 그토록 달려왔는지,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는 왜 무엇을 위해 달려야 하는지 분명히 생각해봐야 한다. 이것은 사회적으로는 물론, 우리 개인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달려야 한다. 그런 민족이다.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자. 그래서 우리는 목적과 방향을 좀 더 현명하게 바라봐야 한다.

 

지금까지 잘 달려 왔다. 앞으로도 잘 달려야 한다.

 

한 해가 저물어 간다. 잘 달려왔다 우리. 스스로에게 그렇다고 격려 해보자. 그리고 우리는 앞으로도 달릴 것이다. 그것도 ‘잘’. 위에서 언급한 것들을 곱씹으며 다시 한 번 더 자세를 고쳐보자. 달리기 전에 준비하고, 달리다가 잘 쉬고, 장비를 잘 챙기고, 때로는 이어(같이) 달리고, 그리고 무엇보다 무엇을 위해 왜/ 어디로 달리고 있는지를 아는 것.

 

스포츠는 몸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머리로, 가슴으로, 정서로, 관계로, 마음가짐으로 한다는 것을 돌이켜보면 결국 ‘인생’이란 말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