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의 기억

순수 문학을 한다거나, 문단에 등단을 한 것은 아니지만, 나 또한 글 쓰는 사람으로서 표절은 가장 치욕적이고도 조심스러운 일인 것만은 분명하다. 내 마음과 머리에서 만들어지는 것들이 그리 대단치 못해서 간혹 다른 매체에서 우연히 비슷한 표현, 발상을 읽게 되면 섬뜩하면서도 속이 쓰렸다. 나보다 먼저 적힌 글일 때는, ‘왜 나는 겨우 다른 사람도 생각해낼 만한 문장으로 지레 들떴는가.’ 자책했고, 내가 먼저 적은 글이지만 다른 이의 글이 대중에게 공표되어버린 경우에는 ‘왜 나는 이 사람보다 먼저 유명(?!)해지지 못해서 내 문장을 내 문장이라 부르지도 못하는가.’ 하며 억울해했다.

그런데, 문득 내게도 표절의 기억이 있다는 것이 떠올랐다. 그것도 아무 명백하게 의도된 표절, 심지어 그 표절로 인해 수 년 동안의 영광(?)을 누리면서도 입을 꾹 닫았고, 표절에 대해 어느 누구에게도 사과하지 않았던, 파렴치한 기억이.

비겁한 분실

때는 내가 8살 무렵, 그러니까 아직 ‘국민 학교’가 ‘초등학교’로 바뀌기 전이었다. 어릴 때부터 전래동화보다 동시집 읽는 걸 좋아했던 덕에 소박하고 가난한 우리 집안 살림에도 자그마한 책장에는 동시집이 몇 권씩 꽂혀 있었다. 어느 날, 학교에서 숙제로 일기 대신 동시를 써오라고 했고, 나는 내가 잘 읽던 동시집의 시 중 ‘솔방울’에 대한 시를 베껴 적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표절’ 이라는 무거운 죄의식은 없었다. (‘표절’이란 단어 자체를 모를 때이기도 했고.) 그저 손쉽게 숙제를 때워보자는 정도였는데, 다음 날 담임 선생님이 깜짝 놀라버리신 거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엔 SNS는커녕 PC도 지금처럼 대중화되지 않았으니, 일일이 동시집을 뒤져보지 않는 이상 표절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고, 다른 친구들의 숙제에 비해 내 숙제가 월등히 뛰어났으니까. 그건 내가 쓴 게 아니라, 동시 작가가 쓴 시였으니까.

아무튼, 선생님에게 극찬을 들었고 그때까지도 죄의식은 전혀 없었다. 하교해서는 엄마에게 자랑까지 해댔으니까. 그런데 문제는 그 때부터였다. 이모가 넷, 외삼촌이 둘인데다가 첫 외조카인 덕에 나는 엄청난 사랑을 받고 있었고, 그런 외조카가 엄청난 동시를 썼으니 다들 가만히 있질 않았다. 그 중에서도 그림을 잘 그리는 셋째 이모는, 굳이 내가 휘갈겨 ‘베껴 쓴’ 그 동시로 시화를 그려주겠다는 거다. 그림과 시를 귀엽게 그리고, 코팅까지 해서 내 방문에다 걸어두게 되었는데, 아무리 ‘표절’ 이란 단어를 모르던 때라 해도 그때부턴 찝찝한 마음을 피할 수가 없었다.

엄마는 친척이며, 이웃 주민이며 집에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빠짐없이 그 시화를 보여주면서 우리 아들이 (베껴) 쓴 동시라며 자랑했고, 그럴 때마다 내 죄의식은 눈덩이처럼 커져갔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 이사를 가게 되었을 때는, ‘제발 이사하면서 잃어버리면 좋겠다.’며 기도를 드린 기억도 있다. 차마 내 손으로 가져다버리지도 못할 만큼 내 죄의식은 컸다. 특히 엄마의 자랑, 주변 어른들의 칭찬, 그 속에서 웃고 서있던 내 모습들은 차라리 괴로움이었다. 다행히 이후로 한 번 더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그 시화는 근 10년 만에 어디론가 사라졌다. 참, 얼마나 다행스러운 분실이었는지. 나는 아무에게도 고백하지 않고, 사과하지 않고, 그렇게 비겁하게, 내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 표절의 기억은 분실됐다.

신도리코의 오욕

2015년,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소설가 신경숙의 표절 논란이 뜨거웠던 적이 있었다. 처음 문제를 제기했던 것은 또다른 소설가 이응준. 그는 한 매체에 ‘우상의 어둠, 문학의 타락‘ 이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하면서, 신경숙의 단편 소설 ’전설‘ 의 내용 중 일부 문장들이 일본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의 문장들을 표절했다며 폭로했다.

「”두 사람 다 건강한 육체의 주인들이었다. 그들의 밤은 격렬하였다. 남자는 바깥에서 돌아와 흙먼지 묻은 얼굴을 씻다가도 뭔가를 안타까워하며 서둘러 여자를 쓰러뜨리는 일이 매번이었다. 첫날밤을 가진 뒤 두 달 남짓, 여자는 벌써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다. 여자의 청일한 아름다움 속으로 관능은 향기롭고 풍요롭게 배어들었다. 그 무르익음은 노래를 부르는 여자의 목소리 속으로도 기름지게 스며들어 이젠 여자가 노래를 부르는 게 아니라 노래가 여자에게 빨려오는 듯했다. 여자의 변화를 가장 기뻐한 건 물론 남자였다.”」 – 신경숙 ‘전설’ 中

「”두 사람 다 실로 건강한 젊은 육체의 소유자였던 탓으로 그들의 밤은 격렬했다. 밤뿐만 아니라 훈련을 마치고 흙먼지투성이의 군복을 벗는 동안마저 안타까와하면서 집에 오자마자 아내를 그 자리에 쓰러뜨리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레이코도 잘 응했다. 첫날밤을 지낸 지 한 달이 넘었을까 말까 할 때 벌써 레이코는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고, 중위도 그런 레이코의 변화를 기뻐하였다.”」 – 미시마 유키오 ‘금각사, 우국, 연회는 끝나고’ 233쪽. 김후란 옮김

신경숙은 물론이고, 출판사 창비 또한 표절을 부인하며 되려 이응준을 비난했지만, 위 내용을 읽어보면 문학을 모르는 이라도 대번에 알 수 있듯이, 일주일 뒤 표절을 시인했다. 다만 “문학이란 땅에서 넘어졌으니 그 땅을 짚고 일어나겠다며, 절필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참회의 다짐(?)을 전했고, 여론의 반응은 싸늘했다. 더해서 신경숙이 문인 사이에서는 이미 공공연한 표절 행위로 유명했고, 특히 작고한 김상 시인은 신경숙을 ‘신도리코’라는 치욕적인 별명으로 부르기도 했다는 후문이 전해지면서 신경숙 뿐만 아니라 한국 문단의 부도덕한 창작 행위와 권력 구조에 대한 비판도 거셌다.

그리고, 그렇게 거센 폭풍이 잦아들고, 햇수로 3년이 지났고, 신경숙의 책들은 여전히, 아무 일 없이 판매되고, 누군가에게 읽히고 있다.

표절을 하며 배운 것

후회, 반성, 참회, 성찰 뭐 그런 일반적인 교훈과 태도 외에 내가 그 표절의 기억으로부터 배운 점이 하나 있다면 ‘표절의 죄책감은 영광에 비례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물며 김해의 어느 작은 동네, 또는 우리 외가 식구들 사이에서의 영광도 나를 괴롭게 만들었는데, 국민 작가의 반열에 올라있던 신경숙이 마땅히 느껴야 할 죄책감의 무게는 가늠하기도 힘들다.

신경숙의 ‘외딴 방’을 절절하게 읽었던 독자로서, 그녀의 표절 사건은 안타까움이라기보다는 배신감이었다. 책으로 출판하는 작가에게는 말 뿐만 아니라 글 또한 한번 뱉으면 주워담을 수 없는 것이어서, 이제 어떤 명작을 내어놓더라도 그녀가 표절했다는 사실이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사람마다 예술을 정의하고 도덕 수준을 평가하는 잣대는 제각각이겠지만, 적어도 나는 앞으로 그녀의 책을 읽지 않을 것 같다. 나 한 사람 읽지 않는다고 달라질 것은 없겠지만, 나는 표절로부터 해방되고 싶다. 내 자신의 표절로부터, 대작가의 표절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