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하고 있습니까, 운동? (1)

-테니스편

 

난 운동을 잘 하는 편이 아니다. 그런데 운동을 좋아한다. 직접 하는 것도 좋아하고 관전하는 것도 좋아한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이것저것 운동을 배우면서, 언젠가는 재능을 발견하리란 믿음을 갖고 온갖 종목에 도전해왔다. 테니스, 복싱, 수영, 무에타이, 스케이트, 요가, 탁구, 재즈댄스…… 여기에 특별히 배우지 않아도 할 수 있는 등산이나 달리기 같은 것을 더하면, 하여간 다수의 스포츠를 섭렵해온 셈이다. 이 중에서 그나마 남들보다 잘 한다고 할 수 있는 건 수영 정도지만,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어쨌거나 나는 ‘스포츠’를 사랑한다. 특정 과목이나 기술은 잘 못하면 흥미가 떨어지게 되는데 신기하게 운동은 그렇지 않다.

 

건강해지기 위해 적절한 움직임이 필요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스포츠는 그 자체로 다양한 매력을 품고 있다. 나는 운동이 육체적 건강은 물론이고 ‘영혼을 다듬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치열하게 정신을 쓰고 강도 높은 감동노동을 치르고 있는 현대의 삶 가운데, 온전히 몸의 움직임에 집중하는 시간은 무척 소중하다. 마음을 비우고 몸을 쓰는 일에 집중하다 보면, ‘나’라는 존재가 더욱 뚜렷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근육이 여기에서 이렇게 작용하는구나, 내 팔은 이런 식으로 힘이 들어가는구나.’ 하고 일상 생활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것들이 인식되기 시작하면서 색다른 환기를 불러 일으킨다. 반복이 주를 이루는 시대이기에 이런 환기의 지점들이 삶의 곳곳에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때로 좋은 노래를 듣고, 마음을 울리는 영화를 보고, 땀을 흘리는 운동을 해야 한다. 마음을 청량하게 유지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재미있고 멋지다는 것도 스포츠의 매력에 한 몫 하지 않을까.

앞으로 얼마간, 내가 직접 경험하고 좋아했던 스포츠에 관한 이야기를 비정기시리즈로 해나가 볼까 한다. 실력과 상관없이 우리는 모두가 ‘스포츠인’이어야 하니까.

 

시작은 무엇이 좋을까 생각하자마자 떠오른 것은 테니스였다.

 

테니스를 향한 나의 애정은 중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도 내가 굉장히 동경하는 스포츠 중 하나지만, 당시에는 정말 매일 경기를 찾아볼 만큼 테니스에 푹 빠져있었다. 처음엔 인기 있던 테니스만화를 보고 관심이 생긴 것이었지만, 나중엔 만화를 떠나 테니스 자체에 홀딱 반했다. 우리 시간으로 아침에 방송하던 윔블던 경기를 보다가 지각에 가까워질 때쯤 후다닥 뛰어나가길 반복, 그러다 결국 진짜 테니스를 배울 수 있게 되었다.

 

처음 코트에 나서던 순간이 아직도 어렴풋이 기억난다. 설레고 두근거리는 마음. 만화 속 캐릭터들이 구사하는 현란한 기술을 이제 나도 할 수 있는 줄 알고 신이 났었다. 쉴새 없이 공을 따라 뛰며 코트를 누비는 나의 모습! 그런데 웬걸, 처음 라켓을 잡은 후 반년 동안 코트의 반의 반은커녕 난 거의 제자리에 있었다. 공을 주우러 다닐 때나 사방을 돌아다녔을까.

 

복싱을 시작하면 보통 몇 개월은 글러브는 껴보지도 못하고 줄넘기만 한다는 말이 있다. 테니스도 비슷했다. 보기에는 그냥 공이 오면 치면 될 것 같았는데 막상 원하는 곳에 공을 보내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았던 것이다. 처음엔 공을 던져주지도 않았고 그냥 제자리에서 스윙만 수백 번씩 시켰다. 하나 둘 셋 스텝, 그리고 넷 스윙, 중심잡기까지 마지막 다섯. 지루하고 재미없는 연습만 반복됐다. 이 시기를 거쳐 자세가 어느 정도 잡히자 코치는 드디어 공을 던져 주었고, 화려한 기술은 언제쯤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포핸드를 연습하길 수백 번. 수천 번. 드디어 볼이 라인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제는 랠리 할 수 있나요?!” 하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여쭤본 내게 시작된 건 다시 제자리 백핸드연습이었다. 방향만 바꿔서 같은 일을 반복했는데 이걸 익히고 구사하는데 또 3개월이 걸렸다.

 

중학생이었던 체구와 손목에 힘이 충분하지 않았던 것도 있고, 내 운동신경이 나의 이상과는 달리 지나치게 형편없었던 것도 있지만, 하여간 테니스가 그렇게 간단히 잘할 수 있는 스포츠가 아닌 건 분명하다. 폼 나는 기술 전에 기본을 탄탄히 하는 것부터가 중요한 일이란 걸 머리로는 알았지만 그렇게 길게 시간과 노력을 들여 깨달음을 얻은 건 처음이었던 듯싶다. 반복은 고단하고 지루하지만, 명료하다. 그리고 절대 가볍게 얻어지지 않는다. 꽤 긴 시간을 같은 자리에서 같은 동작을 반복하면서 어린 내가 배운 건 테니스이기보단 이 진리였던 것 같다. 아니 물론 각잡힌 포핸드와 백핸드 실력도.

코트 한 자리에 내 발자국이 화석처럼 남는 건 아닐까 싶을 때 랠리를 하게 되었고 공을 주고받는다는 게 정말로 기쁘고 재미있었다. 경쾌하게 부딪히는 소리를 따라 여기 저기 뛰면서 ‘테니스란 정말 멋진 스포츠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건 만화를 볼 때나 tv를 볼 때와는 전혀 다른 진짜 감동이었다.

 

3학년이 되면서 입시준비로 레슨을 그만두게 되었는데, 끝내 서브 넣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그래서 난 “저 테니스 칠 수 있어요. 대신 서브는 다 넣어 주셔야 해요.”라고 말하는 이상한 플레이어가 되었다. 조금 웃기긴 하지만 기본기가 탄탄해야 한다는 코치님의 뚝심 덕에 나는 만화에서 보던 잔기술은 하나도 못하는 대신 적어도 랠리는 꽤나 깔끔한 자세로 해내는 편이다. 물론 정식 시합은 할 수 없지만.

그래도 나중에 탁구를 배울 때 이 시기에 배운 것들이 다시 큰 도움이 되었다. 역시 열심히 한 것 중 쓸모 없는 건 아무것도 없는 모양이다.

 

요즘은 테니스를 칠 기회가 줄었지만 그래도 길을 지나다 코트가 있으면 한참 서서 구경하곤 한다. 테니스를 해보지 않은 사람들에겐 그냥 쉽게 볼이 오가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내겐 정말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는 구경이다. 그렇게 오가기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하나의 일을 해내기 위해 들어가는 노력과 땀을 바깥에서 가늠하기는 어려운 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땀을 느낄 수 있을 때 우리는 감동하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스포츠경기를 관전하면서 선수들과 함께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는 것이 아닐까. 크기는 다를지 모르지만 평범한 동네 코트에도 그 노력이 존재한다. 그게 멋지다.

 

라켓에 공이 맞는 소리, 그리고 코트에 공이 튀는 소리는 여전히 가슴을 설레게 한다. 팡! 하고 고막을 때리듯 강렬한 그 소리를 들으면 묵직하게 전해지던 볼의 무게감과 그립의 흔들림이 여전히 손목에 울리는 기분이 든다. 그러니까, 간단히 말하자면 그거다. 테니스는 정말 멋진 스포츠다. 아직 경험해보지 않았다면 꼭 시작하길 권하고 싶다. 즐길 수 있게 되기까지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아무렴 나만큼 걸리기야 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