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하고 있습니까, 운동?(2)- 수영편
나는 물을 좋아한다. 친구들 사이에서 별명이 ‘물의 요정’으로 통할 정도다. 비도 좋아하고 물에 들어가는 것도 좋아하고 물 구경하는 것도 좋아하고 눈이나 얼음도 좋아하고 심지어 물에 관한 지식을 쌓는 것도 좋아한다. 그래서인지 운동 중에 수영만큼은 제법 잘한다. 테니스편에서 말했듯, 나는 다수의 운동을 배우고 익혔음에도 그 중 어떤 것에도 뛰어난 편은 아닌데, 수영이라면 ‘그래, 겨뤄볼래?’ 하는 마음이랄까?
하지만 처음부터 수영을 이렇게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물에서 첨벙거리는 것은 타고날 때부터 좋아했던 것 같지만 수영을 이십년 동안 지속하는 데엔 별도의 원동력이 있었다.
일곱살 때의 일이다. 가족이 다함께 계곡으로 여름휴가를 떠났다.
뜨거운 하늘, 시끄러운 매미소리, 낙원처럼 숨겨진 아름다운 물가에서 우리가족은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부모님이 지켜보지 않아도 괜찮을만큼 얕은 계곡이었다. 적어도 대부분은 그랬다. 한참을 혼자 놀던 내가 잘못 발을 디딘 곳은 회오리가 치면서 바닥이 깊이 패인 웅덩이였다.
갑자기 몸이 아래로 쑥 빠져들었다. 찰나의 순간이었다. 디딜 것이 아무것도 없고 입 속으로 물이 계속 들어와 소리를 지를 수도 없었다. 손을 아무리 휘저어도 어느 것에도 닿지 않았다. 눈을 떠도 감아도 희뿌연 어둠 뿐이었고 일곱살의 나는 그때 처음으로 ‘죽는다’는 공포를 경험했다.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그것은 지금도 차마 온전히 표현할 수 없는 두려움이다. 난 결국 무사히 살아났지만 이때의 경험은 큰 트라우마로 남게 되었다.
문제는 트라우마의 다음이었다. 이 공포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당연하지만 사건 직후, 나는 물을 무서워하게 되었다. 확실히 바닥이 보이고 높이가 무릎 아래인 물이라면 괜찮았지만 그 외엔 가까이 가는 것만으로 두려웠다. 물을 그리워하는 마음과 두려워하는 마음 사이에서 선택이 필요했다. 평생 안고갈 것인지 극복할 것인지. 지금이라면 오히려 물에서 멀어지는 것을 택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란 의외로 더 단호하고 용맹한 구석이 있는 법이다.
나는 수영을 배우기로 결심했다. 더이상 물이 무섭지 않을 때까지.
그 후로 이십년이다.
물 밖에서 팔다리의 움직임을 익히고 초보레인에서부터 상급자레인까지 한단계, 한단계 올라갔다. 처음엔 킥판을 잡고 겨우 뜨던 것이 점점 키가 자라면서 발이 닿고 물보다 훨씬 높이 우뚝 서게 될 때까지 꾸준히 수영을 배웠다.
자유형부터 접영까지 모든 코스를 배웠기 때문에 더이상 강습반을 들을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몇년에 한번 터울로는 다시 강습반에 들어가 기본기를 다지고 흐트러진 자세를 교정한다. 흔하고 간단한 자유형조차도 완벽하고 안정적인 폼으로 해내는 사람이 의외로 많지 않은 것을 생각하면 이 노력이 헛되지는 않다. 나는 더이상 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떨림이 무용해질만큼 끈질기게 단련해왔기 때문이다.
두려움은 사람을 멈추게 만들기도 하고 더 멀리 나아가게할 추진력이 되기도 한다. 공포는 기쁨이나 슬픔보다 에너지가 폭발적인 감정이다. 이것을 후퇴하는데 쓴다면 아까운 노릇이 아닌가. ‘위기를 기회로’라는 말은 흔하지만 실제로 해내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이뤄냈을 때는 무엇보다 큰 재산이 된다. 두려움이 없었다면야 이렇게 지속적으로 치열하게 열심히 배울 수 없었을 테니까.
그렇다고 수영이 생존스포츠이기 때문에만 열심히 해온 것은 아니다. 수영은 그 자체로 정말 유용하고 매력적인 운동이다. 모두가 잘 알고있듯 빼어난 유산소 운동임은 물론이요, 물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신체에 충격을 적게 주어 남녀노소 누구나 안정적으로 즐길 수 있다. 게다가 심리적으로도 물에 인접한 것만으로 명상의 효과가 있다고 한다. 가만히 떠있기만 해도 평온함과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생각해보면 우리 모두가 물에서 왔기 때문이 아닐까? 어머니 뱃속 양수에서 헤엄치던 기억이 모든 인간의 무의식에 내재되어 있고, 따라서 우리는 본능적으로 물을 가깝게 느낀다. 만약 어떤 계기로 물에서 멀어졌다면 수영을 통해 두려움을 극복하고 다시 오랜 그리움과 평온함을 느껴보자.
지금 겨울이라 수영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아니, 그렇기에 수영장에 사람이 적어서 오히려 수영하기 딱이다. 자유형, 배영까지 배우고 수영강습을 그만뒀다면 이제 상급자 코스를 끊어서 접영을 시작할 때다. 접영은 익히기 어렵고 체력적으로 힘들어서 배우고 적응하는 재미가 쏠쏠할 것이다. 추울 때부터 열심히 연습해서 여름을 맞았을 땐 누구보다 멋지게 물살을 헤치고 나가보면 어떨까. 나도 이제 새 단계로 도전해 봐야겠다. 물 위에서 하는 건 어느정도 익숙해졌으니 이제 물 속이다! 그래, 스킨 스쿠버 자격증을 노려봐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