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맛의 오해

지금은 열기가 다소 식었지만 2015년부터 외식업계를 강타한 키워드가 하나 있다. 바로 ‘불맛’. 아마 불맛이라는 이 키워드가 외식업을 강타한 건 바로 ‘이연복’ 이라는 스타셰프의 등장과 궤를 같이 한다. 아는 사람만 아는, 매니아층 정도만 형성되어 있던 이연복 셰프가 등장한 건 2015년 3월 19일 KBS에서 방송된 ‘해피투게더’ 에서 레이먼킴 셰프에 의해서였다. 하지만 대중에게는 드러낸 적 없었던 이연복을 단숨에 전국구 스타로 만든 그조차도 그 후에 일어날 외식업계의 지각변동을 쉽게 예측하진 못했으리라.

이연복 셰프의 살아온 인생스토리와 묵묵히 외길만 걸어온 그의 장인정신까지 맞물려, 그의 등장으로 우리나라의 중식에 대한 전국민적 관심은 폭발한다. 단순히 짜장면과 짬봉, 조금 더 쓰면 탕수육 정도가 기본이었던 사람들이 다양한 중식의 세계를 간접경험 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사람들은 중식에는 없어선 안될 높은 화력과 중식의 상징과도 같은 웍(wok)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중국음식을 먹으면서도 쉽게 지나쳤던 중식의 아이템들을 새롭게 바라보기 시작했고 실제로 2015년부터 가정용 웍의 구매는 꾸준히 상승했다.

외식업계에서 가장 발빠른 트랜드를 자랑하는 라면업계도 당연히 이러한 유행에 즉각 대응하기 시작했다. ‘불맛’을 키워드로 하는 각종 제품들이 폭발적으로 등장했고, 누가 선두라고 말할 수도 없을만큼 그 경쟁이 치열했다. 그 외에도 불맛은 다양한 요리장르에 응용되었다. 불맛 감자탕, 불맛 파스타, 불맛 불고기과 제육볶음 등 한식과 서양요리에도 등장하기 시작했고, 이 불맛의 등장으로 인해 한국에서만큼은 직화방식으로 패티를 굽던 버거킹의 위상이 다시 점점 더 높아지는 계기도 되었다. 이 모든 현상을 이연복 셰프의 등장으로 인한 나비효과로 설명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지만, 이연복 셰프의 등장으로 그만큼 ‘불맛’ 이라는 수요가 급성장한 것은 분명했다.

그럼 이 ‘불맛’ 이라는 게 도대체 뭘까. 우리나라에서 통용되는 불맛은 최소 두가지 정도인 것 같다. 쎈불과 중식웍에서 나오는 맛과 숯불이나 그릴에서 직화로 음식을 조리했을 때 발생하는 맛이다. 불맛의 화학적 반응은 일종의 마이야르 반응이다. 환원당과 아미노기를 가지는 화합물이 열을 만나 일어나는 반응으로 고기가 높은 온도의 열을 만나 시어링이 일어나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중식에서 발생하는 불맛은 단순한 마이야르 반응을 뛰어넘는 다른 화학적 작용이 있다. 바로 웍헤이라는 웍에서 발생하는 조금 더 고차원적인 맛을 내기 때문이다. 불을 낸 다는 점에서는 프랑스 요리의 플람베(Flambe)와는 큰 차이가 없어보이나 조리도구인 웍에서 일어나는 화학적 변화들이 중식 특유의 맛을 낸다.

웍의 주재료는 철이다. 무쇠에 가깝다. 그래서 웍은 원래 군수물자에 가까웠다. 전쟁터에 나간 병사들이 밥을 지어먹을 수 있고, 유사시엔 방패로 쓸 수 있을만큼 넓었다. 또 급한 경우엔 전쟁터 간이 대장간에서 녹여 다른 무기로 활용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웍은 상대적으로 두께가 얇다. 웍은 원래 석탄이 많은 지역에서 썼다고 한다. 석탄을 때던 화덕 위에 오목하게 쏙 들어가는 형태로 만든 것이 웍이었다. 철이라는 재질, 얇은 두께, 석탄의 화력의 삼위일체는 중식의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된다. 그래서 보통 서양요리나 한식의 조리기구는 열손실을 줄이는 쪽으로 발전되어 왔다. 그래서 예열이라는 과정이 필요하고, 한번 예열해 놓은 기구는 열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석탄이라는 강력한 화력의 어마어마한 자원을 가진 중국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이 넘치는 불을 활용했어야 됐는데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웍문화가 발전했다.

웍은 사실 그 크기와 위용에 걸맞게 기구 안에서 세 영역이 존재한다. 맨 아래 구역은 전도구역, 중간지역은 응결구역, 가장 위쪽은 대류구역이다. 전도구역은 쉽게 말해 불과 가장 직접적으로 맞닿는 곳, 즉 불길에 의해 바로 열이 전달되는 지점이다. 응결구역에는 스팀이 발생한다. 이 스팀의 온도는 100도씨에 가까운데 불로 지져진 재료가 위로 떠오르면서 스팀으로 다시 익혀지는 것이다. 가장 위쪽 구역인 대류구역은 온도도 낮고 수분도 낮지만 재료를 천천히 익히는 구역이다. 온도가 살짝 떨어지면서 재료에 미묘한 화학변화를 일으켜 내고 다시 떨어진 재료는 맨 아래 전도구역으로 다시 떨어진다. 그러다보면 기름의 유증기가 높이 치솟은 불과 함께 만나 불길을 만들어 웍 안으로 끌어들이면서 직화가 등장한다. 그리고 이것을 반복한다. 중식은 이 반복적인 루틴을 통해 재료를 직접 직화로 굽고, 팬에서 지지고, 중간에서 찌고, 잔열로 익히는 과정을 반복한다. 그러면서 마이야르 반응과 캐러멜 과정이 생성되면서 중식 특유의 불맛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많은 이들이 이 불맛과 탄맛을 혼동한다는 데 있다. 불맛과 탄맛은 엄연히 다르다. 불맛에는 쓴맛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니까 타기 직전 아주 적절한 시기에서 불을 뺐을 때 생기는 감칠맛이다. 설탕으로 캐러멜을 만드는 과정을 보면 그 원리를 잘 이해할 수 있다. 캐러멜이 되는 과정에서 조금 더 시간을 지체했을 때 설탕은 타버린다. 또는 서양의 루를 만드는 과정에도 불의 타이밍이 있다. 마찬가지로 이 불맛은 일종의 타이밍 싸움이기 때문에 웍질을 늦춘다거나, 타이밍을 놓치면 금방 전도구역의 재료가 타버린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 꾸준한 웍질로 지지고 찌고 식히고를 반복해주어야 하는데, 전도구역에 많은 시간이 배분되면 재료가 다 타버리는 것이다.

얼마전, 청와대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중식 요리사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에 간 적이 있었다. 어머니와 아내가 동행했는데, 아내와 나는 간짜장을 먹었다. 소스로 나오는 그릇이 뭔가 푸짐해보이고 늠름해 보이기 까지 했으나, 첫 맛을 보자마자 나는 접시를 돌려보냈다. 불맛이 과다한 탄맛이 났기 때문이다. 주방 관계자도 와서 맛보더니 죄송하다고 접시를 들고 갔다.

내 미각이 특별해서가 아니다. 탄맛은 막혀라도 쉽게 구분할 수 있다. 왜냐하면 쓴맛이 나기 때문이다. 인간은 쓴맛은 피하도록 진화되어 왔기 때문에 기가 막히게 잘 안다. 하지만 쓴맛에 둔감한 사람도 있으니, 한가지 더 팁을 주자면 탄 음식에는 분명히 탄내가 난다. 코가 막혔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미각과 후각 외에는 탄맛을 잡아낼 방법이 없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불맛이라는 이름으로 너무 많이 탄 음식을 먹고 있다. 특히나 중식은 색깔이 진하기 때문에 탄 음식을 육안으로 구분해내기 힘들다. 탄음식이 몸에 좋다 안좋다를 따지는 것이 아니다. 불맛이라는 이유로 탄음식을 쉽게 허용하지는 말자는 이야기다. 그래서 나는 바쁜 시간에는 중식당을 잘 가지 않는다. 정말 베테랑급의 요리사가 아닌 이상 웍 두세개를 동시에 가지고 놀 수는 없다. 손님이 조금 빠진 시간이 중식의 불맛을 느끼기 가장 좋은 시기다. 조만간 탄맛판정단이 되어보라. 탄맛과 불맛을 잡아내는 순간부터 또 다른 중식의 세계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