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감의 발견

식감이라는 말은 사실 표준어가 아니다. 엄밀히 따지자면 공신력 있는 국립국어원에서 표준등재된 단어가 아니란 뜻이다. 사실 정체불명의 단어에 가까운데, 국어대사전에는 없고 일본어 사전에는 등재된 걸로 보아 그 기원은 일본에서 온 듯 하다. 허나 식감(食感, しょっかん, 쇼칸)이라는 말은 우리나라 각종 매체에서 공공연하게 쓰인다. 글쓴이가 추적하기로 식감이라는 단어가 매체에서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해는 1992년부터 인 듯 하다. 상당히 오래된 역사를 지니고 있는 단어지만 여전히 국어사전에는 등재되지 않았다. 딱히 왜색도 짙어 보이지 않은 통에 배척 당하지도 않았다.

사실 정체불명의 단어에 가깝지만 단어 자체에서 주는 느낌, 즉 우리가 자연스럽게 잘 알고 있는 食(밥 식)과 感(느낄 감) 두 한자어의 조합은 어딘가 모르게 익숙하고 편안하다. 영미권에서는 Texture로 표기되는 이 단어는 ‘질감’ 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다. 요즘은 간혹 요리프로에서 식감이란 말 대신 텍스쳐라는 외래어를 쓰기도 한다. 단어의 역사성에 비추어 보았을 때는 아이러니 하게도 먹방과 쿡방의 범람 이후부터 식감 혹은 텍스쳐라는 단어들이 TV와 각종 매체에 함께 등장하기 시작했다.

‘식감이 너무 좋네요.’

‘식감이 바삭해요.’

‘식감이 쫀득쫀득하네요.’

2000년대의 웰빙열풍을 거쳐서 2010년에 들어서면 잘 먹으면서도 ‘맛있는’ 음식을 찾기 시작했다. 인류가 가진 음식 역사와 비슷한 행태다. 생존적 섭취에서 탐식의 시대로 흘러들어가고 단순한 생존이 아닌 장수라는 키워드와 함께 즐거움이라는 큰 호흡의 맥락을 함께 한다. 혓바닥에 붙은 미각의 감각에만 의존하다가 음식의 질감에 서서히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인간의 요리역사에 비추어 보면 간단히 분석할 수 있는 문제다.

인간음식은 몇 만년전부터 원래 죄다 먹기 힘든 것들이었다. 딱딱하거나 질기고, 그도 아니면 까끌까끌하거나 따가웠다. 인류가 화식을 발견하면서부터 그 상황이 좀 나아졌지만, 불을 가지고, 불을 쉽게 소유할 수 있는 자는 전체 인구에 비해 얼마 되지도 않았다. 즉 권력자들이 화식의 맛을 알아가기 시작했고, 우리네 조선시대만 봐도 죄다 거친 풀떼기만 뜯어먹고 살았다. 기껏해야 솥에 넣고 푹 삶아 연육작용을 했다지만, 요즘처럼 개량된 식재료를 먹는 지금과는 또 다른 차원의 것이었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도 마찬가지다. 서양이라고 해봐야 고기 뜯는 사람은 극소수고 감자를 캐다가 먹거나, 까끌한 호밀빵 내지만 딱딱한 빵을 먹는 것만이 음식의 다였다.

자본주의가 들어오고 시민권력이 성장함으로서 음식에 있어서도 상위계층이 누리던 식감이 서민들에게 전파된다.  실제로 시민혁명 직전의 프랑스 혁명의 경우, 바로 이 ‘식감’ 의 문제가 루이16세 정권에 큰 타격을 주었다면 믿겠는가.

그런데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다. 당시 프랑스는 국가경제가 심하게 궁핍해가고 있었는데, 당시 루이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는 다들 알다시피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영위해 나갔다. 귀족들도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러던 와중, 파르망티에라는 의사가 감자를 보급하여 국민을 먹여 살리자고 왕과 왕비에게 건의한다. 이에 왕과 왕비는 제빵학교를 열어 서민들 배불리 먹이려 했다.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빵의 색깔이 곧 사회계층을 상징했다. 요즘은 건강을 이유로 일부러 까끌까끌한 빵을 먹지만 당시의 프랑스에서는 부드러운 흰색빵을 선호했다. 하지만 당시 감자빵을 비롯한 다른 곡류가 섞인 갈색빵을 먹을 수 밖에 없었던 시민들의 분노가 점차 쌓이게 된다.

이때, 어느 날 빵가게 주인이 호밀빵을 흰빵값으로 속여 판 사건이 생겼다. 이 사건으로 빵집 주인은 살해당하고 이 빵사기사건은 일파만파 커져 온 국민의 분노가 파리 전체로 번져나간다. 시민들은 ‘우리에게도 빵을 달라’ 며 재정부 장관 사무실 앞까지 쳐들어갔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상류계층이 먹던 빵과 차별되지 않는 빵이었다.

그리고 이런 민중의 사태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던 루이 16세는 결국 그의 아내 앙투아네트 함께 단두대 위에서 비극적 결말의 주인공이 된다. 물론 프랑스 혁명에 영향을 끼친 많은 변수가 있었지만, 빵의 부드러운 식감 하나가 국가의 운명을 바꾸는데 큰 변수로 작용한 것도 사실이다. 이런 의미에서 봤을 때, ‘레 미제라블’ 에서 장발장이 빵을 훔치게 된 것도 이런 사태와 무관하지 않은 듯 하다.

역사적으로 놓고 볼때, 음식의 부드러움은 결코 쉽게 얻어진 것이 아니다. 그리고 부드러움으로 대표되는 다양한 종류의 식감이 서민들이 맘껏 맛볼 수 있게 된 것도 근대 혹은 현대에 이르러 서였다. 그렇기 때문에, ‘맛’ 이라는 혀감각에 의존한 고유의 단어와는 달리 음식의 질감을 일컫는 단어를 미처 생각하지 못했거나, 그랬기에 원래 있던 단어에 덧붙여 사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texture라는 단어 또한 사실 입안의 감각이라기 보단 촉감에 의한 질감에 더 가까운 단어 아니었던가.

이제 혓바닥의 감각에만 의존하지 말고, 입 안의 온 촉각에 집중해보자. 달콤한 맛과 끈적임은 내게 어떻게 다가오는 지, 짭짤함과 바삭함은 또 어떻게 다른지 하나하나 섬세하게 다루어 보자. 어렵게 얻은 식감인데다가, 그 식감을 위해 온 정성을 다했을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