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관광의 경계

관광과 여행의 경계는 잘 모르겠다. 다만, 어디 어디에 무엇을 보러 가는 것이 ‘관광’이라면, 그곳에서 느끼는 무언가가 내 삶에 영향을 미칠 때, 그것을 ‘여행’이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다시, 무언가에 등 떠밀려 의미 없이 다녀오면 ‘관광’, 의미를 추구하였거나 얻었으면 ‘여행’이라는 단어가 더 잘 어울린다.

고리타분할 수도 있겠지만, 사전적 의미를 보고 가는 것도 좋겠다.

관광: 다른 지방이나 나라의 풍경, 풍물 따위를 구경하고 즐김
여행: 자기가 사는 곳을 떠나 유람을 목적으로 객지를 두루 돌아다님
(유람: 아름다운 경치나 이름난 장소를 돌아다니며 구경함)
– 어학사전 –

재미있는 것 몇 가지.

관광이든 여행이든 그 사전적 의미가 지금 시대와는 조금 맞지 않아 보인다는 것. 또 하나는 앞서 이야기한 ‘관광’과 ‘여행’을 구분 짓는 ‘의미’라는 단어는 찾아볼 수 없다는 것. 즉, 사전적 의미 로보면 그 둘의 차이가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구경하는 것’을 공통분모로 갖고 있는 두 의미가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인지, ‘자기가 사는 곳을 떠나는 것’인지를 구분하고 있다.

말꼬리를 잡자는 건 아니지만, 마지막 두 개의 차이가 영 내 맘을 떠나지 않는다. 우리가 생각하는 ‘관광’은 좀 더 가벼운 개념이라서 그저 다른 곳의 신기한 것을 본다는 차원이라면 ‘다른 곳’으로 간다는 것이 어울린다. ‘여행’은 이와 달리 ‘자기가 사는 곳을 떠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왠지 여기에 좀 더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강박 아닌 강박이 느껴진다. ‘자기가 사는 곳’은 익숙한 곳을 말하며, 그곳에서는 오만가지 일이 다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자리를 박차고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이 좀 더 적극적이고 절박해 보이는 이유다. 현재의 우리가 여행을 갈망하는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은 모습이기에 더 그렇다.

‘여행’이라는 의미의 팽창

앞서 이야기했듯이, 사전에서 풀어내고 있는 사전적 의미가 시대와는 조금 맞지 않아 보이는 것도 그렇고, ‘의미’라는 관광과 여행을 구분 짓는 어떠한 개념이 빠져 있는 것을 보면, 어쩌면 ‘여행’이라는 그 단어 자체의 의미가 팽창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또는, 우리 삶의 패턴이 바뀌며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었거나.

나는, 그 둘 다가 맞다고 본다. 옛날에는 관광과 여행을 특별히 구분 지으려고 한 적도 없거니와 먹고살기 바빠 그것들은 흔하지 않았고 매우 특별한 것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어느새 ‘여행’은 일상이 되어버렸다. 너도나도 ‘여행’을 외치니 ‘여행’하지 않는 사람이 이상해 보일 정도다. 그 옛날 시절엔 젊은 시절 죽도록 고생해서 노년에 한가로이 여행 다니는 것이 일관적 삶의 흐름이었다. 성장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요즘은, 지금도 건사하지 못할 판에 ‘나중’이란 말은 사라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즐길 수 있을 때 즐기자는 말을 시시때때로 접하는 것이다. 까르페디엠이나 욜로와 같은 단어가 횡행하고 저마다 그 단어를 자신과 개입시킨다. 이러한 마당에 ‘여행’이라는 의미는 스스로도 팽창하고 있고, 동시에 우리가 팽창시키는 모양새다. 뭔지 모를 불안감, 보이지 않는 미래. 당장 이 현실을 바꾸지 못하는 무기력감에 ‘여행’은 ‘관광’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고, 최상의 안정제가 이미 되었다. 특별했던 그것이 일상이 되고, 사전적 의미로 표현하고 가둬두기에는 그 의미가 너무 커진 것이다.

여행, 무조건 떠나야 할까?

“여행은 가슴 떨릴 때 가야 해, 다리 떨릴 때 말고!”

누가 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보다 멋진 말이 또 어디 있을까. 여행의 의미와 이유를 함축적으로 표현한 이 문장에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다. 그 의미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누구나 ‘아하!’하고 깨닫게 될 정도니까. 하지만, 이 말은 어느 누구에게는 위험할 수도 있다. ‘무조건’ 떠나라는 말로 받아들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누구에게는, 떠나지 않는 것이 잘못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주기도 한다.

이러한 경우 ‘현재’를 즐기지 못하고, ‘현재’에 오롯이 집중하지 못하게 되는 최악의 경우를 맞이한다. 개인적으로 우리는 저성장의 시대라는 ‘저주’를 받았지만, 역설적으로는 현재(지금)를 바라볼 수 있게 된 ‘축복’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남들 다 가니까 가는 여행이나, 일상의 소중함을 모르고 그저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 무언가가 있을 거라는 무책임한 판단이 ‘무조건 떠나야 한다’라는 오해에서 오지 않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들기도 한다.

저마다의 시작과 끝은 모두 각자의 몫이다!
그러니, 가슴 떨릴 때 떠나자. 다리 떨릴 때 말고. 혹은, 둘 다 떨려도 괜찮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 스스로 오지랖을 벌이고, 오만방자한 생각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 또한 관광과 여행에 대한 경계를 잘 몰랐으며, ‘여행’이라는 의미를 완벽하게 확고히 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무조건 떠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도 한둘이 아니다. 관광을 하든 여행을 하든, 의미를 느끼든 그렇지 않든 간에 그것은 각자 저마다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삶에 있어서 ‘의미’ 찾기는 신이 우리에게 준 ‘숨은 그림 찾기’와 같다. 즉, 보물은 널려 있다는 것이다. 그 보물을 찾는데 가장 중요한 장소를 나는 ‘일상(현재)’이라고 본다. 하지만, ‘일상(현재)’은 고되고 각박하다. 무료하고 설레지 않는다. 하지만 ‘여행’을 다녀오면 ‘일상(현재)’은 다시 보이고, 가슴은 다시 떨릴 수도 있다. ‘여행’의 묘미이자 목적이다. 이러한 의미나 목적보다는 남들 가니까 가는 것, 의미 없이 시간을 보내고 오는 것 등에 대해서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것마저 여행의 과정이자, 보물 찾기의 수순일지 모른다. 다시, 각자의 몫이다.

정리해보면 ‘여행’은 무조건 가야 한다. 사정이 되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한 판단은 각자의 몫이며, 그에 따른 책임도 그렇다. 남들 다 간다고 동요하지는 말되, 일상(현재)을 달리 볼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고민해야 한다. 여행 없이도 지금을 감사히 받아들이고 달리 본다면 그걸로도 좋다. 독서, 글쓰기, 사색, 수다, 맛집 투어, 운동, 산책, 명상, 영화보기, 게임 등도 누군가에게는 ‘여행’이다. 비행기표를 끊고 유럽의 오래된 거리를 걸어야만이 여행은 아닌 것이다.

가슴이 떨려서 가도 좋고, 가서 떨려도 좋다. 다녀와서 떨려도 좋고, 그 모두에 떨려도 좋다.

다리가 떨릴 때도 괜찮다. 아직도 가슴이 함께 떨린다면 말이다.

그러니 무조건 가보자. 지금의 일상도 우리에게는 이미 시작된 여행일 수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