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전 막걸리 열풍의 시대가 있었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막걸리를 세계의 술로 만들려는 노력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막걸리 시장은 점점 과열화 되더니 소주 판매량에 버금갈 정도의 위력을 발휘한 적도 있다. 갖가지 재료를 활용한 막걸리가 출시되고 현재는 바나나맛 막걸리까지 등장했다. 일본과 중국의 소비자들까지 막걸리에 힘을 보태주었지만 막걸리의 인기는 예전과는 다르게 급격하게 시들해져간다. 국가전방위적으로 막걸리 세계화에 여념이 없었던 영광을 뒤로 한 채 막걸리는 왜 또다시 몰락 아닌 몰락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일까. 물론 막걸리가 망한 술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전통주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계속해서 찾을 것이다. 최소한 우리나라 안에서는.

지난 번 글에서 언급했지만, 국민음식 혹은 민족음식은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그 역사나 뿌리가 깊지 않다고 이야기 한 적이 있다. 대부분 1,2 차 세계대전 전후 전쟁물자가 오고가고 군인들이 오고가는 가운데 특정 나라를 대표하는 음식들이 생겨난 것이다. 하지만 세계화가 된 주류들을 보면 1,2차 세계대전 시절에 만들어 진 것이 아니다. 술은 음식과 다르게 세계대전 이전부터 각각의 민족들이 마셔오다가 세계대전 전후로 세계화가 되었다는 말이 더 일반적일 것이다. 젊은 청춘의 남성들이 가는 곳에는 술이 빠질 수가 없다. 그 청춘들이 오고간 수많은 길 위에 위스키, 보드카, 맥주 등이 흔적을 남겼다. 아쉽게도 일제 식민 아래에 있었던 우리나라의 막걸리는 그 길 위에 설 순 없었다.

그렇다면 과연 막걸리의 세계화가 어려운 이유는 세계대전이라는 타이밍을 놓쳐서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우리가 세계대전 전후의 타이밍을 놓친데는 아주 큰 민족적 비극이 있다. 우리나라의 쌀을 이용한 막걸리와 그것을 증류해 만든 청주기술은 세계최강이었다. 하지만 그 기술은 일제시대때 일본에게 모두 빼앗기고 말살 당하다시피 한다. 우리나라에서의 술은 대부분 가내수공업과 같았다. 일찍이 주류사업이 번창해 대규모로 술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유교관습 아래 차례라는 문화를 위해 아낙들이 술을 빚어왔다. 각 집집마다의 술 만드는 기법이나 비기가 다 달랐고, 대량생산의 기회까지 가 본적도 없었다. 하지만 대대로 내려온 술을 빚는 뛰어난 기술을 일본이 그냥 내버려둘 리는 없었던 것이다. 우리나라 양조문화를 가져가는 대신, 우리나라에서 술을 빚지 못하도록 했던 것이다. 그렇게 가져간 양조기법은 그들의 사케문화에 접목됐고 우리의 양조기법은 점점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하지만 이런 외부요인 이외에 분명 내부요인, 즉 막걸리 자체의 문제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막걸리의 전통성이 사라졌다는데 있다. 앞서 말한바와 같이 막걸리는 일제치하를 지나고 해방 이후 전국가적 빈곤기를 맞으며 우리나라의 양조기법은 실종위기에 다다른다. 해방 이후도 부족한 쌀로 인해 쌀로 술을 빚지 못하게 했다. 그나마 일제시대를 지나 살아남은 양조방식들이 해방을 맞았지만 자유로이 술을 만들 수 있는 기회를 가지지 못했다. 대부분의 주류가 이 시기에 세계화가 되었다는 걸 감안했을 때 이 시기는 주류 세계화에 아주 중요한 문제다.

그런데 우리는해방이 된지 3년만에 전쟁이 터진다. 그렇다. 전쟁은 술 문화가 파급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다. 그러나, 우리는 전쟁의 당사자였다. 무슨 말이고 하니, 피난 가기 바쁜 사람들이 술을 어떻게 만드느냐의 문제였다. 위스키와 맥주, 와인이 전쟁통에 세계화가 된 것과는 다른 문제다. 세계대전의 경우는 참전국들의 점령지에는 양조장이 그대로 남아있는 형태를 취한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 전쟁을 하더라도 그 나라의 술문화를 쉽게 접할 수 있었다는 의미다. 또한 참전국들이 가져온 그들의 술과 지역의 로컬 술들이 자연스럽게 교류했다.

하지만 한국전쟁의 경우는 우리는 양조장이라는 개념자체가 없었고, 양조기법은 아낙들의 머릿속에만 있었다. 해방된 후 한국전쟁 이전까지도 술을 자유롭게 빚을 수 있는 문화도 없었다. 그러니 참전국들은 전투지역에서 로컬 주류를 공급받기 보다, 각국에서 군인물자로 보급된 술에 의존했을 것이다. 그렇다보니 실제로 우리나라에 양주, 즉 위스키가 실질적으로 들어온 것이 한국전쟁 이후라고 보면 된다. 즉 미군들이 가져온 버번 위스키 위주의 주류문화가 미군부대 주변으로 퍼지게 된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최애했던 위스키가 시바스 리갈인걸 감안해본다면 우리나라에 참전국들이 뿌려놓은 위스키 문화가 얼마나 최상급이었는지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막걸리를 비롯한 일체의 주류들은 이런 역사적 사실에 의해 그 맥이 끊겼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시대적인 비극이었고, 현대에 들어와 세계무대에서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경제 12위 국가의 대통령까지 나서서 막걸리를 세계시장에 내놓으려 국가적인 노력을 기울였는데도 실패한 이유는 도대체 뭘까. 이것은 역사의 외부적 요인이 아닌, 내부적 요인 때문은 아닐까.

외부에 돌아가 있던 시선을 냉정하게 내부로 돌려보자. 다 인정하자. 역사의 비극으로 인해 막걸리의 전통과 혼맥이 끊겼다시피 했다. 하지만 많은 막걸리 회사들이 다시금 막걸리를 만들고 막걸리의 종류만 해도 백여가지나 되는 지금이다. 하지만 막걸리는 주류라고 하기엔 술과 곁들여 먹는 알콜음료라는 이미지가 더 강하다. 여기서 중요하게 들여다봐야할 단어가 바로 음료다.

세계인들이 술을 막 마시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굉장히 까다롭다. 술의 맛은 물론 술의 역사성도 함께 본다. 위스키와 와인의 역사는 말하지 않아도 잘 알 것이고, 가장 최근에 인공적으로 만들어졌다는 보드카와 진 또한 만들어진지 300-400년으로 추정한다. 럼주 또한 17세기 대항해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세계화 된 모든 술은 이 술들을 기본 베이스로 한다. 역사가 최소 두세기는 족히 건너뛴 술들이다.

최근 세계화를 진행중인 ‘사케’의 경우는 어떠한가. 우리나라 청주문화와 하이브리드된, 어쩌면 우리것일 수도 있었던 사케는 세계화의 시장에 후발주자지만 일식이라는 메인요리 아래 세계화가 순항중이다. 하지만 일식의 영향도 있겠지만 사케는 사케 자체만 놓고 보았을 때, 어느 정도의 역사성을 가지고 있는 술이다.

그렇다면 일본 사케와 우리나라 막걸리는 어떤 전통성에 차이가 날까. 똑같이 전통주일텐데 말이다. 그것은 바로 첨가물의 차이다. 즉 아스파탐. 사케는 순수히 쌀만으로 단맛을 낸다. 쌀의 도정을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서 술의 질감이 달라지고 단맛의 깊은 맛도 달라지는 것이 사케다. 이는 떼루아에 따라 맛이 달라지고 어떤 오크통을 쓰고 어떤 조건에서 술을 만들었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와인과 같은 재미를 준다. 물론 와인도 그렇고 사케도 그렇고 지금은 모든 것을 기계화된 방식으로 대량생산하기 때문에 품질이 균일하다. 하지만 품질의 균일성과 맛의 전통성은 다른 카테고리이다.

막걸리는 아스파탐이라는 합성감미료를 사용한다. 인공적인 단맛을 추가하는 것이다. 글쓴이는 개인적으로 바로 이 공정이 막걸리가 사케를 뛰어넘을 수 없는 이유라 생각한다. 술은 요리와는 달리 굉장히 보수적인 아이템이다. 현대문화에서 음식은 오히려 퓨전을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주류시장은 다르다. 소주에다가 백날 과일향을 뒤섞어놓아도 우리는 다시 원래 소주로 돌아왔다. 해외에서도 마찬가지다. 칵테일 시장이 존재하긴 하지만 칵테일이 주류라 하기 힘들다. 그리고 그 만들어지는 칵테일 조차도 역사와 전통이 함께 하는 위스키, 진, 럼, 보드카 등의 베이스 주류가 꼭 들어가야한다.

그런데 여기에다가 인공적인 단맛의 결정체인 아스파탐을 때려넣는다? 이것은 세계인의 눈으로 보았을 때 말도 안되는 미친짓이다. 그래서 앞서서 ‘음료’ 라는 말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막걸리는 술이 아니라 캐쥬얼한 알콜성 음료에 가깝다. 그러니까 지금의 막걸리는 주류시장에 어울리는 것이 아니라 음료시장에 어울린다는 거다. 그런데 이걸 자꾸 술이라 우기면서 세계화를 시키려니 그게 마음처럼 안되는 거다.

물론 최근의 막걸리 시장에서 아스파탐을 뺀 전통적인 방식으로 막걸리를 내리는 기업이 몇 군데 있다. 대표적으로 배**주가에서 나온 느*** 막걸리와 배**도가에서 나온 호** 막걸리가 그 예다. 글쓴이는 주로 이 두 막걸리만 마시는데 계절에 따라 맛과 향이 달라진다. 최근 날씨가 풀린 후 마셨을 땐 막걸리에서 사과향 비슷한 것이 날 정도였다. 우리나라의 전통주인 막걸리도 잘만 만들면 이런 고퀄리티의 제품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다만 시간과 노력이 걸릴 뿐이다. 그런데 막거른 술이라는 인식 때문에 빨리 만들어 먹어야 한다는 인식이 생겨서 일까? 쌀이 가진 맛을 충분히 내기도 전에 공정을 멈추고 아스파탐을 때려넣는다.

어쩌면 우리는 아스파탐이 들어간 음료를 두고 “막걸리는 ‘술’입니다”를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면 막걸리가 해야할 일은 둘 중 하나다. 판매 카테고리를 바꾸던지, 아니면 아스파탐을 빼던지. 술은 가장 술 다울때 세계화가 된다. 아니 세계화 이전에 술은 가장 술 다울때 설득이 된다. 세계인들은 술다운 술을 먹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다수의 막걸리 공장들이 그 경지에는 못 이른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