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밀롱가(탱고 댄스 파티)에 갔다가 조금 당혹스러운 일이 있었다. 내가 다니고 있는 탱고 동호회의 월말 파티를 겸하는 밀롱가였기 때문에 가벼운 마음으로 놀러 갔는데, 즉석 이벤트 형식으로 갑자기 파트너 하나를 골라서 즉흥 공연을 하도록 지목받은 것이었다. 솔직히 어디가서 춤을 공연을 할 정도로 잘 추는 게 절대 아니었기 때문에 당혹을 넘어 거의 곤혹스러운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또 쭈뼛쭈뼛 빼면서 못하겠어요… 라고 하기엔 파티 분위기를 망칠 것 같았다. 그냥 에라 모르겠다 빨리 하고 끝내버리자는 심정으로 그나마 가장 내 지목에 덜 화를 낼 것 같은 선생님을 지목했다. 물론 그 선생님은 원망의 눈으로 ‘나? 왜…?’ 하는 제스쳐를 보냈다. 어쨌거나 음악은 흘러나왔고, 나는 그렇게 춤을 췄다.

춤을 입으로 추는지 코로 추는지 모를 2분 50여초가 지나갔다. 평소보다 더 긴장했기 때문에 손은 덜덜 떨리고 종아리엔 그새 알이 배겨있었다. 하도 긴장을 해서 피가 안통했는지 손가락 끝이 차가울 지경이었다. 이정도로 긴장한 건 고등학생 시절 귀가하는 밤거리에서 양아치 6명에게 걸려 전력질주로 집까지 달려왔던 날 이후로 처음이었다. 덜덜 떨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아무렇지 않은 척 자리로 돌아와서 창피함을 곱씹고 있었는데, 더 최악이었던 것은 누군가가 내 춤을 영상으로 찍었던 것이었다.

차마 그 자리에서는 눈을 뜨고 볼 용기가 없어 집에 와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몰래 봤다. 역시나 못봐줄 수준이긴 했지만, 마음 한켠으로는 꽤 감개가 무량하다고 해야될지 감격스럽다고 해야될지 묘한 마음이었다. 내가 탱고를 추기 시작한지도 이제 11개월이 넘었는데, 사실 탱고를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지금처럼 밀롱가에서 누군가와 춤을 출 수 있을 만큼의 실력이 될 거라고는 상상도 한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누군가와 안고서 한걸음도 떼지 못하고 어버버거리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어색하지만 즉흥으로 춤을 출 수 있는 실력이 된 것이다.

물론 언젠가는 적당한 실력이 되어서 밀롱가를 다니며 처음 보는 팔로워들과도 춤을 추게 될 거란 예상과 상상을 하긴 했지만, 그게 11개월차, 그러니까 1년도 채 되지 않아서 그렇게 될 수 있으리란 건 생각조차 하지 않았었다. 그러니 어찌 감개가 무량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심지어는 탱고를 배운지 6개월이 됐을 때의 공연 영상과 비교해보면 더욱 차이가 컸다. 그래도 내가 뭔가 늘긴 늘고 있긴 했구나. 정작 춤을 배우는 동안에는 점점 늘기는커녕 점점 퇴보하는 느낌에 괴로운 기분만 들었는데, 조금은 유치한 동기부여긴 하지만 눈으로 직접 스스로의 발전을 확인하는 건 큰 용기를 줬다.

탱고 선생님은 항상 말했다. 대부분의 훈련이 그렇지만 특히나 몸을 쓰는 일에서는 자신의 실력이 늘고 있는 걸 스스로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아주 당연하다고. 그렇기 때문에 몸을 쓰는 일은 훈련의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그저 그만두지 않고 끝까지 버티는 것이라고 말이다. 실력이 늘고 있건 정체기건 자신이 늘고 있다는 자각은 전혀 들지 않고 확인도 쉽지 않으니, 그저 군말없이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하며 그저 포기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운동도 음악도 공부도 뭐든 늘 그러했던 것 같다. 하루하루 포기하지 않고 그냥 이게 되는지 안되는지 모르면서도 버티다 보면, 어느새 첫 발걸음을 떼던 시절과는 몰라보게 성장해있는 나를 보게되었다.

그러면서 탱고 선생님은 말했다. 실력은 절대 완만한 곡선을 그리면서 늘어나지 않습니다. 실력은 계단식으로 올라갑니다. 어느순간 자신도 모르게 한 계단을 올라가 있게 되고, 그래서 전 계단에서 지금 계단으로 올라선 것이 굉장히 놀라워보이면서도, 다음 계단까지는 끝없는 정체기가 이어지는 아주 고되고 지난한 과정이라고.

탱고도 그랬지만, 2년째 하고 있는 운동인 태극권도 마찬가지다. 나는 단 한번도 내 실력이 늘었다는 자각 따윈 한 적이 없다.

태극권을 처음 시작했던 동기는 정형외과도 대학병원도 못 고쳤던 어깨와 무릎의 재활을 위해서였다. 유도를 하면서, 또 군대에 다녀오면서 심각하게 손상을 입었던 어깨와 무릎. 어깨는 조금이라도 무거운 물건을 수직으로 들어올리기 힘든 데다가 1시간 이상 배낭을 메고 있으면 떨어져나갈 것 같았고, 무릎은 쭈그려 앉았다 일어나는 동작에서 통증이 너무 심해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그런 망가진 몸이었는데도 병원에서는 이상이 없다는 결과가 나왔고, 결국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태극권을 시작했던 것이다.

살면서 가장 열심히 했던 것 중 하나가 이 태극권이다. 2년간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체육관에 나가 운동을 했고, 어느 순간 어깨와 무릎 통증은 없어졌다. 어쩌다보니 우슈협회 공인 2단까지 취득했고, 대회에는 3번을 나갔다. 어느덧 나는 조금더 강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고 요즘은 운동을 하는 게 훨씬 수월해졌다. 초기에 1시간만 해도 땀을 비오듯 흘리며 헉헉대고, 어깨와 무릎 통증만 좋아지면 소원이 없겠다던 심정이었는데, 이제는 더 강해지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고 있다.

생각해보면 사는 게 늘 그랬다. 뭐든 가장 괴로운 건 미래에 대한, 그리고 현재에 대한 불확실함이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게 맞는건지, 잘하고 있는거긴 한지, 내가 미래엔 지금보다 나아질 수 있을지. 가늠이 안되는 어둠과 안개속을 헤매는 기분.

문득 가장 그 고통이 심했던 때를 떠올려본다.

군대를 다녀오고 학교는 자퇴를 했는데, 나는 당시에 한국예술종합학교로 다시 입학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었다. 헌데 사정상 갑자기 1년을 더 준비할 시간이 없어졌고, 준비 기간은 너무 촉박했다. 남은 시간은 한 6개월 정도, 거기다 입시 학원 같은건 다닌적도 없었고 다닐 생각도 없었다. 돈도 돈이었고 무엇보다 사정이 너무 급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냥 혼자서 매일같이 입시를 위한 연습 글쓰기를 하는 것 뿐이었다. 그래도 지방대긴 하지만 문창과를 2년 다녔었기 때문에 방법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글쓰기 연습을 매일 하는 동안에도 이게 정말 될까 싶을 정도로 확신이 없었다. 단지 그 6개월을 매일 그렇게 버틸 수 있었던 건 내게 다른 방법이 정말 1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할 수 있는 게 하나밖에 없으니 그저 그 하나를 아무 생각없이 하는 수밖에는 도리가 없었다. 거기다 글쓰기는 혼자 하는 거니 사람 만나는 것도 점점 피하게 되었다. 매일 혼자서 운동하고, 일하고, 밤에는 집앞 카페에서 혼자 커피한잔을 시켜놓고 글쓰기를 하고, 귀가하고. 반복이었다.

난 어느틈엔가는 꽤 기계적으로 그 일을 해내고 있었고, 속으로는 반쯤 포기한 상태였다. 이렇게 해서 될 리가 없어… 그냥 1년 더 준비하고 한예종 시험이나 치자. 실기 시험도 체념한 상태로 갔다. 아니나 다를까 입시 시제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 나왔다. 다행히 뉴스기사로 접했던 내용이라 알아듣긴 했지만, 짧은 순간 참신한 아이디어따위는 전혀 떠오르지가 않았다. 입시 과외를 받는다던 다른 친구 얘기로는, 여러 가지 입시용 좋은 글들을 미리 써놓은 상태로 그 내용들을 외워서 시제가 나오면 거기에 끼워맞춘다는 얘기가 생각났다. 정말 안타깝게도 지난 6개월간 매일 썼던 글들 중에서는 시제에 딱 들어맞는 이야기가 전혀 없었다.

시간 안에만 내자는 심정으로 휘갈겨 내고 돌아섰는데, 합격자 발표날 보니 1차에 붙은 채였다. 겉으로는 내심 아무렇지 않은 척 ‘그럼 내가 붙지 떨어지냐?’ 고 의기양양해대며 다녔지만 속으로는 정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난 정말로 떨어질 줄 알았었고, 사실 2차까지 붙은 건 거의 운이나 다름 없었다.

학교에 들어가니 또 거긴 다른 세계였다. 늦깎이로 온 나와는 다르게, 또 그냥 무식하게 혼자 글쓰기 연습으로 실기 붙어 들어온 나와는 다르게, 뭔가 반짝거리고 그야말로 ‘창의적’ 이라는 말이 어울리던 아이들.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또 많이 없었다. 6개월간 했던 것처럼, 매일은 아니지만 일기를 많이 쓰고, 노트를 많이 쓰려고 했다.

반쯤은 운동하는 심정으로 글을 쓰고 공부를 했었다. 괴롭고 자기 확신이 없긴 했지만, 그래도 운동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버티고 잠드는 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이제 나름대로 글쓰기를 내 인생의 메인 작업으로 삼아온 지가 10년이 되었다. 2006년에 첫 대학에 들어가 글쓰기를 시작하고, 군대에서도 멈추지 않았으니 어찌 보면 10년이 넘었다고 할 수도 있겠다.

내 인생 계단식 영농이 가장 깊은 경지에 이르른 게 바로 이 글쓰기라는 분야 같다. 탱고는 11개월, 태극권은 2년 됐고, 갈길이 아직 멀다. 그래도 10년 버티며 글쓰기만 해온 내가 이뤄낸 것들을 찬찬히 살펴보고, 또 글쓰기를 처음 시작할 때의 나와 비교해보면, 정말 감개가 무량할 따름이다. 앞으로 또 10년이 지나면 탱고도 태극권도 어느샌가 훌쩍 자라있으리라 생각된다. 물론 글쓰기는 20년차가 되었으니 더 자라있을 테고.

그렇게 오늘도 계단식 영농의 하루하루가 지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