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연기를 했던 것은 예대에 입학하고 나서 첫 오티를 가서였다. 이제는 오리엔테이션 자체가 없어질 듯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신입생 오티는 꽤 성대하고 아주 강압적인 행사였다. 가장 큰 행사는 내가 다니던 학과의 경우는 상황극 경연대회였다. 각 조별로 직접 신입생들이 대본을 쓰고 연기를 해서 학과 교수들 앞에서 심사를 받는 것이었다.

당연하게도 난 그 모든 과정들이 하기 싫었고, 왜 해야되는지도 몰랐으며, 빨리 대충 끝내자는 심정으로 어떻게든 끝내고 나서 예상외로 너무 진지하게 심사평을 들어야되는 것도 싫었다. 생각해보면 이 모든 과정들도 어찌보면 위계와 폭력의 길들이기가 아니었을지 모르겠다.

좌우간 그러거나 말거나 오티에서의 연기는 그냥 한순간 지나가는 수치심으로 생각하고 말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평생 연기를 더 이상은 할 일이 없을 거라고 절대로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짜잔- 절대로 라는 건 없군요.

우리 학과에서 가장 중요한 수업은 ‘극작 세미나’ 라는 수업이었다. 이름 그대로 한 학기 동안 극작술에 대한 역사와 기술을 공부 및 연마해가는 수업이었다. 기본적으로는 이름 높은 극작가들, 예를 들면 셰익스피어, 소포클레스, 해롤드 핀터 등등… 역사에 이름과 작품을 길이 남긴 그 찬란한 작품들을 공부하고 모사하고 분석하는 작업이 한학기 내내 이어졌다. 거기에 더해 캐릭터 분석을 위해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신들과 성격들을 분류하고 분석해내는 등의 공부도.

‘극작 세미나’ 수업의 피날레는 학기 말 마지막 수업날 하는 발표수업이었다. 담당 교수마다 수업의 진행은 달랐지만, 보통의 경우는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를 골라 학생들끼리 팀을 짜서 각색 연출 연기를 다 해내거나, 한 학기 동안 자신이 공부하며 과제로 제출했던 단막 희곡들 중 하나(보통은 이 역시 명작 희곡들의 분석 및 각색이었다)를 택해 팀원들과 낭독 공연을 하는 것 이었다.

난 공교롭게도 두 가지를 모두 해 봤던 학생이었다. 후자의 경우는 내가 작가로 쓴 뒤 팀원들과 배역을 정해 마음 편하게 ‘낭독’하는 데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부담은 없었다. 무엇보다 낭독극에서는 내용의 전달이 더 중요했기 때문에 배우의 연기는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부분은 아니었다.

문제는 전자의 경우였는데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중 하나를 골라서 학생이 직접 각색한 작품은 담당 교수가 직접 검토한 뒤 기준에 맞지 않으면 탈락을 시켰다. 그러면 작가를 바꾸든 아니면 다시 써서 제출하든 해서 통과를 할 때까지 이 작업을 반복했고, 통과가 되면 그때부터 팀원들과 연극을 한편 만들어야 했다. 연출에 배우까지 정해 직접 무대에 올려야 했는데 이 작업은 굉장히 프로페셔널함을 요구했다. 때문에 수업이 많았던 우리는 늘 직접 만들었던 그 자그만 무대에서 저녁에 만나 새벽까지 연습하고 헤어지기를 반복했다.

어떻게 연기를 해야하는지, 무엇을 해야하는지, 나는 당연하지만 전혀 알지 못했다. 그때의 우리는 누구도 그것을 알지 못했다. 다만 알고 있었던 것은 이것은 조별 과제이며, 어떻게든 좋은 결과로 끝을 내야 한다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그저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었다. <리어 왕>을 각색했던 친구의 대본을 들고 나는 밤새 대사를 외웠고, 할아버지 역할을 위해 과장되게 걸었으며, 할수 있는 한의 흉내는 다 내고 어떻게든 뻔뻔하게 무대 위에 서 있으려고 노력했다. 물론 그 와중에도 대사 한줄을 까먹은 바람에 식은 땀을 흘렸고, 결국 다 끝나고 나서는 분한 마음에 눈물이 나기까지 했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딱 거기까지는 좋기만 했다. 연기라는 걸 대충 체험을 했고, 연기자로서의 마음가짐과 몸가짐 그리고 재미와 기쁨 희열, 그리고 고통과 고충 공포를 다 경험했으니 말이다. 공부로서는 아주 좋았던 경험이었다. 아마 그 경험이 없었다면 더 자연스러운 대사를 쓰기 위한 고민과 노력 같은건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난 그때 이후로 자기도 못 읽을 대사를 써놓고 왜 연기를 못하냐고 닦달을 하는 작가들을 보면 정말 역겨운 분노가 치밀어 올랐을 지경이었다. 그렇게 몸으로 직접 배웠기에 나중에는 ‘니가 직접 해봐’ 라는 말을 당당하게 많이 하고 다녔다.

문제는 학기 중, 그리고 방학중에 발생했는데 동아리와 같은 과 선배들이 같이 연극을 하기를 권유했다. 나도 공부를 한다는 생각으로 참여했다. 처음 공연에서 나는 음향팀에 들어갔다. 그리고 곧 별달리 하는 일이 없자 연출을 하던 같은 과 선배의 권유에 작은 조연이나 맡아서 한두마디 하고 들어가기로 했다. 즉 배역이 생긴 것이었다.

내게 주어진 대사는 그저 두세 줄 뿐이었고, 하는 거라곤 총을 들고 집안을 수색하고 주연을 맡은 배우 하나를 질질 끌고 퇴장하면 그만이었다.

처음 그래도 뭔가 조별과제나 수업의 일환이 아닌 관객을 대상으로 연극을 한다는 생각에 꽤나 긴장하고 많은 걸 배우겠다는 생각이었는데, 하면서 뭔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무엇보다 우리 팀에는 전문적으로 연기를 배운 사람이 한 명밖에 없었고, 그마저도 배우였기에 남의 연기에 터치하거나 신경을 써줄 입장이 아니었다. 연출을 하는 선배도 전공은 극작이었고, 연기는 그나마 배운적도 없었고, 연출 역시 마찬가지 배운적도 없었으며 하는 것도 처음이었다. 비록 대사가 세줄이건, 나오는 시간이 다 합해서 5분도 안되건 그런 건 내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내게 중요한 건 이게 관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진지한 연극이라는 것, 그리고 내가 연기를 배워본 적도 없는데 제대로 해본적은 더더욱이나 없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분량이 적었기 때문에 연습도 많이 하지는 않았지만 짧은 장면이나마 연습에 참여하고 나서는 혼란에 휩싸였다.

‘내가 지금 제대로 하고 있는 건가?’

‘내가 지금 연기라는 걸 하고는 있는 건가?’

‘이게 연기 맞나?’

연출도 동료 연기자 선배들도 아무도 내 그 ‘연기’에 대해서 가르쳐주거나 별다른 코멘트를 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분량도 크게 없어서 코멘트해줄 만한 것도 없었지만, 중요한건 코멘트를 안해주는 게 아니라 못해준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였다. 생각해보면 그 누구도 연기를 제대로 배워본 사람이 없는 사람들인데, 내게 뭔가를 가르쳐줄 수가 없었다. 연습이 끝나고 연출 선배에게 물어봤을 때도, 그 선배는 그냥 잘하고 있다고만 말했을 뿐 내가 뭘 잘하고 있는지는 말해주지 못했다.

어찌저찌 첫 연극은 끝났고, 방학이 되자 동아리에서는 또 나를 불렀다. 처음에는 학기중에 했던 연극에서의 혼란과 실망스러움이 너무 컸기 때문에 하지 않겠노라고 했다. 그러자 이번엔 학기중에 같이 연기를 했던 친한 형이 나서서 ‘자기가 이번에 연출을 하게 됐는데 너는 배역도 아주 작은 배역이다, 그냥 좀 도와주면 안되겠느냐’, 며 꼬셨다.

작은 배역. 그 한마디에 진짜로 ‘도와주겠노라’고 참여했다.

그게 화근이었다.

작기는 작았다. 주연보다는. 조연이었는데 비중이 어찌나 높았는지 외워야 될 대사가 10페이지를 넘어갔다. 처음과 마지막을 빼면 나는 거의 매 장면마다 등장했고, 심지어 연극은 장르가 코미디에다가 내가 해야되는 건 코미디 연기였다.

난 연기를 배워본 적이 없었고, 한다고 말한 이후로는 그만둘 수도 없었고, 무엇보다 팀에는 이런 하소연을 할만한 사람들조차 없었다. 매 순간순간이 짜증과 괴로움이었다. 연습이 끝나고 공연이 끝난 후에도 난 뒷풀이조차 참여하지 않았을 정도로 스트레스가 폭발했다. 공연이 끝난 후 동아리 회장이었던 선배에게는 (나보다 어렸었다)다시는 얼굴 보지 말자고, 동아리 일로 다시는 부르지도 말고, 동아리 명부에서 내 이름도 삭제해달라고 했을 정도였다.

그 이후에는 연기를 혐오하고 다시는 하지 않으리라 생각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었을지 모르겠지만, 난 반대로 생각하고 있었다.

“도대체 연기를 제대로 배운다는 건 어떤 걸까?”

주먹구구식으로 닥치면 하고, 그때그때 때워오는 과정 자체에는 진저리가 났다. 연기가 진짜로 아무나 하고 이런식으로 해도 되는 거면 연기과에 입시생들이 100대1 경쟁률로 몰릴 일도 없고, 그 사람들이 3년동안 전공으로 수업을 들어가면서까지 연기를 배울 이유도 없을 것이었다.

2학년이 되고 나는 정식으로 연기과 수업에 청강생으로 들어가서 연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게 나의 첫 연기 수업이었다. 나는 오랫동안 가져왔던 의문과 의혹 그리고 괴로움 등을 수업을 통해서 비로소 해소할 수 있었다. 동시에 나의 희곡쓰기도 더 풍부해졌음은 물론이다.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서는 제대로된 사람들에게서 제대로 배워야 함을 그때 깨닳았다. 단순히 오래했다고 해서 잘하는 것이 아니고, 잘한다고 해서 잘 가르칠수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지금은 많이 좋아지고 개선되었지만, 생각해보면 초중고 12년동안의 가르침들이 나에게는 대부분 그러했다. 한번 놓친 진도는 따라갈 수가 없었고, 어떻게 따라가야 하는지, 왜 따라가야 하는지, 공부는 왜 해야하는지 등은 그 어떤 선생들도 나에게 가르쳐준 적이 없었다.

나는 영어를 꼭 배워야 하는 이유를 해외여행을 가서야 깨닳았고, 수학을 꼭 배워야 하는 이유는 버틀란드 러셀의 <서양 철학사>를 읽으며 깨닳았으며, 미술을 배워야 하는 이유는 곰브리치의 <서양 미술사>를 읽으며 깨닳았다. 삶의 매 순간순간이 공부이고, 인생이란 매 순간 공부하고 성장해나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나는 늦게나마 알게 되었다.

요즘도 못 읽고 산처럼 쌓아놓은 책들을 볼 때면 한숨이 푹푹 쉬어지지만 어쩔수가 없다. 이것이 인생인 것을. 공부란 끝나지 않는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