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

우리는 살아가면서 어떤 말을 뱉어낸다.

혀를 끌끌 차며 뱉어내는 말 중에는 “역시, 사람은 안 변해”란 말이 단골이다. 고전 전래 동화 중에 사람이 된 고양이 며느리 이야기가 있다. 소원을 빌고 마침내 사람이 된 그 고양이는, 여러 차례 정체를 들킬 위기를 넘기며 잘 살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시어머니와 단둘이 방에 있다 지나가는 쥐를 보고 본능적으로 달려들어 그 정체가 드러났다는 이야기다. 단적인 이야기이긴 하지만 사람이나 그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공감되어온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말은 연인과의 관계에서도 많이 쓰인다. 남녀가 사랑하게 되면 서로에게 간섭하기 시작한다. 영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에서는 서로에 대한 ‘간섭’이 사랑이냐는 화두를 던진다. 그리고 사랑하면 ‘간섭’할 수밖에 없다고 결론짓는다. ‘간섭’은 상대방을 바꾸고 싶다는 열망을 내포한다. 바꿀 일이 없으면 ‘간섭’할 일도 없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초기에는 그 ‘간섭’을 즐기고, 상대방이 원하는 대로 맞춰주기까지 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간섭’은 부담이 되고, 서로에게 맞추려 했던 모습은 옅어져 싸움이나 이별의 끝에선 결국 “역시, 사람은 안 변해”란 말을 읊조린다.

직장 내에서도 마찬가지다.

나와 업무 스타일이 맞지 않는 사람. 갈등이 있는 사람. 만날 실력 없이 자신의 업적, 소위 말해 ‘광’만 파는 사람. 매사 공격적인 사람, 반대로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사람. 같은 일을 하더라도 천차만별의 과정과 결과를 경험하는 직장에서는 그 누구라도 공감할 것이다.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그런 사람들을 대하다가 결국 갈등이 생기면 우리는 또 말한다. “역시, 사람은 안 변해, 그 고집과 뻔뻔함 어디 가겠어?”

상대방이 변했으면 하는 내 마음이 변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상대방이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이 변해야 한다는 나의 생각이 변하지 않는 것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방의 행동이나 성격은 그 사람의 인생을 말해준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축적된 ‘생존의 법칙’이기도 하다. ‘생존의 법칙’은 이기심에 기반한다. ‘이기심’이란 어감이 좋지 않아서 그렇지, 자신의 이익을 꾀하는 것은 누구나의 본능이다. 그것을 탓한다는 건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누군가가 변했으면 좋겠다는 생각, 저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은 결국 내 뜻대로 되지 않으니 발생하는 한탄이다.

조금 더 친절했으면 사람, 술을 줄였으면 하는 사람, 약속 시간에 늦지 좀 말았으면 하는 사람, 남의 이야기는 도통 듣지 않는 사람 등.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다. 그리고 나 자신 또한 별의별 사람 중 한 명이다. 우리는 상대방이 변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조언을 하거나 화를 내기도 한다. 그런데 그것은 도통 통하지 않는다. 앞서 말한 것처럼 사랑의 힘으로 일시적인 변화가 일어날 순 있지만 그건 말 그대로 아주 잠깐의 현상이다.

기분 좋은 조언은 없다

상대방이 좋은 방향으로 변했으면 좋겠다는 아주 ‘순수한’ 의도를 가졌다고 해도 남이 하는 조언은 기분 좋게 받아들이기 힘들다. 게다가 우리는 그것을 잘 포장하거나, 친절히 전달하지 않는다.

“너는 일을 왜 그렇게 해?

“너는 왜 항상 약속 시간에 늦어?”

“너는 왜 항상 그런 식이야?”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조바심에 뱉어낸 조언은 결국 상대방을 탓하는 말로 내뱉어진다. 그것은 아주 위험하다. 앉혀놓고 찬찬히 이야기해도 모자랄 판에, ‘사람’자체를 바꾸려는 노력은 오히려 부작용을 일으킨다. 존재 자체를 위협당하는 사람이 고분고분 말을 들을 리 없다. 자기 성찰할 겨를도 없이 방어적인 태도로 일관한다. 그렇지 않은가? 우리 자신 또한 그렇다. 아무리 맞는 말이라도, 나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하는 말은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조언’은 사랑하는 사람이 해야 부작용도 없고 효과도 크다. 그런데, 나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누굴까? 부모님과 형제, 가장 친한 친구들이 떠올려진다. 그런데, 그들의 충고나 조언을 마냥 달게 받게 되는가? 아니다. 맞는 말이라도 대부분은 귀에 거슬리고, 반항을 일으키거나 회피로 일관하게 한다. 그렇다면 그런 반항이나 거부가 들지 않는, 나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과연 누굴까?

그건, 바로 ‘나 자신’이다.

사람은 깨달을 때 변한다

나 자신에게 해주는 충고는 곧 ‘깨달음’이다.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던가, 뭔가를 생산해보자거나 하는 결심들. 그런 결심을 하게 만드는 Trigger는 곧 ‘깨달음’이다. 어느 누군가 좋은 충고를 100번 해줘도 나에게 깨달음이 없으면 변화는 없다. 하지만, 지나가는 한 마디에도 내가 깨닫는다면 변화는 일어난다. 깨달음에 의한 변화는 대단하다. 말 그대로 사람을 바꾸고 인생을 바꾼다. 성공을 했다고 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인터뷰를 보면, 언젠가 무엇을 깨달아 마음을 고쳐먹었다는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우리는 무언가를 ‘깨달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삶 속에서 ‘의미’를 찾아야 한다. 예전에는 그저 스쳐 지나쳤던 것들을 유심히 관찰하는 습관, 왜 그럴까라는 스스로에 대한 질문을 통해서 말이다. 글쓰기를 하거나 동기부여가 되는 강연을 듣는 일, 독서 등이 보편적이면서도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예를 들어 글쓰기는 내가 나에게 조언을 줄 수 있는 아주 좋은 방법이다. 자신이 느낀 감정을 쏟아내거나, 그것을 표현하는 글을 써본다. 또는 하고 싶은 일이나 이루고 싶은 것들을 적는다. 나중에 그것을 보았을 때, 나는 그 글을 썼을 때와는 또 다른 (객관적인) 내가 되어 스스로에게 ‘조언’을 줄 수 있다. 강연이나 독서도 마찬가지. 그것들을 찾아 보고, 읽는다는 것은 스스로 무언가 깨달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이고, 그 속에서 찾는 의미는 자신에게 좀 더 특별히 다가온다. ‘깨달음’의 어원은 ‘깨다’와 ‘알다’가 합쳐진 말이다. 자신을 둘러싼 벽을 깨고 변화할 수 있는 기회. 나를 가장 사랑하는 내가 나에게 조언을 주고, 무언가를 깨달았을 때 오는 인생의 전환점인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참 많은 사람을 변화시키려 노력하고 살아온 것 같다.

저 사람이 변하면 내가 좀 더 편할 텐데…라는 이기심으로 말이다. 이제는 나 자신을 돌아볼 때다. 의미를 찾고 깨달아야 할 때. 세상은 상대방이 변해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변함으로써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깨달아 변화하면, 다른 사람도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누군가를 정말 변화시키고 싶다면, 나 자신을 먼저 보고 변화해보자. 변화하여 바라보는 세상은 내가 원해왔던 세상에 조금은 더 가까워져 있을 것이다.

깨달음으로 인한 변화는 아주 바람직하고 그 효과가 오래도록 지속되는 원동력임을 잊지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