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남자인 이상, 어쩌면 여자도 포함되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으나, 거의 99%의 비율로 사람들은 태권도를 배운다. 태권도장에 가본 적이 없는 사람도, 남들이 다 하는데 나도 저것을 배워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고민을 누구나 한 번 쯤은 해 봤을 것이다. 태권도장에 자식을 보내지 못한, 혹은 아니한 부모들 역시 지나가며 동네 유치원보다도 많은 태권도장의 수를 보며 저곳에 내 자식을 보내야 하나 고민했던 적이 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남자의 입장에서 태권도는 약간 반은 필수적으로 필요한 자격증이다. 과장 조금 보태서 운전면허증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왜냐고? 군대에 가면 그놈의 태권도 단증을 필수로 따야 되니까! 대한민국 군대가 적폐 그 자체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투력에 하등 쓸모가 없는 이 품새 외우기를 반드시 이수하도록 징병된(가뜩이나 고달픈) 병사를 얼마나 볶아대는지 모른다. 그 와중에 단증이 있는 병사들은 편히 쉬는… 건 아니고 역시 다른 작업에 불려나가서 열심히 부당하게 착취당하고 있지만, 단증이 없는 병사들은 그야말로 더욱 부당하게 태권도 품새를 외우고 외우고 다 외울때까지 ‘잠을’ 안재우는 것이다.

나는 GOP(애국가 나올 때 38선 철책 만지면서 지나가는 그 곳이다)에서 군생활을 1년 했는데, 알다시피 낮밤이 바뀌는 근무지이다. 그곳에 갈 때는 GOP 가 천국인 줄로만 알았다. 밤에는 근무를 서고 낮에는 잔다니! 더군다나 힘들어서 별 터치도 없다니! 그런데 올라가봤더니 그런 말씀들은 천만의 말씀. 밤에는 근무를 서고 낮에 재우는 건 맞다. 정확히는 낮에 재우고 나서 계절마다 다르지만 2~5시간 이후에 다시 깨운다. 왜? 아침이니까… 밥먹고 안한다고 들었던 ‘일과’를 해야되니까… 청소도 하고, 총기 수입도 시키고, 이것저것 외우는 것도 외우고, 간부들은 일시키고 고참들은 갈구고… GOP 에서는 자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모자라다.

거짓말 같지만 진짜다. GOP 가 천국이란 건 다 GOP 정원을 채우기 위한 간부들의 새빨간 거짓말이다. 애초에 대한민국 군대 전체가 지옥 오브 헬조선인데 천국이 있을 리가 없다. 그리고 당신이 GOP에 갔는데 태권도 단증이 없다면? 그럼 당신은 근무 끝나고도 잠을 잘 수가 없다. 태권도 품새 외워야 되니까.

나는 맥심 인스턴트 커피를 거의 천원짜리 지폐를 말아 코로 흡입하다시피 하며 잠을 쫓아가며 태권도를 했다. 그놈의 태권도. 단증만 있었으면… 아! 태권도 밤띠였는데 조금만 더해서 1단만 딸걸! 난 이짓을 3주내내 해야했다. 그때 그렇게 이가 갈렸던 후회는 따고나니까 다른 식의 탄식으로 바뀌긴 했다. 아니 잠도 안재우고 품새만 외워서 단증 주는 게 전투력에 뭔 도움이 된다고, 애초에 이걸 왜 해야 되는거야?

태권도에 대한 감정이 그러니 좋을 리가 있나.

허나 첫 만남은 생각보다는 좋은 편이었다. 초등학교때 처음으로 태권도를 접했던 나는 비록 8개월이지만 도장에서 뛰어놀고 발차기를 하고 다니는 세월이 꽤나 흡족했었다. 지금도 운동을 꽤 좋아하는 나지만 초등학교때는 더 몸이 가볍고 기운이 넘쳤기 때문에(새벽 2시만 넘어가면 저세상 사람이 되는 지금과는 다르다) 이단 옆차기를 하면 또래 어깨 정도는 넘어갈 수준이었고, 머리 보다 높은 위치의 타겟에 공중 회전 차기와 뒤차기를 날릴 수가 있었다.

무엇보다 도장에 당시로선 구경하기도 힘들었던 플레이스테이션 1이 있었고, 탁구대에 농구골대에 탱탱볼로 축구까지 할 수 있었으니, 그러고도 발차기를 뻥뻥차면서 놀 수 있었으니 그런 천국도 없었다.

근데 딱 거기까지였다. 앞서 말했듯 나의 태권도는 밤띠에서 멈췄고, 정확히 8개월 경력의 태권도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그 뒤로 다시 태권도를 하는 일은 없었다. 나이가 들면서 내가 운동을 대하는 방식은 조금 더 진지해졌고, 중학교 2학년때 접한 유도를 5년간 배우면서는 평생의 직업으로 삼으려고 했다. 피치못하게 운동을 그만 둔 후에도 헬스라든지, 춤이라든지, 태극권을 배웠지 태권도로 다시 돌아갈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다.

물론 태권도가 가지는 무술이나 스포츠로서의 단점들은 꽤나 열거하기 쉽지만, 그 정도 단점들은 다른 종목들도 모두 가지고 있다. 완벽한 스포츠 종목이나 무술같은 건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특히나 무술의 세계란 더욱 그러한 법인데 모든 가능성을 포괄하는 무술같은 건 존재가 불가능하다. 당장의 종합 격투기만 봐도 최대한 많은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 뿐,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닫히는 문도 존재한다.

오히려 무술들이 발전하는 모습은 대학교 학부 과정보다는 대학원 박사 과정의 모습들과 비슷하다. 무술이라는 큰 개념이 있고, 각자의 무술들은 자기들만이 점유하는 영역을 깊게 파고들어가고 연구해서 다른 무술들이 도달하지 못하는 지점까지 도달하는 것이다. 태권도가 도달한 지점은 바로 ‘빠르고 날카롭고 점프와 회전까지 가미된 발차기‘ 이다. 이 지점은 다른 무술들이 쉽게 도달하지 못한 지점이다. 더군다나 태권도의 이 발차기는 꾸준한 실전 시합을 통해 다듬어지고 더 연구되었다는 점도 장점이다.

단점이라면 정확하게 발만을 사용하는데 집착하고 정강이나 무릎을 사용하는데 소극적이란 것과, 타격부위가 상체로 제한되고 가드를 하지 않는다는 점 등이다. 그러나 아까 말했듯 이정도 단점들은 다른 무술들도 가지고 있는 점이다. 오히려 이런 제약 덕분에 태권도의 발차기는 타 무술이 닿지 못한 더욱 독자적인 지점까지 발전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내가 태권도를 하지 않은 이유는 오히려 다른 쪽에 있다. 바로 태권도의 역사 왜곡이다. 나는 나이가 들면서 민족주의나 소위 국X 같은 사상에 굉장히 거부감을 가지게 되었고, 거기에 더해 태권도가 한반도의 반만년 역사와 궤를 같이 하는 전통 무술이라 주장하니 정이 뚝 떨어졌다.

물론 태권도는 한국의 고유 무술이 맞다. 한국인이 한국땅에서 만들었으니 한국 무술이 아니면 뭐겠는가. 그러나 문제는 태권도는 명확하게 창시자들이 존재하고, 역사가 100년도 되지 않았으며, 근대에 창작된 ‘현대 창작 무술’ 이라는 것이다. 더군다나 태권도의 모델이 되었던 무술도 엄연히 존재한다.

태권도의 모체는 가라데이다. ‘이것을 부정하는 한 태권도는 더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나는 이렇게까지 생각한다.

일제시대에 일본으로 유학을 갔던 사람들 중에는 일본의 대학교에 들어가 공부했던 엘리트들이 있었고, 그들은 아직 일본 본토에 근대 공수도의 아버지인 후나코시 기친이 그 유명한 ‘송도관’을 만들기도 전에 오키나와에서 넘어온 무술가들에게 공수도를 배웠다. 더군다나 잘했다. 개중 몇몇은 무려 후나코시 기친에게 직접 배우기까지 했다. 이들이 배웠던건 엄밀히 말하면 일본 본토에 가라데가 뿌리내리기 전인, 오키나와 가라데에 가까운 기법들이었다.

일본 대학에 유학까지 갔던 엘리트들이 본토에조차 뿌리가 채 내리기 전인 오키나와의 가라데를 배웠고 심지어 잘하기까지 했는데, 이들이 뭐가 쪽팔려서 이것을 부정했겠는가? 그렇게 일본에서 유학한 그들은 한국에 돌아와서 도장들을 차렸고, 이것이 태권도의 5대 기간도장이 되는 도장들의 시작이다. 물론 이중 무덕관의 황기 관장의 경우는 조금 다른 경우를 거쳤긴 하지만, 큰 맥락에서는 비슷하다. 황기 역시 가라데를 익혔다.

이 5대 기간 도장은 군사독재를 거치며, 또 정치적인 상황과 올림픽 정식종목이 되기 위한 단체 통합을 위한 과정 등, 우여곡절을 거치며 ‘태권도’ 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통합되었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아는 태권도가 시작된 것이다. 이 와중에 WT와는 다른 ITF 가 떨어져나가 일본 및 북한 캐나다 등에서 번성하는 복잡함이 있었지만 넘어가기로 한다.

좌우지간 이런 엄연한 역사가 있고, 창시자들이 있고, 증언이 있으며, 심지어 본인들은 자랑스러워하기까지 했는데도 불구하고 태권도의 역사에서 이부분은 지워져 있다.

전통 무술, 한국인의 무도라는 이야기도 듣다보면 웃음만 나오는 부분이다. 애초에 무술이란 건 전쟁 기술이었다. 총 쏘는데 상대방에 대한 예를 갖추는 경우 본 적 있는가? 총쏘는 연습을 해도 상대방에 대한 예는 갖추지 않는다. 이런 전쟁기술로서의 무술이 가지는 DNA 는 중국 무술들을 보면 알 수가 있다. 효과적으로 상대방을 죽이는 게 목적이었기 때문에 수법들이 잔인한 것들이 아주 많고, 몸을 맞대는 스포츠다보니 서로 존중이란 건 하지만, 예의범절이나 인격함양 같은 요소는 근본적으로는 거의 강조하지 않는다.

애초에 ‘무도’ 라는 개념 조차도 과거 일본이 세계 대전을 일으켰던 제국 시절, 근대화의 산물이었던 것이다. 일본은 근대화를 진행하며 무사들의 칼을 모두 압수하는 폐도령을 내렸고, 이제 사병이나 사적인 무력같은 건 허용되지 않았다. 무술은 전쟁 기술이고 폭력이었기 때문에, 이제 중앙집권적 근대화가 되었으니 반드시 국가가 독점해야되는 부분이었다. 이 시기의 일본이 어느 정도였냐면 법적으로 일본 안에서 무술은 오로지 경찰만이 배울 수 있었다. 그런데 국가적으로 사적인 무술의 수련에 칼의 소지까지 금지시켰으니 경찰들에게 뭘 가르쳐야 할지가 애매했다. 일본의 검술 유파는 지역별로 판이한데다 수십개에 달했으니 말이다. 이에 가장 크고 영향력있고 정치력까지 있던 유파의 대표들이 모여서 근대 일본 경찰들에게 교육시킬 검술을 고안해냈으니, 이게 바로 일본 ‘검술’의 시대가 끝나고 ‘검도’의 시대가 열리는 서막이다.

다른 무술들이 ‘무도’로 변모하는 과정 역시 마찬가지다. 이미 칼과 주먹의 시대는 가고 총과 대포, 전함과 탱크 비행기의 시대였다. 그럼에도 무술을 익힐 당위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단순히 체력단련과 호신의 차원을 넘어서야했다. 바로 ‘정신과 인격수련 및 함양’ 이라는 지점이었다. 여기에서 바로 ‘무술’ 이 가지지 못했던 ‘무도’ 만의 예의, 수신, 인격 함양, 애국심 증진, 정신 수련 같은 요소들이 적극적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유도는 가노 지고로가 강도관을 창설하며 관구류, 기도류, 천신진양류 등의 유술들을 종합해 만들었다. 적극적인 개발로 다른 유술들을 압도할만한 위력을 보인 ‘유도’는 그렇게 스포츠로서 더욱 도약했고, 마침내는 전 일본에 검도 다음으로 적극 보급된 무도가 되었다.

가라데 역시 마찬가지, 오키나와에서 건너온 후나코시 기친은 적극적으로 ‘무도’로 개량해가며 본토에 알리기 시작했다. 위의 유도 도장인 강도관에서 처음 연구회를 인정받게 되고, 이에 공수도는 원래 제대로된 도복이나 띠 체계도 없었으나 유도의 영향으로 도복, 승급체계 등이 정립되게 된다.

태권도 역시 도복을 입고 띠를 가지는 승급체계를 가진다. 이것이 한국 고유의 것이라고 주장하기엔 너무 뻔뻔한 일인 것이다. 애초 한국 고유의 무술이라면 예의나 인격 따지는 ‘도’의 부분은 없어야 될 것이고(택견이나 씨름, 활쏘기가 예의 따지는 것 봤나), 도복이나 띠 체계 역시 없어야 마땅한 부분이다. 애초에 오키나와의 가라데는 도복도 띠도 없었다.

나는 이러한 역사가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태권도의 성립 과정, 그리고 초기의 개척자들이 만들어나간 역사, 실전성을 입증해나가고 시스템을 정립해나간 발자취, 그리고 명확하게 영향을 받았고 선조로 인정할 모태 무술이 있다는 사실 등은 오히려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태권도는 가라데에 영향을 받은 사실을 좀더 자랑스러워해도 된다. 태권도가 영향을 받은 가라데는 엄밀히는 송도관이 일본 본토에 채 자리도 잡기 전 오키나와에서의 가라데에 더 가까웠고, 이 가라데는 굳이 따지자면 중국 남권의 영향을 받았으니 역사적 영향력은 태권도가 예상하는 지점보다 훨씬 더 오래 되었고, 무엇보다 오키나와 가라데는 일본제국의 지배를 받던 원주민들이 저항과 독립운동의 차원에서 익히던 무술이었다. 태권도가 가라데에 영향을 받았다고 해서 하등 펄쩍 뛸 일이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무슨 창시자들이 단순 깡패들도 아니고 일본 대학에 유학까지 갔던 당대의 초 엘리트들에 몇몇은 귀국 직전까지 일본인들을 대상으로 사범까지 하던 사람들이었다.

이런 태권도의 역사의 장르는 굳이 따지자면 ‘굉장히 흥미롭고, 투명한데다 명확한 근현대 무협’ 인 것이다. 그것을 태권도는 오히려 얼토당토 않는 ‘신화’의 영역으로 올려놓으며 훼손해버리고 말았다. 태권도의 진짜 역사는 이제 아는 사람만 아는 것이고, 모르거나 관심없는 사람들은 계속 이 ‘도복입고 띠를 찬 채 무도 정신을 외치는’ 무술이 단군 왕검 할아버지 때부터 해오던 코리안 트레디셔널인 줄 알 것이다. 애초에 단군이 호랑이랑 밀당하다가 곰이랑 결혼했다는 이야기조차 아무도 진짜라고 믿지 않는 흥미 위주의 신화인 것인데, 태권도는 굉장히 진지하게 한국의 반만년 역사와 태권도를 엮어내고 있다. 정작 조선이 망하고 대한민국이 건국된지도 100년이 안됐는데 말이다.

나는 신화보다도 근현대 무협이 더 흥미롭고 가치있다고 생각한다. 오래됐고 오래묵었다고 다 가치있는 게 아니란 이야기다. 이건 마치 새로 산 청바지에 워싱이 멋없는 것 같다고 오래돼 보이도록 강제로 여기저기 비벼대는 꼴이다. 여중생이 성숙해보이고 싶어 떡칠하는 화장이 이뻐 보이던가? 우리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은 사실 우리 생각보다는 더 멋지고 괜찮고 근사한 법이다. 태권도 역시 마찬가지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아름다운데, 거기에 워싱이나 떡칠화장을 자꾸 해야될 필요는 없다. 나도 무술을 익히는 무술가의 한 사람으로서, 이제라도 태권도가 진짜 역사를 받아들이고, 본인들의 역사를 연구하고 보존에 힘썼으면 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