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8살 즈음이었던 것 같다. 차 뒷좌석에 놓인 아빠의 일회용 카메라로 ‘렌즈 너머의 세상’ 을 처음 바라보았던 순간이. 자그마한 버튼을 누르면 내가 보고 있는 세상이 그대로 담겼다. 붙잡을 수 없는 시간들을 간직할 수 있다니. 그 순간 느꼈던 혼자만의 비밀스러운 설렘과 두근거림은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선명하게 기억 난다.

시간이 흘러 14살이 되었을 무렵, 길을 걷다 마주친 쇼윈도 속 작은 필름 카메라에 마음을 빼앗겼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때는 꼭 그 카메라여야만 했다. 같은 기종이라도 다른 곳에서 사는 것조차 싫었다. 생각해보면 기계와 사람 사이에도 ‘연(緣)’ 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그랬다는 생각이 든다. 이후 그 카메라는 오랜 시간 나의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나의 시선, 나 자신이 되었으니까.

세 끼 밥 먹는 것 보다 더 자주 사진을 찍었다. 8살 무렵 카메라를 만난 그 때부터 그저 사진이 좋았다. 멋진 사진을 찍고 싶은 욕심보다 처음 그 순간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 순간을, 그 찰나를 담아내는 것이 좋았다.

내게 사진은 친구의 바보같은 웃음이고, 오후 4시의 부드러운 빛이고, 이른 새벽 바다의 일렁임이다. 길가에 피어난 아스팔트 사이의 들꽃이고, 전선줄이 가로지른 어느 계절의 하늘이고, 낯선 강아지의 눈망울이고,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미소다. 렌즈 속의 피사체가 나를 바라보든 바라보지 않든 나는 늘 그들을 바라보고 그 속에 마음을 쏟으며 담아낸다. 사진은, 무언가를 사랑하는 마음과 참 많이 닮아있다.

특별히 어떤 사진을 찍어야 겠다고 생각 한 적은 없다. 사진을 업으로 삼아야겠다는 결심을 한 적도 없다. 어떤 시인의 말을 빌리자면, 내게 있어 사진은 ‘내가 나이기 때문에 만들 수 있는 노래’ 다. 내 노래는 ‘어디 가느냐’ 고 누가 물었을 때 ‘그냥 간다’ 고 대답하는 것이다. 내 노래는 그즈음의 나일 뿐이다. 그만큼 나에게는 자연스러운 행위다.

그런 내가 처음으로 사진을 ‘나의 일’ 로 맞이하여 살아가고 있다. 좋아하는 일이지만 잘해야 한다는 욕심은 배제하고 싶었지만 이제는 욕심이 난다. 이 행위를 한껏 즐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있다. 감사한 일이다.

여전히 나는 내가 찍은 사진들에 대한 판단을 할 수가 없다. 오늘은 아쉬웠다가도 다음 날이면 괜찮기도 하다. 어떤 날은 숨고 싶을 정도로 별로일 때도 많다. 내게서 나온 사진에 대한 판단 대신 그 과정과 결과물에 대한 소중함, 스스로의 아쉬움으로부터 나아갈 수 있는 욕심만 가져가기로 했다. 그래서 내가 더 나아지고 단단해지고 도모하는 일이 더 잘 될 수 있다면, 어쩌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지금은 Joy of eaters 에서 누군가의 소중한 음식들을 사진으로 담아내어 고객분들께 소개해드리는 일을 하고 있다. 온전히 나의 것이 아니기에 매 순간 더 긴장이 되고 걱정 되고 욕심 나고 때때로 죄송 스러울 때도 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잘 하고 싶다. 욕심이 나는 일. 앞으로도 언제나 다정한 마음으로 피사체를 바라보는 시선은 늘 그대로일 것이다. 그 대상이 귤이든, 바나나 머핀이든, 누군가의 옷이든, 장갑이든, 사람이든.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은 이 세상 속에서 그저 그 자체로 담백한 무언가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 나에게서 나온 사진이, 글이, 그림이, 나의 모든 크고 작은 말과 행동들이 그렇게 세상 속에서 선한 자리를 지킬 수 있다면, 참 좋겠다.

끝으로 학창 시절 책 끝이 닳도록 읽었던, 필립 퍼키스의 글로 마무리하겠다.

 

1. 나는 사진 작업을 사랑합니다. 무언가를 보존한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절대 풀어낼 수 없는 무한한 수수께끼를 탐구한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사진은 답이 없는 수수께끼 같아요. 사물들을 모아놓고 그것들이 무엇처럼 보이는지 바라보는 거지요. 또 세상 안의 형태, 모양, 톤, 빛, 감정, 느낌과 표현 그리고 사람들 사이의 게임을 바라보면서 끝없이 발견하는 매혹이지요.
​2. 사진은 삶의 방식을 배우는 매체입니다. 사진은 그야말로 삶의 방식 그 자체입니다. 대상에 반응하면서 사진을 찍는 것처럼 우린 항상 무언가에 반응합니다. 그러므로 사진이란 반응하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아마도 우리가 사진가이므로 삶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는지도 모르겠어요. 우린 끊임없이 아름다움을 발견합니다. 진정으로 삶이 경이롭기 때문이지요.